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백댄서(Back dancer)와 함께
난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지만, 노래는 줄곧 불러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여든이 내일모렌데, 어떤 무대든 두렵지 않다. 장소 또한 안 가린다. 종로구 인사동이며 봉천동 등, 어디든 좋다. 출판기념회며 문학상 시상식 등에서 초청해 주면 며칠 연습하고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상경한다. 도중 수원이나 분당이 목적지일 수 있다. 안산이며 인천까지 가 본 적도 있다.
어젠 참으로 내겐 행복한 날이었다. 유명한 작곡가 임정호 선생이 내가 카톡으로 보낸 ‘이별의 부산 정거장’/‘굳세어라 금순아’등을 시청하고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대중가요 목소리로 제법 괜찮다고. 곧 만나기로 했다. 그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이고 싶다. 나아가 내가 대중가요 가사를 할 수 있게 그가 조언해 준다면 금상첨화 아니랴.
하여튼 노래에 관한 한 난 참 괴짜 인생으로 살아왔다. 노인 학교라 덕분(?)이다. 자그마치 1,517회 수업을 주관하며 ‘너영나영 타령(제주도 민요)’이며‘신고산타령(민요)’등 파묻혔었다. 가요도 마구 섞었고. 또 하나의 비정상! 4박 5일씩 3회, 연(延) 197명 노인 학생과 함께 외국 여행을 하면서, 현지 버스 안에서 3백곡의 노래 보따릴 풀기도 했다. 5개국이었다.
열여섯 번에 걸쳐 부산노래를 중심으로 콘서트도 열었다. 우정 출연자도 만만찮아서 남백송(故)/ 쟈니리/ 문정수(전 부산시장)/ 박수정 가수 협회 이사/ 복수미 가수/ 26사단 부사단장 윤성필 대령 등이 무대 위에 섰었다. 이름을 들먹이기 곤란한 아마추어 가수는 셀 수 없을 정도이고. 그러나 주인공인 나보다 소중한 이들이 있었으니, 노인 학생과 초량 시각 장애인 복지관 가족들, 오순절 평화의 마을 장애인들이었다. 그들도 ‘부산 노래’로 무대 위에서 화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 아쉽고 한이 되는 게 있었으니,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백댄서’(Back-dancer)와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의 첫 콘서트 때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시내 최고 연주자 다섯이 도와 줬고, 드라이아이스까지 뿜어 올렸는데, 백댄서를 섭외할 수가 없었다. 세 개 노인학교(내 노인학교/ 강서노인대학/ 중앙 성당 노인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교육 동지 문우 등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5백석 교통문화연수원 대강당에서였다. 그러니 두고두고 땅을 칠밖에. 재작년 서울 문학의 집에서의 열여섯 번째 때도 마찬가지. 난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난 콘서트의 막을 이젠 내려야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4백 만 원을 부담할 만큼, 내 경제 사정도 넉넉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사람 모으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장 김후란 선배한테 체면이 안 선다는 것도 원인이다. 명분 또한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TKBN에서 며칠 전 연락이 왔다. 종로구 인사동 너른 공간에서 ‘절창 (絶唱/나를 치켜세우는 표현)’을 한 번 해 보지 않겠느냐는….백댄서를 거느리고(?) 무대에 서게 한다는 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권유를 받은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다. 왜? 너무 뻔한 장삿속이 엿보여서다. 대신 이번엔 달랐다. 제법 오랫동안 TKBN에 정을 들여왔었던 터이고, 방송국장이 참 진실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름 남짓 지나면 녹화한다. 곡목은 엉뚱하게도‘아내의 길’(태극기를 흔들며)/ ‘함경도 사나이’(부산 노래)다. 템포도 비슷해서 연달아 부르기도 듣기도 거부감이 덜하다. 이틀 뒤 올라가 미라 조율하기로 했다.
백댄서들이 혼란스럽고 힘듦은 물어보나마나. 적이 염려가 된다. 모르긴 하되 춤이란 대개 빠른 템포의 곡에 맞춰야 신나게 출 수 있잖을까?
이런 추억도 있다. 어느 해 마지막 날 난 신라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법산 큰스님이 초청한 송년회에 갔던 적이 있다. 동아대학교 부총장이며 몇몇 교수, 밀양경찰서장, 화쟁(和諍)포럼의 불자(佛子) 등이 모여 있었다. 이윽고 큰스님의 청을 받고 난 애창곡 아일랜드 민요 Oh Danny Boy를 불렀다. 한데 기가 막힌다. 또 다른 큰스님이 북 장단을 맞춘 것이다. 야단이 났고말고.
그러다보니 마침내 이런 기막힌 일도 펼쳐질지 모른다. 내가 공개된 공간에서‘주여 이 죄인이’를 봉헌하고, 백댄서들이 거기 맞춰서 현란한(?) 춤을 추는….찬불가 한 곡도 곁들이고.
곧 졸저 소설집 <연적의 딸이 살아 있었다>가 나온다. 이심전심인지 누가 권하더라. 어디서 북 콘서트 겸 사인회를 열었으면 얼마나 좋겠다고. 내 문학 동지와 가수들도 더러 오고, 트럼펫 ‧ 색소폰 주자(奏者)들이 도와주는 가운데 모두가 어울려 갖가지 노래를 부르는 그런….물론 백댄서들이 주인공일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