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록(璿源錄) 안에는 종친록(宗親錄)과 유부록(類附錄)이 있고 그 중 유부록에는 왕자군(王子君)과
인척(姻戚)이 기록된다. 여기서 친척(親戚)은 남자의 親家를 뜻하고 인척(姻戚)은 여자쪽 친정(親庭)을
말한다. 조선왕조 초기 선원록에는 왕실의 외가쪽 5代孫까지 每 式年마다 수단(收單)을 제출받아 기록하였다.
조선 초기 왕실과 인맥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인한 사회적 대혼란을 겪으면서 흐트러진 민심과 풍속을 다집기 위해 강화된 유교 통치이념 下 남존녀비로 인해 사가족보(私家族譜)에 여자 이름은 거의 기록되지도 않았다. 여자이름 대신 사위이름과 본관 관직 그리고 사위의 아버지 관련 기록을 담았다. 적자 적녀(嫡子 嫡女)가 먼저 오고 나중에 서얼 자녀(庶孼 子女)를 기록하는 순서다.
朝鮮의 기본 법률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예전(禮典) 제과조(制科條)에서 서얼(庶孼)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바르고 으뜸이 되는 것을 "적 嫡"이라고 하고, 그 나머지를 "서 庶"라고 한다. 첩과 종의 자식을 "얼 孼"이라고 하는데, "孼"은 곁가지 얼(蘖)을 말한다. 죄없는 여인은 몰역, 폐역 당할 뿐인데 임금에게 은혜를 얻어서 자식을 가짐이, 마치 나무가 베어졌는데 움이 돋는 것과 같은 것이다.
正長曰嫡, 其餘曰庶. 妾隸之子曰孼, 孼之言蘖也. 有罪之女, 沒廢役之而已, 得幸於君, 有所生, 若木旣伐而牲??
혼가조(婚嫁條)에는 남자가 장가드는 것을 "혼 婚"이라고 하고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가 稼"라고 한다.
男曰婚, 女曰嫁, 男年十五, 女十四 方許婚嫁
중종대왕(中宗大王)의 庶5女 숙정옹주(淑靜翁主 1525~1564년)는 숙원 김씨가 낳은 유일한 소생인데 綾城 具씨 능창위(綾昌尉) 구한(具澣)에게 하가(下嫁)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중종조 고사본말(中宗朝故事本末)은 이렇게 기술한다.
○ 남편은 능창위(綾昌尉) 구한(具澣)으로,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아버지는 부정(副正) 구신경(具信璟)이다.
숙정옹주와 능창위 具澣은 3남 3녀를 두었는데 그중에 둘째 딸 구옥영(具玉英 1522生~ ?拙)은 함평인(咸平人)
충의위(忠義尉) 증 찬성(贈 贊成) 이창(李瑒)에게 출가하였다. 李瑒은 咸平 李氏 시조(始祖) 언(彦)의 15世孫이고 함성군(咸城君) 이종생(李從生)의 5世孫이 된다.
그러므로 이창(李瑒)은 중종대왕의 손주 사위이다. 즉, 손주 부마(駙馬)인 셈이다.
경국대전 의빈부조(儀賓府條)에 따르면 위(尉)는 부마(駙馬)를 뜻한다. 능창위(綾昌尉) 구한(具澣)이나 충의위(忠義尉) 이창(李瑒) 모두 부마(駙馬)인, 위(尉) 품계가 下賜되었다.
의빈부조(儀賓府條)
漢나라 무제는 부마도위(駙馬都尉)를 두어 부마를 관장하게 하였다. 위나라와 진나라는 공주와 혼인한 자를 더하였다. 천자의 사위는 駙馬라고 하고 여러 왕의 사위는 의빈(儀賓)이라고 한다. 부마는 천자의 부차(副車)에 매는 말이다. 부마는 천자가 타는 수레를 끄는 말(馬)을 따라가며 천자를 호위한다.
주석: 尉 (정일품) 尉(종일품 尙公主著 初授). 의빈도 종친과 마찬가지로 직사(職事)가 없다.
이런 사유로 中宗大王의 손주 사위인 이창(李瑒)은 朝鮮왕실의 인척(姻戚)으로서 왕실 족보인 종친록(宗親錄)에 등재되며 그 후손들 4대까지 올려지게 된다. 16世 경원(敬元), 춘원(春元 雅號 九畹), 충원(忠元), 인원(仁元), 필원(弼元) 4형제분은 물론 그 아래 아래 지렴(之濂) 치암공(恥菴公)도 등재된다.
조선왕실과 함평 이씨의 사돈관계는 그 이후 始祖 언(彦)의 20世 이도(李燾)에 와서 다시 이어지게 된다.
선조대왕의 증손주 사위가 바로 도(燾)로서 치암공(恥菴公) 3世 사용공(司勇公) 필원(弼元)의 5世이다.
관련한 내용은 다음에 기술하기로 하자.
관련되는 선원록(璿源錄)을 몇장 더 올리고자 하나 용량 한계인지 첨부가 안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부기(附記):
해안군(海安君) 행장(行狀)을 지은 咸平人 이관운(李觀運)을 찾는 과정에서 함평이씨 대동보에 이관운의 先代祖
이창(李瑒)이 중종대왕 손주 사위임을 알게 되었다.
海安君 15世
漢覇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