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통일> 시 세편
시, 새들의 논쟁사
터엉 터엉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새 쫓는 공포탄 소리
느린 소리걸음 탓에
새떼들은 시차없이 풀쩍 하늘을 뒤덮으며
가슴 넓은 언덕을 넘는다
앞줄은 선형으로 몇마리
이어 일련의 변형 도형
주로 평면
한번쯤은 입체로도 휘도는데
오늘 따라 그 까마득한 위로는 고공의 비행물체 두대
직각으로 교차하여
십자 대칭 비행운을 한치 오차없이 그려내는데
비뚤비뚤 비대칭 형체를 사린 새떼들은
세한도의 고목 몇가지에 진영들을 차리고
각자의 상대음감으로 논쟁을 튼다
2억4천만년 전 비룡시대 이래로
줄곧 형태소를 놓고 다투어 온 그들
목적론적 존재론
아니
비목적론적 존재론
적적 짹짹
몇개의 도형으로
여기까지 건너왔던가
그렸던가 그려졌던가
의미와
무의미
다시 그 언덕너머 평원으로 돌아갈 때에는
무슨 모양들이 생성되려나
비목적적으로
아니
목적적으로
적적 짹짹
비행운은 초공간으로 흩어지고
새소리도 아공간으로 사라질 때쯤이면
적적히 남은 반향으로 되돌아오는
고요의 실 공간을 재어본다
의식 속 한 손뼘이나 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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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허드슨 강변에서
오래 쓴 내 귀가 닳아졌나
익숙해진 현지음
허선虛船 강
들리는 소리와 달리
강상에 묵직히 드리운 마천루
욕망의 그림자는
꼬리 무는 살물선들을 묵직히 누른다
실어도 실어도 더 싣는다는
몰입 공간의 표상이
허선 강의 속내
흔적없는 쌍둥이 빌딩 대신
원 트레이드 빌딩
하늘을 찔러
이제 강상에는
반영 담을 공간도 없다
허선 흐르는 강변에서
마음 비우기 갈망하다
조급한 허망으로
배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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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초록 장미의 존재론
---피츠버그에서
동양 식품 가게를 찾아 나선 저자거리
문득 초록 장미를 만났다.
겨울바람의 위력은 시나브로
아직 지상에서 심술궂은 아침
아,
해마다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
바로 그 앞 토요일 오전이면 이 동네에서
녹색으로 치장한 아일랜드 후예들의 거리 행진이 있지
그린 퍼레이드,
천오백년도 더 이 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아일랜드의 패트릭 성인은
그 변경의 수호성인으로도 배품이 모자람인가
척박한 땅에
이웃 영국의 행패와 더불어 찾아온
모진 흉년 피하여
신대륙 여기저기로 쫓겨온
신산한 삶 위에도 초록 형상으로 다시 임하여
"보아라!
불모의 겨울이 가고
신생이 찾아왔도다"
해마다 새 생명의 전조를 외치며 지친 이들을 깨우친다.
역사 속
거친 이웃 나라 탓에 자신의 성정조차 비뚤어진
가난의 땅 아일랜드 사람들,
그들의 분열과 모함과 좌절과 역설적 졍열은
때로 배달겨레의 지난날
발자국에도 비견되었으니
위안인가 자조인가
먼 나라에서 주고받는 체험은 가슴앓이도 되는데
내 고향에서 불던 전방위의 거친 바람은
문득 이곳까지 찾아와
내 마음의 옷깃을 펄렁이게하여
저 그린 퍼레이드에 고개 내민 초록 장미가
진짜변종일까 가짜조화일까
사념이 본질을 찌르려는 순간,
생명의 색갈 함초롬한 초록 장미는
내 흐린 시야를 닦아 직관을 이끌더니
궁금증으로 가장되어 삼투하는 잡념마저 씻어내고
자신의 본디 꽃말
천상의 사랑과 고귀함
그 존재의 가치로 세상에도 꽃 수를 놓는다.
질곡의 겨울로부터 빠져나오는 길목에
초록 꽃으로 선
그대
생명의지의 이정표여!
구세주의 고난을 묵상하고 동참하는 사순절 즈음에
사육제의 광란으로 거친 위안을 찾기보다
초록 장미를 염원하는 순정한 마음으로
성 패트릭의 날을 맞는다
오래 잊었던 기다림 속에서.
첫댓글 자연과사람과무릇생명의본질을새삼경이로움으로느끼고맞이하게되는첫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