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 제대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청자발굴과 재현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정도로 나는 젊은 시절부터 강진의 향토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강진읍내에서 다양한 학술발표가 진행될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오고 있다.
이는 지역 주민들 스스로 내 고장에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서 유창하게 설명할 정도로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청자와 향토문화와 강진의 향토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생각이었고 다행스럽게도 강진 곳곳에서 나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청자사업소가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이후인 1986년 무렵이다.
이 시기 강진군에는 향토문화에 대해 공부하자는 열풍이 불었고 그 열풍은 강진향토문화연구회 창립으로 이어졌다. 이때 연구회에는 나를 비롯해서 윤동환 전 군수와 김승홍 전 강진군의회 의장 등 지역 정치인들 다수와 다양한 군민들까지 약 30여명이 참여해 발족됐다.
이 연구회에는 나도 창립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왔고 2대회장을 맡아 2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강진향토문화연구회는 비록 전문가들은 아니었지만 내고장 강진의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연구하고 활동해 글을 작성해 책으로 펴내는 일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바로 강진의 마을사를 책으로 펴냈던 일이었다.
나를 비롯한 회원들은 저마다 각자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어 시간을 내기 어려웠지만 퇴근시간 이후와 주말을 이용해 강진의 마을사 연구에 적극 동참했다. 조사를 하기 앞서 우리는 당시 목포대 이해준 교수를 초청해 마을사를 조사함에 있어서 어떻게 이뤄져야 하고 어떤 내용들이 책으로 담겨져야 하는지 등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은 이후 우리는 시간이 날때마다 마을을 찾아가 조사를 실시했다. 매년 1개 면단위를 선택해 조사를 해서 책으로 펴냈다. 우리는 각 마을별로 직접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아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위치와 이름의 유래와 전해지는 전설에서부터 마을에 처음 정착한 성씨와 사람, 마을 인구와 논과 밭은 얼마나 되는지, 어느 성씨가 몇 명정도 살고 있는지 등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조사해 기록했다. 당연히 조사를 위해서는 각 마을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마을주민들과 만나 조사를 해야했는데 비용이 소요됐다.
이때는 지원받는 단체가 아니었고 자발적으로 조직된 단체였기 때문에 회원들의 회비를 걷어 운영됐다. 조사에서부터 책 발간까지 모든 비용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진행했다. 그만큼 회원들 모두가 강진의 향토역사와 문화 연구에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시작해서 우리는 매년 1권씩 책을 펴냈고 가장 마지막으로 강진읍편의 마을사 책을 발행하며 10년간 마을사 편찬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강진에는 마을사를 정리한 자료나 책이 거의 없다보니 참고할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발로 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회원들은 강진의 마을사 책을 펴내면서 힘들고 많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강진의 역사를 기록했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매년 여러 가지 강진의 향토 역사에 대해 연구해 글을 남겼는데 나도 전문분야인 청자에 대해 발굴조사와 재현사업 시절을 겪었던 내용들을 토대로 글을 작성했다. 회원들의 글을 모아 탐진문화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정리=오기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