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기회가 주어짐
누가복음 13장 6-9절 / 6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 몇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릴 때 총독 빌라도는 이곳에 난입하여 그들을 처형하여 그들의 피를 그들이 드리던 희생제물의 피와 섞어 물들게 하였습니다. 총독 빌라도가 이렇게 학살을 자행한 것은 학살을 당한 자들이 로마에 대적하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비참한 사건을 두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뒤숭숭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어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서는 있었던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이 일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자 해서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그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서 그 같은 일을 당하였겠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너희도 너희 악한 길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실로암 탑이 무너졌을 때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은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그들이 예루살렘에 살던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들이었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어 놓았다. 그리고 수확기에 이르러서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 것을 생각하고 포도원에 왔다. 그러나 그는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에서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하였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포도원 주인은‘내년에는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열리겠지.’하는 생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번째 해에서도. 그리고 삼년이 되어서도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에서 기대했던 열매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자 포도원 주인은 곁에 따르던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보시오. 내가 삼년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해서 왔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으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 무화과나무를 당장에 찍어 내버리시오.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그대로 둔다면 매년 땅만 허비하는 것이 될 것이오.'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말하였습니다.‘주인님, 올 한 해만 더 두고 보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며 더욱 세심히 살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수확 철에는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는 주인님 말씀대로 찍어 버리겠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이어서 하시고 있는 것으로,“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찍어 버릴 것이다.”는 것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시키실 것이 정해진 주인의 뜻이라는 것을 밝히시는 것이며, 이 뜻이 실현될 때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기다림에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뒤이어서 하시고 있는 말씀인 누가복음 13장 10-17절은 예수께서 이 회개에 있게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18년 동안이나 중한 병에 걸려서 몸을 똑바로 펼 수 없는 한 여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셨는데, 이것은 사단에게 묶여 있던 아브라함의 딸[자손]을 풀어주는 것으로서, 이 일은 일주일간에 엿새 동안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도 행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며 분개하였으며, 예수님을 통해서 부끄러움을 당하였으나 그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한 그들은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외면하며 거부함에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사단에게 묶여 있던 것에서 풀어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거부하기에 그들은 그대로 사단에게 묶여 있는 자로 있어 주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사단과 함께 영원한 불못에 떨어집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523장‘어둔 죄악 길에서’에“이때라, 이때라, 주의 긍휼 받을 때가 이때라.”라는 노래 말의 가사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4-19절에선 예수께서 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시는 중에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신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고향 동네 나사렛에 오시자 전에 하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나셨을 때 회당장이 전해 준 선지자 이사야의 글(사 61:1-2)을 받아 읽으셨습니다. 그 내용은“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였다는 것입니다(눅 4:19).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이사야에게 임하셔서 그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보내셔서 그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며, 포로들에게 자유를, 눈 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됨을 선포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하나님이 그들의 주님 되신 은혜의 해(시대)를 선포하게 하셨다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긍휼의 때를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이 주의 긍휼이 베풀어지고 있는데 따라서 주의 긍휼을 받는 그릇[컵]은 주께서 베푸시는 긍휼로 차오르고 있습니다. 이 주의 긍휼이 가득 차는 때가 다가오고 있는 시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주의 긍휼이 가득 차도 계속해서 주의 긍휼이 베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긍휼이 가득차면, 그래서 주께서 구원하실 하나님이 택정한 백성의 수가 차 충만의 수에 이르면, 그때 세상은 끝이 납니다. 이 날에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베임을 당할 것이 정해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래서“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의 날을 주신 주님의 긍휼을 입은 자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형편이 그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는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에 묶여 있던 아브라함의 자손을 풀어주심에 있습니다. 이렇게 사단에게서 해방되어 사단으로부터 자유함에 있으며, 사단과 함께 처해질 영원한 불못으로부터 자유함에 있는 자들은 그 자유한 날부터‘주 안에서’참 평안의 안식에 있습니다.
이 자유요 참 평안의 안식에 있는 성도들이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을 세상은 보는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진리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아는 기쁨이란 세상에 있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 기뻐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에 한해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할 수 없는 것에서는 기뻐하지 않으며, 즐겁지 않은데 즐거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사단에게서 해방되어‘주 안에서’있음은‘주 안에’있음이 기쁨의 요인이며 즐거움의 요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주 안에’있음으로 기뻐하며,‘주 안에’있음을 즐깁니다.“이때라, 이때라, 주의 긍휼 받을 때가 이때라.”라고 찬송하는 주의 긍휼 받는 이때에 있기에, 이를 감사하는 기도를 주께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