213차 백봉산 산행기 - 서상국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8)
2008-10-06 12:08:56
213차 백봉산 산행기
1. 일시 : 2008. 10. 5(일)
2. 곳 : 경기도 남양주 백봉산(590m)
3. 참가 : 상국(대장), 문수, 펭귄, 민영, 정호, 광용, 경호, 경림, 재일, 은수, 병욱, 모철, 덕영(13명)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려는데 딸아이가 등산을 어디로 가시냐고 묻는다. 봉미산, 경기도 양평에 있는데 강원도 홍천하고 붙었다고 하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늘 차가 엄청 밀릴 테니 어지간하면 가까운 데로 다녀오라고 극구 말린다.
휴일이면 고속도로 교통정보센터로 알바를 나가는 딸아이, 엊그제는 완전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었다. 추석보다 더 전화가 많이 오더란다.
‘그래? 한번 생각해 보께.’
문수차에는 펭귄이 타고 있다. 둘 다 엊그제 3일, 관악산 번개산행을 같이 했었는데 펭귄은 어제 또 용문산 옆 백운봉을 다녀왔다고, 오늘이 사흘째 연속 출전이라며 기염을 토한다.
운전대를 잡은 문수는 아무래도 오늘 용미산, 100Km 정도, 길도 멀지만 차가 너무 밀릴 것 같아 돌아올 일이 걱정된단다.
차가 많이 밀릴 것은 뻔한 일이고, 오후 4시까지는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던 민영이 말도 생각나서,
“봉미산은 다음으로 미루자. 예봉산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고, 검단산이나 남한산성 우떻노?”
문수도 싫은 내색을 안 하고 펭귄은 침을 튀기며 쌍수환영.
“카카. 그래 우리끼리 바까뿌자. 근데 오늘 산행대장이 누고? 글마가 알몬 카카카... 역적모의 했다꼬 머라 카겠제? 카카.”
‘아, 일마 이거.... 오늘 산행대장은 낸데.... 이기 알고 그라나? 모르고 그라나?’
정말 펭귄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 마음도 아니고 새 마음, 그 깊이를 모르겠다.
어제 펭귄과 같이 백운봉에 갔다는 덕영이, 오후에 서울에서 볼 일이 있어 오늘 봉미산에는 못 온다고 펭귄한테 그랬다던데, 행선지를 바꿀 생각이라니까 전화 받고 바로 튀어나온다고 밥은커녕 젓가락도 못 챙겨 왔더라.
오전 8시경, 재봉이 사무실에 차가 6대나 모였다. 간만에 나온 정호, 말없이 나온 도다리와 경림이까지 총 13명. 근래 보기드문 대군이다. 봉미산에서 백봉산으로 바뀌었다니까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
차 3대로 뭉쳐서 묘적사 주차장까지 이동, 호젓한 분위기의 아침 절을 구경한다. 민영이는 그걸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더라만, 절 기둥도 자연목의 울퉁불퉁한 멋을 그대로 살려두었고 절 경내에 냇물이 흐르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임진왜란때는 승병들이 일어났고, 또 그 후에도 국가에서 비밀 요원들을 양성하느라 머리를 깎여 스님으로 위장시켜 무술훈련을 시켰다는 그런 기록도 있다. 묘한 절이다.
산신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와 등산로 입구를 찾느라 이리저리 잠시 헤맸다. 등산로 처럼 보이는 임도는 경고문을 붙여둔 철문으로 폐쇄되어 있었는데 음식점 주인에게 물어 겨우 샛길을 찾아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게 오전 9시경.
-펭귄 배낭 엄청 크다. 자랑하느라 사진 찍을라카몬 일부러 옆으로 돌아선다.
임도 바닥에 지천으로 깔린 질경이에 이슬이 내려 발바닥 감촉도 좋다. 공기 좋고 조용한 길, 우리가 그 길을 전세내어 오른다. 등산이 금지된 길이라 그런지 팻말도 없다. 삼거리에서 그냥 감으로 왼쪽길로 접어들었다. 나중에 정상에서 묘적사 가는 길을 물어 내려왔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백봉산을 한 바퀴 일주한 셈이다.
-왼쪽으로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온 셈
좀 가다보니 산사체험하러 온 사람들이 황토색 옷을 입고 잣나무 숲에서 기체조를 하고 있었다. 스톤피치라 했나? 피치스톤이라 했나? 하여간 공기가 아주 맑다. 우리도 좋은 공기 많이 마시면서 쉬어가자고 잣나무 숲에 퍼질러 앉아 쉬면서 동동주와 모과주로 목을 축이고 가져온 과일을 반쯤 먹어 치웠다.
-밉상 절마는 와 돌아앉았노? 밉상지긴다고 그라나?
쉬고 나서는 길도 없는 잣나무 숲 오르막을 계속 올라 능선으로 접어들었다. 바위 있는 곳에서 잠시 쉬려고 걸음을 멈췄는데 눈이 옆으로 잘 돌아가는(?) 도다리가 누가 흘리고 간 휴대폰을 하나 주워들고는 주인을 찾아보겠다고 이리저리 손가락 운동을 하면서 눈을 옆으로 굴리느라 정신없다.
- 보자, 이기 누구 꺼고? 내처럼 정신 없는 사람도 있네?
조망이 좋은 곳에서 평내라는 아파트 단지 동네를 구경하고, 그 다음부터 백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이 참 편안하다. 정상에는 인근에 사는 등산객들, 나이 드신 분들이 제법 많다. 묘적사 가는 길을 물어 팔각정에서 직진하는 길을 내려오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10시 30분, 아마 봉미산을 고집했다면 이제 산행을 시작할 시각이라며 느긋하게 전을 편다. 병욱이는 오늘도 반찬을 많이 가져와서 집사람이 도대체 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갱호가 가져온 목동표 묵은 김치는 언제나 인기 만점, 오늘 특별 메뉴중 하나는 내가 가져간 수육. 이것은 정말 끈질기게 집요한 병욱이의 수육 타령에서 벗어나려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내가 준비한 것이다. 병욱이는 수육을 확보하느라 자기 앞에 두고는 좀 있다 다 먹은 척 두껑으로 덮어둔다.
-도다리가 입도 크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또 잣나무 숲에서 풍욕을 하고 여기저기 바닥에 누워 늘부러지기도 하면서 쉬다가 내려오니 이제 겨우 1시.
- 아~들 진짜... 이야기도 잘 하고 잘 묵고 잘 노네? 진작 산에 나올꺼를....
-아... 절마들 중 오늘은 누굴 물어뿌꼬(펭귄 생각)
-간만에 온 정호, 아.... 오늘은 펭귄한테 안 물리야 되는데....
솔잎동동주집 주인 할매, 다른 손님도 없더만 우리를 억지로 구석방으로 밀어 넣으려하고 판도 제대로 안 주려고 하는 동동주집 할매는 얼굴에 심술이 많이 붙었다. 녹두전이고 파전, 안주는 맛있더라만 다시는 안 가야겠다.
두 차는 서울방향으로 바로 가고, 재봉이 사무실앞에 차를 세워뒀던 친구들을 풀어놓고 문수차에서 졸다가 눈을 뜨니 우리 동네 당구장 앞이다.
요즘 당구에 물이 오른 문수, 간단히 끝나면 재미가 없으니까 5판 3승으로 하잔다.
2대 빵으로 지다가 세 번째는 문수 작전인 모양, 일부러 져줬는지 겨우 한판 체면치레를 하고 다음 판에 바로 박살났다.
당구장을 나오면서 문수 왈, “다음에 광용이 불러내가꼬 셋이서 각각 120놓고 함 쳐야겠다.”
아, 요즘... 나는 문수가 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