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떨기나무와 물가의 상록수/예레미야 17:5-11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에 의하면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은 인생과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인생입니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사막이냐 물가냐 하는 토양의 차이입니다. 사막에 있으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풍성한 생명을 누리지 못합니다. 반면 물가에 있으면 생명이 넘쳐 열매를 맺습니다. 사막에 있다는 것은 사람의 의지하는 것이고, 물가에 있다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내가 비록 풀같이 초라한 인생이어도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을 넘치도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은 인생
저주를 받을 인생
본문 5절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활동을 할 당시 남 유다의 왕과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자기 지혜와, 용사의 용맹과, 물질의 부요함을 자랑하였습니다. 바벨론의 공격에 대하여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도움을 얻으려고 외교활동을 펼치면서 저들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시대의 선지자였던 이사야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책망하였고, 애굽을 의지하는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31:1-3)하였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는 아버지의 눈에서 벗어나면 자유가 있을 줄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이렇게 절규하였습니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7) 우리가 아무리 자신의 지혜와 용맹과 물질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저주받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가지가 뿌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 순간부터 말라져 밖에 던져져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의 떨기나무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저주를 받을 인생을 본문 6절에서 사막의 떨기나무로 비유합니다. 사막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지 않는 곳입니다. 그 사막에 있는 떨기나무와 같은 인생은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첫째,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사막에서는 비가 내리는 것처럼 반갑고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막에는 생명의 단비가 내리는 것을 보기 어렵습니다. 떨기나무가 사막에서 물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는 생수와 같은 은혜가 없습니다. 기쁨도 없는 삭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게 됩니다. 새번역성경에서는 광야 간조한 땅을 ‘소금기가 있는 땅’이라 표기하였습니다. 소금기가 많은 땅에서는 농사가 되지 않고 사람이 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외롭고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가운데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은 분이 한 분도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신의 지혜와 힘과 부함을 자랑하지 마세요. 교만하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 겸손하세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탕자처럼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279장) ♬ 인애하신 구세주여 ♬
물가에 심긴 상록수와 같은 인생
본문 7-8절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그 사람을 물가에 심어진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➀ 그는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습니다. ➁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➂ 잎이 청청합니다. ➃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습니다. ➄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이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는 새 힘을 얻어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사40:31)
여기에서 우리가 꼭 짚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에도 더위와 가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인생살이에 아무 걱정이 없고, 시험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고, 의술로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없는 태산과 같은 문제를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심겨져 있고, 그 안에 뿌리를 뻗고 있기 때문에 시들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살전5:16-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환난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세상을 이기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하였습니다. 여기 ‘모든 것’에는 우리의 성공과 부요, 건강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 가난함, 병드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선을 이루실 줄 믿으니 우리는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의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마음과 행실대로 보응하신다
마음과 행실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본문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조차 믿을 수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가진 나 자신이나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하거나 배신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시험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무척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추악한 자신의 마음을 보는 순간 참담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죄인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 나아와 고백해야 진정한 자유가 있고,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됩니다.
각 사람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불꽃과 같은 눈으로 우리의 생각과 은밀한 말과 행동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라고 하는 코람데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인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이 저주받은 인생이 되느냐, 아니면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축복받은 인생이 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삶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2:17)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입술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순종하는 참된 신앙고백이 있습니까?
본문 11절에 불의로 재물을 모으는 자를 자고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고새가 둥지에 알을 낳으면 뻐꾸기가 자고새가 없는 사이에 자기 알을 자고새 둥지에 낳아놓고 갑니다. 어미 자고새는 둥지에 있는 알이 다 자기 것인 줄 알고 계속 품고, 먹이를 물어주느라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어느 정도 뻐꾸기 새끼가 자라면 어미를 따라 날아가 버립니다. 자고새는 죽어라고 키운 새끼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빈 둥지만 쳐다봅니다.
부자가 되면 행복할 줄 생각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많은 재산을 모았다 할지라도 자고새처럼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중년 이후에 홀로 남겨져서 빈 둥지만 바라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은 풀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시92:7)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의 흥왕함은 잠시 잠깐입니다. 결국은 마르고 시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면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이 비참한 삶을 살게 되고, 자고새와 같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할 때 여러분은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축복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신앙의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깊이 박읍시다. 삶이 힘들고, 경제가 어렵고, 고난이 와도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지 맙시다. 무더운 여름, 휴가철을 맞이하였지만 주일을 성수하고, 모든 예배를 빠짐없이 드리며,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과 더 깊은 영적 교제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은 따로 피서를 가지 않아도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