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9장 1~21절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애굽을 향한 예언
에스겔 29장부터 32장까지는 애굽에 대한 심판 이야기입니다. 애굽은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러워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더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역사를 보면, 남유다가 멸망한 후, 16년 후에 애굽도 바벨론 과의 싸움에서 패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1절입니다.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말씀으로 당시 에스겔의 나이가 35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스겔 1장에 보면, ‘서른째 해’에 바벨론 그발 강가에 에스겔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른째 해’라는 표현은 에스겔 나이가 30살이라는 말입니다. 그때는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사로잡힌 지 ‘오 년’ 된 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나이는 25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열째 해’라는 말은 포로로 잡혀온 지 10년이 되었다는 뜻이기에 25살에 포로로 잡혀온 에스겔은 현재 35살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야긴 왕이 잡혀온 후 그 뒤를 이어 시드기야가 남유다의 왕이 되었기에 시드기야가 남유다의 왕이 된지 10년째 되는 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남유다를 11년 동안 통치하고 바벨론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시 남유다가 멸망하기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애굽의 심판을 예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언하라’
하나님은 애굽이 당할 심판을 예언하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25장부터 이스라엘 주변국 심판의 예언 말씀이 나옵니다. 암몬과 모압, 세일과 에돔, 블레셋과 두로, 그리고 오늘 본문은 애굽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민족에게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은 은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흔히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은 이스라엘이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아이가 잘못을 하면 꾸짖지 않습니다. 나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왜 훈계하겠습니까? 버릇없는 행동을 보면 부모가 누구길래 아이를 저리 버릇없게 키웠을까 그냥 속으로 생각하고 맙니다. 내가 직접 그 아이를 훈계하지 않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행한 아이가 내 아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잘못하면 바로 훈계합니다. 잘못을 깨닫게 합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도록 사랑과 관심을 갖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주변국을 향해 하나님께서 심판의 메세지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열방의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그들을 훈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잘못했기에 그 잘못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훈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게 예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절입니다.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애굽을 큰 악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일강을 할보하며 다니는 동물 가운데 악어만큼 강한 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악어가 생각하기를 이 강은 자기가 만들었다고 호령하면서 이 강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떠벌리고 있지만,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교만하게 나일강을 활보하고 다니는 악어, 애굽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5절입니다.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여호와가 갈고리로 애굽의 바로의 아가미를 꿰고, 나일강의 물고기들이 바로의 비늘에 달라붙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로의 비늘에 달라붙은 모든 물고기와 함께 바로를 강 한복판에서 끌어내십니다. 다시 말해서 바로와 그 백성들을 다 함께 사막에 던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께서 바로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6~7절입니다.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 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 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그때야 비로소 애굽의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가 이 나일강의 주인인줄 알게 됩니다. 애굽은 튼튼한 지팡이가 아니라 갈대처럼 속이 텅 빈 갈대 지팡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런 갈대 지팡이에 불과한 애굽을 의지한 이스라엘도 함께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애굽은 남유다가 주전 586년에 망하고 그로부터 16년 후에 바벨론에게 망합니다. 그러나 40년 후에 하나님께 애굽에도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3~14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십 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이 말씀은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 멸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왕 고레스에 의해 자유를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고레스 왕은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잡혀왔던 모든 백성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습니다. 그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레스를 나의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애굽은 고레스 왕에 의해 본국으로 돌아왔지만, 별볼일 없는 나라가 됩니다. 더이상 이스라엘 같은 주변국이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그런 강국이 아니었습니다.
17~21절까지는 애굽이 어떻게 바벨론에 의해 정복 당하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7~19절입니다.
‘스물입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크게 수고하여 모든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모든 어깨가 벗어졌으나 그와 군대가 그 수고한 대가를 두로에서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기리니 그가 그 무리를 잡아가며 물건을 노략하여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상이 되리라’
‘스물일곱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좀 전에 ‘열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으니까, 그때로부터 17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러니까 29장 1~16절까지와 17~21절까지는 17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있는 겁니다. 즉 17년 전에 애굽이 바벨론에 의해 망할 것이라 예언한 말씀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두로를 공격했습니다. 근데 두로는 페니키아 연안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이 공격을 하자 두로는 배로 보물들을 실어서 도망을 갔습니다. 결국 바벨론이 두로를 점령했으나 보물창고는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두로를 정복했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이어서 애굽을 공격했고, 두로에서 받지 못한 보상을 애굽을 정복한 후에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21절입니다.
‘그 날에 나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돋아나게 하고 나는 또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그 날에’ 여기서 ‘그 날’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시는 날입니다. ‘한 뿔’은 바로 ‘구원의 뿔’ ‘메시야,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뿔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율법에는 고의가 아니라 부지중에 살인을 한 사람을 보호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도피성으로 피신하면 그 사람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처럼 제단 사면에 뿔이 있는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제단의 뿔을 잡으면 그의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죄로 인해 멸망당한 이스라엘과 그 백성을 위해 구원의 뿔, 바로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징계를 위한 심판이 아니라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라고 주시는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바른 길을 걸어가길 원하십니다. 걸어가야 할 길을 걷지 않을 때 우리에게 사인을 주십니다. 그 사인이 고난과 시련일 수도 있고, 경고의 메세지 일 수도 있습니다. 돌이킬 기회를 주실 때 그 음성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기도
바른 길, 진리의 길을 걸어가도록 우리에게 사인을 주시고 우리의 걸음을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사랑과 은혜를 이 아침에도 깨닫습니다. 그 사랑이 오늘 하룰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 물들어 범죄치 않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