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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눈빛으로 후배들을 꼼꼼하게 지도하는 현정화 코치.
요즘도 무거워진 몸으로 새벽에 어학원에 들러 1시간씩 공부하는 ‘독한 여자’
“강한 선수로 만들려면 먼저 아프게 만들어야 해요. 제가 운동하던 시절만 해도 배고파서 했던 경우가 많아 어려운 만큼 이겨내려는 의지도 강했어요.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환경은 좋아졌는데 상대적으로 의지가 약해요. 극복하려는 힘과 동기가 부족하면 시합에서 이길 수 없어요. 그래서 게임에서 지면 가슴이 찢어지게, 뼈가 시리도록 패배에 대한 아픔을 만들어주지요. 그렇게 아파야 가슴에 사무쳐서 의지가 꺾일 때마다 다시 일어날 힘이 돼주거든요. 저요? 아주 ‘독한 코치’예요(웃음).”
그랬다. 현씨는 지금은 독한 코치로 통하지만 과거에도 누구 못지않게 독한 선수였다. 연습을 할 때면 탁구공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떨어진 공을 주우러 갈 때도 공에만 집중했다. 몸을 풀기 위한 비교적 느긋한 연습 시간조차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악착을 떨었을 정도였다. 또한 승부욕도 남달리 강해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국내 경기에서 한번 졌던 선수와는 다음 번 시합에서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현씨의 ‘독한’ 면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시합 내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까지 설칠 정도로 예민했다. 그런 상태에서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금메달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렇기에 탁구 강국 중국의 덩야핑도 이루지 못했던 탁구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바로 9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위장병으로 인해 배를 움켜쥐고 나갔던 시합에서 개인전(단식)을 비롯해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까지 휩쓸어 전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기록을 달성해낸 것이다.
“탁구가 재밌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탁구실 앞을 지나가다가 선생님의 권유로 하게 됐는데 하면 할수록 점점 재미가 생겼어요. 특히 볼이 들어갈 때 묘한 매력이랄까, 재미를 느끼죠. 시합 중 받아내기 어려운 볼을 받아쳤을 때, 상대 선수가 상상도 못한 볼을 찔러 공격에 성공했을 때, 심리싸움에서 상대의 심리를 간파했을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 못하죠. 바로 그런 맛에 계속 탁구를 하는 거죠.”
이처럼 탁구를 사랑했지만 어린 나이부터 시달린 거듭된 훈련의 고통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승부욕이 강한 만큼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심했기 때문에 24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했던 그. 하지만 ‘탁구 인생’을 ‘은퇴’할 생각은 없었다. 현씨에게 탁구와의 인연을 끊으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현씨가 어릴 적에 돌아가신 아버지 현지호씨도 탁구선수였고, 남편 김석만씨(33)도 98년 전 주니어 국가대표 탁구선수 출신으로 현 포스데이타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언제나 일관된 표정과 말투로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살아왔던 그가 아주 잠깐 외도를 했다면 아마 93년 한국화장품 광고 모델로 나섰을 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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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남북단일팀을 이뤄 세계탁구대회에 출전, 우승했을 때의 모습(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현정화).
“그것도 외도라고 할 수 없어요. 제가 한국화장품 소속 선수였으니까 탁구를 하듯이 일한 거죠. 하지만 제게 새로운 경험이긴 했어요. 그렇게 화장을 많이 한 것도 처음이었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은 것도 처음이었으니까요. 화장한 제 모습이 싫지는 않더라고요. 표정이 어색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지금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사실은 꼼꼼하고 섬세한 여성적인 면이 많거든요.”
내로라하는 여자 탤런트들 사이에서도 ‘이제 정말 인기스타가 됐구나’ 하며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화장품 모델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걸 감안하면 스스로도 영광스러운 경험을 한 것 같다는 현씨. 그러나 그는 화장품 모델 경험을 너무나 무심하게 말했다. 더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훈련중인 선수에게 “볼이 약하잖아, 계속 밀고 들어와야지” 하고 소리치며 불호령을 내린다. 정말이지 그의 인생에서 ‘탁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비비고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인다.
탁구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의 정열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는 요즘도 무거워진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영어학원에 들러 1시간씩 공부를 한다. 그러면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체육학(운동생리학) 박사과정을 마친 정말 ‘독한 여자’다. 지금은 임신 때문에 논문만 남겨놓은 상태.
“현역 시절에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도 은퇴를 하면 대개 묻혀버리잖아요. 사회에 나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선수시절의 화려함이 끝까지 지속되지 않죠. 그래서 여자가 예뻐지려고 몸치장을 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가꾼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영양학, 생리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빨리 조치를 취할 수도 있고, 뭘 먹어야 힘이 나서 잘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됐고, 어떤 선수가 꾀병을 부리는지도 알게 됐죠. 선수들 보는 눈만큼은 ‘도사’가 다된 거죠(웃음).”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시선만큼은 훈련중인 선수들에게서 떼지 않는 그에게서 ‘아줌마’의 모습을 엿보기는 힘들었다. 그만큼 말을 아끼고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하며 한눈 팔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현씨라 하더라도 어엿한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기에 ‘여자’로서의 생활은 어떨지 사뭇 궁금해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