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암기념관에서는 개관(2008) 이후 '서귀소옹과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와 교유했던 20세기 서화거장들을 재조명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과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1911-1976)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전시다.
남농 허건은 남종화의 뿌리를 내린 진도 운림산방에서 태어나 근현대 목포 및 호남화단의 좌장이자 상징적 존재로서 후진 양성에도 기여한 공로가 지대하고, 한국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산수화와 소나무 그림이 중심을 이루며 속도감 있는 특유의 독필(禿筆) 또는 갈필(渴筆)을 빠르고(速筆) 자유로이 구사해 색채의 섬세함과 밝은 효과를 향토적 정취로 살렸다는 평을 듣는다. 실사를 바탕으로 하건 실경을 바탕으로 한 의경(意景) 이건 종횡의 필치를 속도감 넘치고 자신 있게 구사해 그려낸 나무와 산 등의 경물(景物), 대담한 수묵의 농담과 설채로 연출한 개성 있는 화면은 그의 그림을 특징이다.
남농의 작품은 1930년대의 남농산인(南農散人)시기, 1940-50년에 이르는 기간의 남농외사(南農外史)시기, 그 이후의 운림산방주인(雲林山房主人)시기로 구분되는데, 이번 전시는 <자화상>과 운보 김기창이 그린 <남농초상(南農肖像)>을 비롯하여, <송하탄금(松下彈琴)> <금강산소견(金剛山所見)> 등 초기작, <소춘(小春)> <산고수장(山高水長)> 등 산수화, <사송도(四松圖)> <쌍송도(雙松圖) 가리개> 등 소나무 그림, <서귀포소견(西歸浦所見)> <제주풍경(濟州風景)> 등 제주도 실경 그림 등 남농의 전시기를 아우르는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또한 <각(覺)> <서화전가이백년(書畵傳家二百年)> <무애국량(無碍局量)> 등 소암이 남농에게 써 준 글씨와 남농의 회갑을 축하하며 당대 내로라 하는 서화가들의 글씨와 그림을 모은 병풍, 남농과 소전 손재형이 합작한 <매죽병청(梅竹並淸)> 등 당대 교유했던 서화가, 문인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남농과 소암, 그리고 제주와의 인연
소암과 남농의 끈끈했던 예술교유는 당시 제주의 문화예술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여큰 영향을 끼쳤던 청탄 김광추 선생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청탄의 주선으로 남농은 문기선(당시 제주대 미술교육과 교수), 소암, 양중해(시인), 서상형(당시 평주원 사장), 이완규(당시 제주KBS 방송국장) 등으로 인사 교유의 폭을 넓혔고, 이러한 인연이 쌓여 제주 모 다방에서 전시회까지 갖게 되었다. 그 후에도 남농은 문기선, 김승근(당시 중학교 교사)을 통해 제주와 소암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중에는 이와 같이 남농과 교유했던 청탄, 소암, 문기선, 김승근 등과 같은 인물의 소장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청탄이 지인에게 권고해 매입 소장된 남농의 <소춘小春>(1943년) 팔곡병과 <남농소암 서화합벽-춘하추동春夏秋冬>(1970년대) 사곡병(고 한충석 유족소장)은 처음 공개되는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