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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팀인 버스커 버스커가 발표한 ‘여수 밤바다’. 당장에 여수로 달려가 그곳의 밤을 만나고 싶게 만들었던 곡이다. 여수의 밤바다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은 기분. 밤 정취도 정취지만 여수의 낮도 특별하다.
아침·밤으로 바람이 제법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아직 포근한 햇살이 남아있다.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오동도 산책을 나서보자.
오동잎을 닮은 섬, 예전부터 오동나무가 많아서 이름 붙여진 오동도.
127,000㎡의 작은 섬이지만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오동도에서 남쪽 거제지심도까지 이어진다.
이름은 ‘오동’이지만 이곳은 동백나무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참식나무, 후박나무 등 190여종의 수목과 함께 동백나무가 큰 군락을 이르면서 ‘동백섬’ 또는 ‘바다의 꽃섬’으로도 불린다.
동백꽃이 끈기, 의지, 희생정신을 상징하는 만큼 강한 해풍을 견디며 오랜 시간 꽃을 피워낸다. 지금은 붉은 꽃잎 대신 파란 잎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나름의 멋은 있다. 마음으로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걸음을 옮긴다. 동백이 기다리는 계절에 다시 한 번 걸음을 해보겠노라는 생각과 함께.
오동도로 들어가는 길에도 동백을 만날 수 있다. 오동도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육지와 섬을 잇는 방파제길을 먼저 건너야 한다.
10분 정도 도란도란 걸음을 걸을 수도 있고, 자전거를 빌려 방파제길을 달릴 수도 있다. 그리고 동백열차를 타고 느긋하게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성인 편도 요금 800원. 걷는 속도와 다름 없는 느긋한 속도지만 열차는 여행의 다른 이름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동백열차를 타고 동백섬으로 향했다.
음악분수가 춤을 추는 광장을 지나 산책로로 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구릉성 산지라 특별한 복장과 준비는 필요 없다. 그저 시간만 있으면 된다.
바다를 지나 들어온 숲길은 고요하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뻗어있는 후박나무와 한데 무리져 사람들을 맞는 동백나무, 하늘 높게 뻗어 오른 해송 등 숲을 지나고 나면 그 끝에 바다가 기다리고 바다를 지나 돌아가면 다시 숲이 이어지는 지루할 틈 없는 산책. 대나무의 일종인 시누대가 만들어내는 터널도 이색적이다. 마주보고 선 시누대가 서로를 의지하며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다가 만들어낸 풍경도 일품이다. 암석해안에는 소라바위·병풍바위 등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용굴’도 지나칠 수 없다. 오랜 시간 이곳을 오가는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이다.
달팽이 우체통도 이곳의 명물이다. 느림보 우체통으로 불리는 ‘달팽이’ 우체통에 모인 엽서는 12월 일괄적으로 배송된다. 잠시 잊고 있던 추억을 뒤늦게 찾아온 엽서 한통에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바다 위 산책이 끝난 뒤에는 사람사는 풍경을 만나러 가보자. 여수 고소동 천사 벽화 골목길. 여수의 가장 오래된 산동네 골목 1004m길 담벼락이 그림에 담겼다. 1004m의 길이 이어져 있어서 ‘천사 골목’이라는 예쁜 이름도 붙었다.
거미줄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얽혀 있는 이곳에서는 여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벽화를 쫓아 골목을 돌아나오면 바다가 보이고 돌산대교가 보인다.
오랜 삶의 흔적이 담긴 담벼락에는 고운 진달래꽃 그림에 시 한 수가 쓰여있기도 하고 귀여운 바다 속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낡은 담벼락에 물고기가 날아오르기도 하는 벽화 마을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화살표를 따라 골목길 탐험을 한다. 이곳을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도 슬쩍 엿볼 수 있다.
여수 구항에서 시작해 고소동 언덕을 거쳐 진남관까지 총 7개 구간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지치면 잠시 이순신 광장으로 내려와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바다를 보며 마시는 차 한잔 낚시대를 드리우고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를 더해준다.
벽화골목을 도는 사이 해는 뉘엿뉘엿 바다를 넘어 내일로 향해 간다. 어둑해진 하늘, 기다렸던 여수의 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앞바다에서 잡아왔다는 감성돔에 싱싱한 멍게, 해삼 등… 바다가 물컹하게 씹힌다. 좋은 안주에 술 한잔 빠질 수 없다. 눈 앞에는 밤바다가 잔잔하게 출렁이며 흥을 돋는다. 입과 눈으로 여수 바다의 맛과 멋을 느끼는 시간, 돌산대교의 불빛은 그 낭만에 온기를 더한다.
/글·사진=김여울기자wool@kwangju.co.kr
'쫘~아.' 참숯 열기에 달궈진 석쇠에 고기를 올리자 담백한 향기가 코끝를 자극했다. 여느 고깃집에서 판매하는 삼겹살. 하지만 고기에 노란색 가루가 골고루 뿌려져 있었다. 특제 양념가루라도 뿌린 걸까. 식당 주인 김경환(41)씨는 "홍어가루"라고 했다. 홍어가루와 삼겹살의 만남. 고기 특유의 담백함이 진하게 남았다.
◆홍어가루 삼겹살 '산적'
식당 이름이 심상찮다. '산적'.
"고기의 맛을 가장 잘 아는 집단이 누굴까 생각했더니 산적이더라고요. 활어 위주의 고향 여수에서 제대로된 고기맛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당장 '산적들'이 쳐들어와도 엄지를 치켜세울 맛입니다."
- 홍어가루가 묻힌 삼겹살을 파는 여수 ‘산적’. / 김영근 기자
김씨는 "단골들이 고기를 먹고 싶을 때 '산적'생각을 한다고 말할 때 기분이 좋다"며 "1등급 국내산 고기와 최고급 참숯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랬다. 특유의 참숯향이 고기에 배어있는 데다, 홍어가루 때문인지 감칠맛이 돌았다. 물리지 않았다.
부인 강해옥씨는 "홍어가루가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고기의 지방도 분해해줘서 그렇다"고 했다. 고기는 12시간 동안 홍어가루에 숙성된 상태다. 신뢰감을 주기 위해 가루를 또 뿌린 것이다.
'산적'은 2006년 11월 국내 처음 '홍어처리 방법 및 처리된 홍어를 이용한 음식물 부패 지연방법'에 관한 특허를 획득했다. 30일가량 숙성된 홍어를 '동결→진공→건조' 과정을 거쳐 그대로 분말화하는 데 성공했다. 숙성된 홍어는 진한 향과 맛 때문에 대중화가 힘들지만 가루 형태라면 그렇지 않았다. 홍어가루는 산성계열의 음식을 인간의 몸에 좋은 약한 알카리성으로 바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각종 질병 치료에 좋은 홍어의 효능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특유의 냄새를 제거했다"며 "다른 음식들과도 잘 어울려 맛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수 출신인 김씨가 홍어와 만난건 20년전. 처가 전남 장흥에서 제사 때 처음 숙성된 홍어를 먹고선 그 이후로 홍어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홍어가루를 넣은 라면도 인기 메뉴다.
김씨 부부는 "홍어가루를 모든 음식에 첨가하는 '천연 조미료'로 만드는 게 최종목표"라며 "음식을 팔면서 연구도 계속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시 학동 182-6 한국수자원공사 주차장 옆, ☎(061)681-0048.
◆선어 원조 '민들레집'
"이 정도면 괴물이여."
민들레 선어회 주인 임정숙(57)씨가 길이가 1m가 족히 넘는 민어와 성인 몸통만한 독병어를 들어 보였다.
- 민어·삼치·병어를 숙성한 선어회를 전문으로 하는 여수 ‘민들레집’. /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20년간 거래한 선장이 좋은 고기를 잡으면 먼저 우리집에 전화해요. 먼바다에서 갓 잡은 자연산이라 이렇게 커요."
여수출신 만화가 허영만, 시인 도종환, 영화배우 강수현, 가수 안치환·박주희 등이 이 선어횟집을 찾았다. 선어는 육질이 쫄깃한 활어와 다르다. 자연산을 즉살해 피를 뺀 뒤 2~3일 숙성해야 제 맛이 난다. 주로 민어와 삼치, 병어가 재료로 쓰인다. 씹는 맛보다는 감칠맛이 뛰어나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다.
삼치는 이 집의 20년 경험이 담긴 특제 간장소스를 찍어 마늘·고추·양파와 곁들이면 좋다. 메실장아찌와 된장과도 잘 어울린다. 민어와 삼치는 주로 생배추에 된장을 넣어 싸먹는다. 된장도 직접 담은 것이다. 배추에 갈치속젓을 넣어도 좋다. 톳나물, 미역과도 잘 어울린다.
임씨는 "손님들이 김치가 너무 맛있다고 해서 갓김치 등 각종 김치도 판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갈치조림도 인기 메뉴.
이 가게는 여수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선정한 제1호 으뜸맛집. 수산업 종사자들이 선호하는 식당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봉산동 271-1 원광한방병원 옆, ☎641-7001.
여수시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사와라' 선어횟집도 맛이 좋다. 싱싱한 거문도산을 고집하기 때문에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않으면 아예 문을 닫는다. 학동 28-5 흥국체육관 주변, ☎686-3735.
근해에서 물고기 이동 경로에 그물을 설치해 고기를 잡는 이강망. 3대째 이 방법으로 자연산을 낚는 '군내리 활어 횟집'도 가볼 만한 집이다. 학동 95-1 여수소방서 뒤편, ☎681-2226.
바다를 즐기고 싶다면 '대교 해변 횟집'. 돌산읍 방면으로 돌산대교를 건너 왼쪽에 있다. 돌산읍 우두리 799-192, ☎644-1009. 여수 서대회 전문 '구백식당'도 빼놓을 수 없다. 교동 678-15 여객선터미널 맞은편, ☎662-0900.
◆통장어탕 원조 '상아식당'
"보약이 따로 없어요."
14년째 통장어탕을 끓이고 있는 상아식당 주인 손영숙(61)씨는 "이게 보약"이라고 했다. 성인 손목 두께의 대형 붕장어를 3~4㎝ 길이로 자른 뒤 녹두와 고사리, 고춧가루 등을 넣어 끓인다. 3~4시간 장어뼈로 다린 육수를 첨가하고 손으로 만든 된장과 우거지도 넣는다.
손씨는 "장어탕에 거부감 있는 사람들도 좋아한다"며 "귀한 손님에게 대접한다며 포장해 가는 손님들도 많다"고 말했다. 여수 통장어탕 원조식당이다. 여름에는 끓인 탕을 냉동 포장해 택배로 판매하기도 한다. 국동 1082-7 잠수기수협 상가, ☎643-7840. 물메기탕, 도다리쑥국 전문점 '십장생'도 숨겨진 맛집이다. 화장동 761-12, ☎691-4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