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제를 좀 포커스 해서, 재정리해 보았어요. ^^;;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편이 나뉘어있었다. 엄마는 오빠 편, 아빠는 내 편.
젊은 시절 아빠는 엄마와 종종 다투시기도 했고 오빠에겐 무섭게 대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만큼은 다정한 편이셨다. 실제 어린 시절 살뜰히 챙겨주신 건 분명 엄마일텐데, 가끔 고집부리다 엄마에게 매 맞으려던 위기의 순간에 종종 아빠가 나타나 나를 구제(?)해줬기 때문일까. 아니면 늘 잠이 부족한 학창 시절, 지각 직전 아빠의 신속한 라이딩으로 화장실 청소를 모면할 수 있었던 고마운 기억 때문일까, 아무튼 어린 시절 아빠는 늘 내 편이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고2 때 IMF가 터지고 여느 집처럼 우리 집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부모님은 20여 년 해오던 고깃집을 닫고 새로운 일을 찾아 이것저것 하셔야 했다. 그나마 조금 자리를 잡으려던 새로운 가게는 화재로 또다시 원점으로, 부모님께 큰 힘이 되어주던 할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그야말로 절망의 연속이었다. 아빠는 일 때문에 따로 살기도 했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인 우리는 특별한 날 아니면 잘 만나지 않고 평소 안부 연락도 하지 않으니, 자주 못 뵙는 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던 것 같다. 사느라 정신없었던 아빠에게 나는 무심함을 느끼기도 했고 그렇게 서운함도 쌓여갔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고 희망을 잃지 않은 부모님 덕분일까, 오빠와 나까지 우리 네 식구는 각자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왔고, 어느새 형편이 많이 여유로워졌다. 나 역시, 아이들도 조금 손이 덜 갈 만큼 자라고, 업무적으로도 내 위치가 더욱 공고해졌다. 근데 이제야 문득 지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쉼 없이 달려온 대가였다. 쓸데없이 책임감 강한 나였기에 어느 역할 하나라도 버려야겠다 싶었고, 고민 끝에 나 아니면 안될 것 같던 ‘일’을 잠시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는 제주로 떠나 지금 아이들과 1년 넘게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한때 사치처럼 느껴졌던 그 드라마를 밤도 아닌 한낮에 혼맥하며 보기도 하고, 수국이 어느 계절에 피는지도 몰랐던 내가 계절마다 꽃 사진을 담으러 제주를 누비고 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던가, 이것저것 하느라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늘 바라고 꿈꾸던 것을 해보니 너무 좋은 게, ‘자유, 해방’이 별 건가 싶다. 혼자 세 아이 챙기는 일이 때론 버거워도 지금의 자유로움 주는 달콤함이 더 크기에 또 감당할 만하다.
출근 제약이 없으니 친정에도 더 자주, 오래 머무르곤 한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져서인지 아빠도 술 한잔하시면 종종 당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먼저 꺼내신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 근데 대체로 힘들고 가슴 아픈 이야기다. 물론 가끔가다 믿기지 않는 영웅담을 곁들일 때면, 엄마가 옆에서 아빠는 뻥이 심하니 걸러 들으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엄마 이야기를 하시기도 한다. 모두 어느 드라마 극본으로 바로 가져다 써도 될 법한 이야기들.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직접 살아온 부모님.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 p.249)”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딸이 3일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다녀간 아버지 지인들을 통해 생전에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여러 모습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늘 이해 못하고 원망의 마음으로 바라보던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나 역시 예전에, 지금도 종종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는 때가 있다. 특히 한 때 내 편이었던 아빠가 더 그렇다. 근데 꼭 다 이해해야 할까,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들을 기회가 없을지 모를, 지극히 주관적일 당신의 이야기일지라도 많이 들어 놓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자. 여전히 이해 못하는 일들이 세월이 지나면 이해될 지 모르니까. 이왕이면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엔 미담, 영웅담도 많았으면 좋겠다. 아빠를 좀 더 닮은 내가 비슷한 길을 걸어 가겠구나 기대할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당신의 인생 스토리에 내가 모르는 빈칸을 채워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미뤄왔던 ‘부모님의 자서전(해방일지)’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도 또 혹시 아나, 내가 다시 아빠 편이 될 수 있을지.
첫댓글 오, 유미 샘~ 너어~~~무 깔끔하게 고치셨어요!
근데 사람 욕심이 끝이 없네요. 이번엔 '바로 드라마 극본이 될 것만 같은 스토리, 영웅담'이 뭐였을까가 또 궁금해져요. 저도 부모님, 특히, 나이 많으신 고모들 얘기 들으면서 아, 이거 나만 듣기 아깝다 하고 녹음한 적 있거든요. 어떤 내용일지 큰 틀에서 짐작은 되는데, 구체적인 예를 한 가지라도 언급해주면 더 좋았겠다 싶어요.
'그래도, 그러다, 그나마' 같은 접속부사를 문단이 바뀌거나, 문장이 이어질 때 자주 쓰시는 편이라 정리했고요. '~던 것 같다'가 단락과 두 번째 단락 끄트머리에 나오는데, 빼도 될 거 같아 정리했어요. 살짝 교정 본 글은 내일 아침 블로그에서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