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지는 사람 3
그렇게 해서 지함은 임꺽정의 소굴을 벗어나
무사히송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박지화가
안도의 숨을 길게내쉬었다.
"황진이가 자네 목숨을 건졌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함이,
자네 어떻게 선생님 안부는 묻질않는 것인가?
벌써들 이야기를 다 했나?"
"아닙니다."
정휴가 박지화의 핀잔을 대신 받았다.
"자네, 선생님 소식은 궁금하지도 않은가?"
"형님도...이미 산방 아랫마을에서 들었습니다
곧산소에 올라가 뵙겠습니다."
"그럼 그렇지. 우리와 함께 다닌 분이
선화하신몸이었다는 것도 들었는가?"
"예,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걸세. 참, 통 믿겨지지 않는 일아닌가?"
"선생님께서 저희를 그렇게 아끼실 줄은
미처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이네. 아 참, 정휴 스님.
지함에게전하려던 책 이야기를 하게.
미안해 할 것 없네.
이미그렇게 되어버린 일이니..."
박지화가 <홍연진결> 이야기를 꺼내자
정휴의얼굴이 붉어졌다.
정휴는 낙담한 마음으로
지함에게 자초지종을이야기했다.
"그러면 내가 태운 책이 선생님께서 부촉하셨던
그책이란 말인가?"
이야기를 듣고 난 지함이 정휴에게 반문하였다.
"예. 죽을 죄를 졌습니다."
"어쩌겠는가? 이미 불에 타버린 것을...
할 수 없는일이니 잊게나."
지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아니네. 지화 형님 말씀이 옳으이.
이제 와서 이미 잿더미가 된 책에
미련을 둔다고별 수가 생기겠는가.
그만 두고 선생님 산소나 일러 주게."
정휴가 앞장섰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지함이 박지화에게 말하자
전우치, 남궁두도따라나섰다.
"저희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게나."
정휴가 앞장서고, 두 사람은 지함의 뒤를 따랐다.
지함은 화담의 산소에 이르자
송악을 둘러싼좌우산세를 살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명당입니까?"
"이 자리는 명당이 아닐세."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람으로 치면 단전(丹田)의 자리라네.
대개자궁의 형상을 한 곳을
편안하고 다복한 자리로치는데,
이런 단전 자리는 여간 해서는 시신이견디지를 못하지
기가 너무 뭉쳐 있어서 뜨거워서그렇다네.
그래서 사람들이 꺼리고 피한다네.
웬만한사람은 이런 자리에 묻히지도 못한다네."
"그렇습니까?"
"송도에는 원래 풍수(風水)의 풍을 가두는산은많지만
수는 없다네.
그런데 이 자리는 좀 특별한데가 있어."
"무슨 말씀이옵니까?"
"이 세상의 조산(祖山)은 곤륜산(崑崙山)이라네.
그리고 조선의 종산(宗山)은 백두산(白頭山)일세.
또한 이 땅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가
백두대간(白頭大幹)일세.
저 곤륜산에서부터 달려와
백두산에서 한번 소용돌이친 지기(地氣)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가 머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평양일세.
그리고 그 기운이 직통으로 뻗치는 곳이
바로 이곳 송악일세."
"그런 다음에는 어디로 흘러갑니까?"
"한양으로 흘러간다네."
"그 다음에는요?"
"계룡산, 그 다음에는 가야산, 그 다음에는 전주,
전주에서 다시 송악으로 돌아오게 된다네.
그리고지기가 머무는 곳마다
다시 또 흘러가는 기의 길이따로 나 있다네."
"땅의 기운도 살아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이치로 옛 조선이 평양에 도읍을 두었고,
고려 왕조가 송도에 도읍을 정했고,
조선 이조는한양에 도읍을 정한 것이네.
참위를 즐기는 자들이,
계룡이 다음 왕조의 도읍이 되리라고 말하는 것도
다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거라네."
"그런데 화담 선생님은 왜 명당에 몸을 뉘지 않고
이곳을 택하셨을까요?"
"그야 화담 선생님이기 때문이지.
이 자리는범인에게는 명당이 아니지만
화담 선생님 같은분에게는 명당이라네.
진정 큰 명당은 바로 이곳이란말일세.
이 자리야말로 팔도를 두루 지나다니는
지기(地氣)를 끌어모을 수 있는 자리라네."
"팔도에 다 통하는 자리라구요?"
"그렇다네.
조선의 경락(經絡)이 이 한 자리에 닿아있다네."
"그런데 왜 경주에서 지기를 잃으셨습니까?"
"이 자리를 흐르는 지기는 경주에서 돌아오게 되어있네.
그 위로는 다시 돌아왔다가 딴 방향으로내려가야 하네."
"형님, 풍수를 듣긴 했으나 잘 알지는 못합니다.
도대체 풍수와 기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입니까?"
"자네들, 앉아 보게. 내가 풍수를 말해줌세.
풍수(風水)란 생기를 품은 바람과 물을
끌어모으는것일세."
"바람과 물에도 기가 있다구요?"
"천지간에 충만한 것이 기라네.
그렇다면 그러한기가 어떻게 돌아다니겠는가?
하늘에서는 바람을 타고움직이고,
땅에서는 물을 타고 흐른다네."
"생기(生氣)는 무엇입니까?"
"먹지 않아도 배 부르고 절로 힘이 솟는 기운일세.
기가 뭉쳐 있는 것이지.
그래서 이러한 생기를 얻기위하여
장풍득수(藏風得水)란 말이 생겨났고,
이를줄여 풍수라고 하네."
"바람을 막으려다 보니까 산이 필요한 것이군요."
"맞네. 바람 막는 것은 산이 제일이라네.
바람을막아 모으고,
어떻게 지니는가에 따라 산을 달리부른다네.
그래서 북쪽에 있으면 현무(玄武)요,
동쪽에 있으면 청룡(靑龍)이요,
서쪽에 있으면 백호(白虎)요,
남쪽에 있으면 주작(朱雀)이라고 하는것일세.
이 네 산을 신(神)이라고 하여 사신(四神)이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이 산들이 골고루 있지 못하는 데있다네.
한쪽이라도 터지면 아무리 바람을 잘 막아도
새어버릴 것 아닌가?
결국 생기를 머금은 바람을
얼마나 잘 머금느냐가 풍의 기본이라네."
"그렇게 보면 송도는 어떻습니까?"
"송도는 사신이 잘 버티고 있으므로
큰 강이 없어도충분한 것일세."
"한양은 큰 강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한양은 본디 서쪽이 터져 있는데
물길이지나가면서 그쪽으로 빠지는 생기를
막기도 하고보충하기도 하므로 길한 것으로 여긴다네."
"그러면 수는 어떻게 생기를 나르고,
그것을 어떻게끌어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바람(風)이 하늘의 기운을 실어나르는 것이라면,
물(水)은 땅의 기운을 실어나르는 것일세.
그러므로풍이 약할 때에는 수를 불러야 하네."
"풍이 약하다는 것은 산이 약하다는 말씀일 터인데,
산을 어떻게 나눕니까?"
"산에도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이작용하므로
아무 물(水)이나 끌어들여서는 안 되네.
산은 24방위로 나누어 24산을 두고,
이 24산을 다시오행으로 나눈다네."
24산이 무엇입니까?"
"자 계 축 간 인 갑 묘 을 진 손 사 병 오 정 미 곤
신 경 유 신 술 건 해
임(子癸丑艮寅甲卯乙辰巽巳丙午丁
未坤申庚酉辛戌乾亥壬)이라네."
"오행으로는 어떻게 가릅니까?"
"신경유신건(申庚酉辛乾) 다섯 산을
금산(金山)이라고 하네.
인갑묘을손(寅甲卯乙巽) 다섯
산을 목산(木山)이라고 하네.
축간진미술곤(丑艮辰未戌坤) 여섯 산을
토산(土山)이라고 하네.
해임자계(亥壬子癸) 네 산을수산(水山)이라고 하네.
사병오정(巳丙午丁) 네 산을화산(火山)이라고 하네."
"그렇게 나뉜 다섯 가지의 산을
어떻게 물로써보충합니까?"
"금산(金山)은 사방(巳方)에서 물이 흘러와
인갑묘(寅甲卯) 쪽으로 가는 게 좋고,
목산(木山)은
해방(亥方)에서 신경유(申庚酉) 쪽으로 흘러가는 게좋고,
수산(水山) 토산(土山)은 신방(申方)에서
사병오(巳丙午)쪽으로 흐르는 게 길하다네.
화산(火山)은 인방(寅方)에서 해임자(亥壬子) 쪽으로
흐르는 게 좋은 것일세.
이 물의 종류도 일곱 가지가있어
칠수(七數)라고 부른다네.
칠수로는 진룡수승룡수 수룡수 조룡수 요룡수
호룡수 현무수가 있네."
"명당 하면 여인의 자궁 형국을 주로 잡는 이치는
무엇입니까?"
"땅의 생기라면 음기인데, 그게 어디서 나오겠는가?
그와 같은 이치라네."
"그래서 그렇군요.
풍수가 기 철학을 근거로 마련된 것임을
오늘에야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기 하나로 세상을 모두 재려 해서는 안되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형님, 화담 선생께서
선화하신 몸으로 여행을 다니셨다니,
대체 그게가능한 일입니까?
눈으로 직접 보질 못해서 그런지 통믿겨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풍수 이야기를 꺼낸 것일세.
서쪽에있는 동산(銅山)이 무너지면
그 산에서 난 구리로만든 종(鍾)이 다 운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는가?"
"그야 동쪽산에 불이 나면 서쪽산에 구름이 인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렇다네. 화담 선생님의 묘자리는
팔도를흘러다니는 기의 길목일세.
그래서 화담 선생님은비록 혼백이 몸을 떠났어도
그 지기(地氣)의 흐름을타고 혼백을 움직이셨던 것일세.
그러나 선생님의지기가 경주까진 갔으나
그 이북으로는 뻗치지 못해서
<신서비해>를 내세웠던 것일세."
"그렇다면 <홍연진결>을 지킬 수도 있지않았겠습니까?"
"바로 말했네.
그런 이치로 미루어보면 선생님이
그책<홍연진결>을 함부로 불에 타도록
두실 분이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터인즉."
"그렇다면?"
"내 그 책 내용을 다 알고 있다네."
"예?"
"그때 내가 다 읽었다네.
화담 선생님이 내게전한다는 말씀을
그 안에 서 다 읽었다네."
"그렇습니까? 역시 화담 선생님은..."
"그러니 다시는 미안해 하지 말게."
"그런데 책은 왜 태우셨습니까?"
"책을 태운 것이 아니라 종이를 태웠네.
책은 이미내 머리 속에 들어가 있네."
"그래도 선생님이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쓰신책인데..."
"자네 아직도 불법의 골수를 들여다보지 못했구먼.
화담 선생님이 내게 남긴 것은
종이도 먹물도 아니네.
강을 건너려면 뭐가 필요한가?"
"그야 배가 있어야지요."
"강을 다 건너면 배는 어떻게 하는가?
계속 끌고다니는가?"
"아닙니다. 버려야지요."
"책도 그와 마찬가지일세."
정휴는 머리를 숙였다.
"결국 화담 선생님이
형님에게 책이 돌아가도록만들어두셨군요?"
"그토록 크게 배려해 주셨다네."
"그렇다면 왜 책의 제목을 굳이
<신서비해>라고바꾸셨을까요?"
"신서비해>라는 책은 따로 있네."
""예?"
내가 불에 태운 것은 <홍연진결>이고,
<신서비해>는 화담 선생님이 주인에게 돌려주었네."
"주인이라니요? 남사고란 그 아이 말씀이십니까?"
"그 책을 쓴 분 말일세."
"그 책을 쓰신 분요?
지리산에서 살았다는 참숯구이말씀이십니까?
도유라는 선사께 그 <신서>를전했다는?"
"바로 맞았네. 선생님께서는 그 참숯구이에게
신서>를 갖다 주었다네."
"그분을 만나셨습니까?"
"만났네."
"어떤 분이셨습니까?"
"내가 울진을 떠나서부터
무엇을 했는지말해주겠네.
박지화 형님께서 말씀을 안 하시던가?"
"아직 못 들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뒤의 일을 말해주겠네."
지함은 무정을 만나서 운곡사에 갔던 이야기와
개마산에서 만난 박수 두무지 이야기를
정휴와남궁두, 전우치 세 사람에게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