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묵상 #079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작사자: 정용철(鄭容徹, 1918-2018)
작곡자: 곽상수(郭商洙,1923~2013)
찬송곡조(Hymn Tune): 그 명령 따라서
찬송가사
1.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2.
널 미워 해치는 원수라도
언제나 너그럽게 사랑하라
널 핍박하는 자 위해서도
신실한 맘으로 복을 빌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3.
나 항상 주님을 멀리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죄인을 사랑하사
주께서 몸 버려 죽으셨다
속죄의 큰 사랑 받은 이 몸
내 생명 다 바쳐 충성하리 아멘
https://youtu.be/wFqCrfLW5tk
[찬송 묵상]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37~39)
<개편찬송가>에 ‘참 사랑 하오리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려 널리 알려진 우리 찬송가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계명의 그 내용을 압축한 찬송가로 주님이 가르치신 계명을 잘 표현하고 있는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기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기를,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사랑하기를 몸소 가르치기 위해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음을 찬송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게 하십니다.
그렇지만 사실 2절 가사와 같이 원수를 선대하며 그를 위하여 축복 기도를 한다고 하는 것은 순교사화(殉敎史話)에서나 있을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내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표준은 주님께서 정하신 대로 원수까지 사랑하고 그를 축복하는 높은 차원에 두어야 합니다.
그 목표까지 우리의 믿음이 도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속죄의 큰 사랑 받은 우리이기에 생명을 다 바쳐 충성할 것을 선포하는 찬송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버림받은 몸이 되었기에 찬송을 부르는 새롭게, 또 다짐하게 하는 찬송입니다.
https://youtu.be/ttLdfMVfhfU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자: 정용철(鄭容徹, 1918-2018)
정용철 목사는 경북 청송에서 정주봉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두 아들 재두․재홍 목사가 3대째 목사로, 그리고 손자 계성 목사가 4대 째 목사가 됨으로써 4대째 목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1948년 조선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1955년부터 한국기독교 장로회 신암교회에서 목회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후 일본 오사카에 있는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 신학부에 유학하였습니다.
그는 197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데이비스 앤드 엘틴스대학에서 명예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워싱턴 연합자로교회와 트라이벨리 한인교회, 나성 한인연합장로교회 등에서 17년 동안 담임목사가 없는 교회에서는 임시목사로 교회가 필요한 곳에는 개척교회의 목사로 목양하기도 했습니다.
정용철 목사는 외로운 목회자의 길을 걸었으며 분쟁하던 교회에 화평을 심었고 문제 있는 성도들에게 인내하며 사랑을 부어 넣었습니다.
1988년 차세대 이민교회를 위해 영하장학재단을 설립하고 많은 신학생들을 도왔으며 2018년 7월 미국 시애틀 근교 자택에서 별세하였습ㄴ;다.
다음은 미주 크리스천투데이에 난 그의 기사입니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와 워싱턴 연합장로교회 목사로 이민목회를 시작했다. 이 곳에서 13년 목회한 후 씨애틀 필그림장로교회와 트라이벨리한인교회, 나성 한인연합장로교회, 리치몬드 한인장로교회, 애나폴리스 한인등대교회, 샬롯 한빛장로교회, 신시내티 한인장로교회, 포트랜드 벧엘장로교회, 포트랜드 한인장로교회 등에서 17년 동안 담임목사가 없는 교회에선 임시목사로, 교회가 필요한 곳에는 개척교회의 목사로 목양했다.
정 목사는 결코 화려한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 교회와 교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가슴에 품고 사람들의 잘못을 내 잘못으로 지고 주님이 머물라고 하실 때는 고난이 있어도 묵묵히 머물렀고 주님이 떠나라 하실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외로운 목회자의 길을 걸어 왔다. 일생동안 사람 앞에 비굴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결코 교회 위에 군림하지 않는 봉사자의 길을 걸었다. 분쟁하던 교회에 화평을 심었고, 문제 있는 성도들에게 인내하며 사랑을 부어넣었다. 1988년 차세대 이민교회에 바르고 귀한 지도자들을 육성해야하는 사명을 깨닫고 영하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오늘까지 많은 신학생들을 돕고 있다….”
작곡자: 곽상수(郭商洙,1923~2013)
곽상수는 충북 청주 태생으로 경기중 일본 야마구치고교를 거쳐 동경대 미학과, 서울대 철학과, 웨스트민스터 콰이어칼리지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그후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로 교회음악과 합창, 그리고 오르간 음악의 계몽과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한국합창총연합회, 한국오르가니스트협회, 교회음악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찬송곡조 / 그 명령 따라서
1967년 개편 찬송가 편찬시 당시 음악위원으로 있던 곽상수 교수가 이 찬송곡으로 작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