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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ds5 gzj
4박 5일간의 지맥종주(보현, 팔공) (2006년 12월 11일 ~ 15일 까지)
종주 첫날 (2006년 12월 11일, 맑음)
구 간 : 장걸재 - 28번 반정고개
아침 6시20분 釜山 첫차엔 손님이 많았다. 빈 좌석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이 움직인다는 것은 경제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뜻이 되겠다. 살아있는 생동감을 보는 것 같고 꿈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이번 모임엔 보현지맥 종주를 모두 마치고 팔공지맥을 시작할 계획이다. 특히 보현지맥의 끝지점이 두 갈레이기에 이곳을 모두 종주하기로 했다. 부산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태영 씨와 최남준 씨는 내가 도착하자말자 짐을 그의 차에 옮겨 싣고 대동을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멋지게 달리다가 봉양에서 28번 국도로 의성군 다인면으로 갔다. 농협 앞에서 만난 우리는 반가움에 손을 잡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박성태씨로부터 간단한 종주구간과 시간 배정을 들은 후 식사를 끝내자 바로 다인과 지보와의 7km 지점인 28번 국도상의 고개에 차 1대를 대기시키고 다시 빽하여 장걸재로 갔다.
12시 55분 장걸재에서 비봉산(579.3m)을 향해 올랐다. 과수원을 지나 철조망을 통과하는데 바지가 걸려 약간 찢어진다. 겨울 등산복이라며 새 옷인데 기분이 좀 그렇다. 마이산 바위처럼 자갈(검은 몽돌)섞인 콘크리트바위가 많았는데 강가나 바닷가에서나 있음직한 몽돌이 바닥에 많이 깔려 있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솔 갈비길이 너무 좋아 절로 노래가 나오는 웰빙 산행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30여분 오르니 의성교육청소유임야 안내판이 있고 두꺼운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노란 갈비길은 한참을 계속한다. 중간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다리쉼을 하며 다인면 주변의 농경지가 아주 넓음을 알 수 있었다. 부근에서 제일 높기도 하지만 전부가 들녘에다 야산이기 때문에 지금 오르고 있는 비봉산은 이 지역의 진산이기도 하고 전망 또한 제일 좋은 곳이기도 하다. 449봉을 지나 넓은 바위가 있는 곳을 우회하여 내려가니 안부에 적조암 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비봉산 등반이 시작되는 셈이다. 사람이 상당히 다니는 흔적이 있고 2시 44분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넓은 암반에 산불감시 초소가 두개나 있었고 헬기장 옆 가장자리엔 일등 삼각점(안개 11)도 있었다. 74세 된 초소 근무자는 체구도 크고 건장했으며 17년째 이곳만 근무한단다. 경북 의성군 다인면 평림리 소재이며 대구 과학 대학장과 의성군수가 세운 국가 측량 기준점 보호간판도 있었으며 사방팔방 시야가 그야말로 일망무제였다. 감시원의 소개로 주변의 산들을 전부 보고 들은 후 우리는 약간의 서북쪽 등고선을 따라 내려가는데 길이라곤 아주 희미한 산짐승길만 있었다. 그러나 중간중간 무덤들이 간혹 있어 그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오늘은 4시간 정도의 워밍 산행으로 간단히 마치고 차량회수를 위해 효천지 옆으로 가는데 조그마한 배에서는 그물을 놓고 있었다. 이번엔 다인면 소재 목화모텔에서 4박을 할 계획이다. 목욕탕이 있어 더욱 좋았고 35000원의 모텔비도 저렴해서 좋았다.
종주 이틀째(2006년 12월 12일, 맑음)
구간 : 중리재 ~ 골두봉 ~ 징걸재
새벽 3시 기상하던 것을 1시간 늘렸다. 7시가 되어야만 산행이 가능하기에 4시 기상, 식사하고 이동하기로 했으나 김우항 씨가 2시가 되어 일어나 뒤척인다. 어제 저녁 술을 좀 과하다 싶게 마시더니 결국 여러 사람을 괴롭힌다. 징걸재에 미리 차를 대기시키고 지난번 구간 마쳤던 당산나무 고개로 갔다. 길이 얼어 타이어가 마음대로 움직인다. 골두봉을 향해 오른다. 길이 희미하고 아카시아나무가 많은 지역이다. 이곳 역시 몽돌이 많은 붉은 마사길지역이다. 지금 이곳은 수렵허가지역이란다. 빨간 모자를 쓰고 간혹 소리를 질러가며 이동했다. 총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골두봉 정상은 칡넝쿨만 덮혀 있는 아주 특징 없는 곳이다. 녹음기엔 산행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칡넝쿨과 아카시아가 제법 성가시다. 하지만 이미 지난 사람이 많지 않은가. 부산의 조은산, 맨발, 대구80, 남충희 씨 등등 정말 그 분들 고생께나 했겠다. 7시 56분 사방 조망이 좋고 붉은 흙돌 위에는 바위손(부채손)이 참으로 많았다. 주변의 농촌 마을엔 거울같이 맑아 보이지만 옛날처럼 굴뚝에 연기 피어오르는 낭만의 시골풍경을 볼 수 없어 유감스럽다. 지층으로 이루어진 올망졸망한 산은 격포항 옆에 있는 채석강 모습과 흡사했다. 얼마나 머리 쓰이는 산이길래 골두봉이라 이름 지었을까. 자연성으로 이루어진 253.5봉에 오르니 식별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었다. 바위손이 많고 붉은 마사가 아름답게 깔려 있어 부잣집의 정원 같은 느낌이다. 이웃마을의 개 짖는 소리와 총소리가 긴장을 더하게 한다. 안사면과 안계 면계인 912번 지방도로를 통과한다. 10시 35분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고 안계 천지 산악회에서 세운 안내판이 있는 안부를 지난다. 안계사람들이 자주 오르는 지역이라 길이 반질 반질하다. 정상 1.5km, 돌고개 2km의 이정표가 있고 10시 56분 (2003 복구 안계 300)삼각점을 확인한 후 곤지산(327.8m)를 올랐다. 삼각점이 있는 곳은 사실상 정상이 아니고 다음봉 350년된 소나무가 있는 이곳이 정상인 곳 같다. 안계면 양곡리 산 5번지 건너봉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지나온 老松峯은 말안장 같은 안부 위 뽀죡한 봉우리이다. 문암산은 지맥이 아니라도 갔다 왔다. 산이란 이름이 아까울 지경이고 작은 소나무만 가득차 있는 봉우리가 어디인지 분간키 어려운 곳이라 내려와서 보면 확실한 봉우리가 표시나는게 이름이 있음직하기도 하다. 육안으로 보이는 지형과 지도상 마루금을 찾아 갈려니 참으로 어렵고 힘이 든다. 어렵게 찾아 내려오니 소류지가 두개나 연이어 있고 그 아래 폐축사가 있었으며 사과과수원이 건너다 보이며 길은 좁은 임도 수준이며 아우토반이다. 세멘 포장길을 계속 따르다 또 과수원을 지나 저수지 30여m전방에서 왼쪽 농로로 들어간다. 폐차가 산 가운데 있는 것이 공중으로 공수되어 온 것인지 논으로 경지 정리 하기 전에 미리부터 자리 잡았던 것인지 여러 가지로 궁금하다. 높은 곳의 논에 어떻게 물을 공급하는지도 의문스럽고 169.8m봉에 왔으나 글자 없는 삼각점 뿐이었다. 3시 11분 안동김씨 무덤에서 쉬었다. 수백만원어치 석물을 장식한 묘지보다 깨끗한 잔디로 잘 정리된 묘소가 더 정갈스럽고 보기 좋았으며 오히려 돋보였다. 4시경 징걸재에 도착했다. 효천지 옆엔 이동도서관 차가 있었는데 누가 와서 책을 보는지 아니면 빌려 가는지 궁금한 것도 여러 가지다. 숙소로 돌아 온 우리는 여유 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각 분야별 책임자에게 청문회를 한다는 최후통첩으로 긴장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내용으론
국 태운 죄(정병훈)
헛 길 걸려 고생시킨 죄(박성태)
새벽 취침 방해 죄(김우항)
일찍 잠자며 내 몰라라 하는 죄(김태영)
부동산 많이 사고도 세금포탈하려는 죄(최남준)
이러하나 전부가 다 해당되기에 이 중 정도가 심한 자에게 기회 봐서 다시 실시키로 하고 이번은 유예키로 했다.
종주 삼일째(2006년 12월 13일, 맑음)
구간 : 대곡사 ~ 비봉산 ~ 우물리
사실상 오늘로써 보현지맥 종주를 마치는 날이다. 오늘 종주 거리는 만만찮다. 우물리 승강장 옆에 차 한대를 대기시키고 우리는 징걸재를 넘어 大谷寺(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지공 선사와 나웅선사가 창건한 고려시대의 대찰)를 거쳐 적조암 왼쪽의 임도로 8부 능선까지 올라가 산행을 시작했다. 7시 11분 비봉산(579.3m) 정상에 도착했다. 두 번째 오르는 비봉산이다. 운무가 짙게 깔려 있는 무거운 분위기이지만 주변의 불빛은 은하수처럼 반짝거린다. 오늘은 정 남쪽으로 내려온다. 급경사에 가시 잡목이 길을 덮어 있지만 조금 찾아 내려오니 길이 환하게 열린다. 입구엔 남충희 씨의 파란리본이 안내한다. 또 조금 내려오니 종주를 끝낸 여러 용사들의 발자취가 나풀거린다. 왼쪽은 벌목지역이고 오른쪽은 소나무가 짙은 갈비길이다. 완전히 웰빙 산행이다. 이런 길을 걸어 보지 못하고 일찍 죽은 사람은 아마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라며 다들 좋아한다.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지역을 통과하니 다시 소나무 지역이다. 8시 33분 임도에 도착, 우측은 들판이고 왼쪽은 숲길이며 길은 아주 좋다. 남원양씨 무덤 앞으로 해서 그냥 좋은 길로 갈려니 뒤에서 잡아 끈다. 숲길로 안 가고 새치기한다며 야유를 하기에 할 수 없이 잡목 숲으로 들어간다. 아주 오래된 풍산 류씨 무덤이 고풍스러워 보인다. 그 아래엔 6기의 가족 무덤이 있는데 양쪽으로 솔숲이 잘 둘러져 있고 따뜻해 보이기도 하며 풍수지리엔 문외한이지만 명당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은 지맥이 아니었다. 지능선으로 잘못 왔기에 다시 빽하여 리번을 회수하고 내려오며 논과 밭 언덕을 지나 종주길의 독도가 어려움을 실감하게 한다. 122봉 잡목 속에 리번 하나 걸고 여유를 부리며 들길을 야유하듯 잡담도 주고 받으며 59번 도로에 9시 58분 통과했다. 독도에 주의하여야할 곳이 아주 많다. 체육시설이 잘 되어 있는 소공원은 이용자가 없는 것 같다. 갈비는 있는대로 쌓여 있고 사람이 왔다간 흔적이라곤 찾아 볼 수 없으니 아까운 예산만 버린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수로를 통과하고 95.3봉 글자 없는 삼각점을 확인하고 계속 운행하는데 낮아도 시야는 좋은 편이다. 과수원 속의 고염(갱감)나무엔 알맞게 익어 쫀득쫀득한 고염이 새카맣게 달려 있어 다섯 사람이 붙어 실컷 따 먹었다. 197.3봉에도 삼각점이 있으나 관리 허술로 깨어지고 글자도 알아 볼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은 정말 최악의 상태이다. 가시나무에다 길도 없고 그렇다고 시야가 좋은 것도 아닌데 보현지맥 마치는 맛을 툭툭히 보여주는 셈이다. 우물리에 도착했다. 수암종택(고택)을 우측에 두고 위천과 낙동강의 합수지점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길이 괜찮은 편이다. 상수리나무와 밤나무가 많았으며 낙동강에서는 모래 준설작업 한다고 큰 기계소리가 퉁퉁퉁 둔탁하게 울린다. 끝부분으로 가는 중 명당인듯한 곳에 진성이씨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멋지고 좋은 곳에 왜 정자가 없었을까. 드디어 우리 종주꾼은 합수지점인 낙동강에 들어섰다. 두 물이 만나는 곳에 손도 씻어 보고 낙동강물이 차가운지 위천물이 차가운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모래는 과연 얼마치나 될까! 3시 30분 산행을 종료하고 우리 모두 악수하며 서로 격려하고 축하했다. 위천과 낙동강의 모래톱 끝에서 뒤돌아 본 우리 종주꾼은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허탈감도 동시에 맛보는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린 다시 차를 타고 비봉산으로 차를 회수하러 갔다. 비봉산은 일명 자미산이라고도 부르는 명산으로 태행산(대항산)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삼국시대 견훤이 이곳에 성을 쌓고 응거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이 산은
동쪽에서 바라보면 봉이 날개를 펼치고 앉아있는 모습이며
남쪽에서 바라보면 봉이 위엄 있게 날개 짓을 하는 듯하다. 또한
서쪽에서 바라보면 장군이 투구를 쓰고 있는 형국이며
북쪽에서 바라보면 예천군 지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이 하얀 비단처럼 가로 놓여 있고 사방으로 넓은 평야와 학가산, 팔공산, 보현산, 갑잔산, 노악산(노음산), 속리산 등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비봉산 아래 대곡사를 둘러보며 숙소로 돌아 왔다.
종주 사일째(2006년 12월 14일, 맑음)
구간 : 팔공지맥의 끝부분 새띠마을 ~ 만경산 ~ 장자봉 ~ 갈현
사실상 보현지맥 한 줄기는 어제 모두 마쳤다. 다음 팔공지맥 종주를 위한 첫 구간을 미리 해 놓은 셈이다. 의성군 구천면과 구미시 도계면의 경계점인 갈현고개에 차 한대를 주차시키고 돌아 나와 우물리 다리 옆의 좁은 농로 길을 어렵게 진입 고개에서부터 팔공지맥 종주를 7시 50분부터 시작했다. 20여분 치고 오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온다. 선두에 선 박성태 씨와 최남준 씨가 어떻게나 빨리 가는지 이상할 정도이다. 어제 저녁 특별히 힘쓰는 약을 우리 몰래 살짝 먹었다고 우리는 그 분들을 놀렸다. 284.9봉까지 오는데 50분정도 걸렸다. 삼각점 같은 것은 있으나 확인은 못하겠다. 산행 50여분 만에 너무 많은 땀을 흘렸다. 물론 최고로 낮은 지역에서 계속 오르기만 했으니 힘이 들 수 밖에........
가스가 많아 낙동강 물줄기를 시원스레 볼 수는 없었으나 어제 내려왔던 보현지맥 끝부분과 의성의 넓은 농토를 바라볼 수 있어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낙동강과 위천을 사이에 두고 지맥이 서로 마주한다는 것도 경이롭고 자연의 조화가 정말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9시 3분 묘가 있는 안부 양쪽 길이 뚜렷하다. 231봉은 9시 27분 왼쪽으로 꺾어 돈다. 소나무 가지 때문에 운행에 지장이 많고 좀 높은 곳이다 싶어 올라가니 연안차씨무덤인데 상당히 높게 돌로 월운을 쌓았다. 그 무덤 위엔 포식자가 먹고 버린 새의 깃털이 가득 널려 있어 양육강식의 법칙도 알게 되었고 또한 먹이 사슬의 형태도 먹잇감이 많아야만 그 먹이로 많은 생명이 유지될 것인데 지리산에 곰을 방사한다는 것이 먼 훗날 성공적으로 증식이 된다면 그들이 과연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 런지 공단직원들은 생각해 보았는지도 의문스럽다. 197.7봉으로 올랐다. 대삼각점이 있으나 글씨는 알아볼 수 없었다. 조림한 리기다소나무가 보기 좋게 자라고 있었다. 이곳 또한 내리막엔 독도 주의 구간이다. 그렇지만 소나무 천지인 이 숲길은 노란 솔갈비길이라 누워서 뒹굴어 봤으면 싶은 생각은 있어도 아직까지 내가 산에 입문한 이후 산에선 누워 본 일이 없어 기록을 깨고 싶지 않아 차마 눕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10시 37분 포장된 농로 끝에 도착했다. 그너머 과수원에 쓸 비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서제리에서 올라온 길인데 고개까지만 세멘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182봉에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우리를 본 근무자는 반가워서 자꾸만 얘기를 걸어온다. 자기도 17년째 근무하며 조장이란다. 15분 정도 담소를 나누는 중 하루 일당이 37000원이라며 공무원 급료는 오르는데 우리는 하나도 안 오른다며 비오고 눈 오는 날은 그것마저도 없단다. 11시 20분 912번 도로를 건너 10여분 오르다 밀양박씨 무덤 앞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만경산(499m)을 바라보고 오르는 왼쪽 건너 계곡엔 큰 목장 건물이 있고 흑염소가 수십마리 떼 지어 있으며 북쪽 안사면과 다인면의 넓은 들판은 지평선처럼 넓어 보인다. 우측엔 세멘 포장 임도가 나를 자꾸 유혹하지만 능선길을 고집하는 종주꾼을 결국 꼬여 내지는 못했다. 낙동강과 위천이 굽이쳐 흐르는 강유역엔 넓고 넓은 평야가 보는 우리 마음을 배부르게 하고 1시 2분 만경산 정상에 도착했다. 전망은 올라올 때 보다 더 안 좋고 헬기장이 있었으며 서쪽으론 갑장산(805.7m)이 뚜렷하게 잘 보인다. 1시 58분 십령을 통과했다. 내려오는 길은 독도주의 구간이다. 2시 45분 장자봉(421.5m)정상에서 삼각점을 찾았으나 글자는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조망이 괜찮은 곳이지만 나무에 가려 시원하게 즐길 수 없어 안타깝다. 오르고 내림이 아주 심한 구간이다. 이번 구간에서 제일 경사가 심하고 바위절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위험한 구간을 세미클라이밍하여 오른다. 411 재설 1978.8 건설부 삼각점이 있는 343.1봉에 4시 24분 통과한다. 지나온 봉이 깍아 지른 절벽이고 상수리낙엽이 굉장히 미끄럽다. 오르면서 고생했다고 보상받은 평탄한 솔 밭길도 조금씩 있었다. 마지막 갈현고개를 보고 내려오는 길은 아주 경사가 심하다. 여러 사람이 미끄러지며 아우성을 지른다. 4시 36분 포장길에 내려섰다. 절개지가 높아 왼쪽 사면으로 내려서니 의성쪽은 포장공사를 끝낸 상태이고 구미시 쪽은 이제 확.포장 공사를 할려고 측량을 해 놓은 상태이다. 이로써 이제 팔공지맥도 한구간 종주를 한 셈이다. 새해 2007년 1월 둘째주부터 남은 구간을 종주하게 될 계획이다.
종주 오일째(2006년 12월 15일, 맑음)
구간 : 반정고개 ~ 와룡산 ~ 삼강교
오늘은 마치는 날이다. 보현지맥을 완전히 졸업한다. 이쪽이다 저쪽이다 시비할 것 없이 전부다 하는데 무슨 시비가 있을 수 있나. 출발 한 지 20여분부터 마루금을 잘 찾아 가는데 GPS가 방향이 틀린단다. 그래서 한참을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와서 지도를 거꾸로 보았단다. 진행방향의 마주선 쌍전주 오른쪽 봉으로 진행하면 틀림없다. 우측으로 보이는 비봉산이 아침 햇살을 안고 여명의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둘려고 디카를 눌렀으나 아무래도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사진은 포기하고 그냥 배낭에 넣어 버렸다. 7시 58분 대흥산(209m) 오름길은 상수리낙엽으로 미끄럽기도 하지만 길이 아주 좋게 바르게 잘 나 있다. 무덤 가는 길인 모양이다. 대흥산 정상은 삼각점도 없고 아무도 다녀간 흔적 없는 순수한 처녀지였다. 낙동강 건너 문수지맥 상의 나부산(334m)이 흐릿하게 보인다. 중간 중간 콘크리트 옹벽을 한 것 같은 곳이 자주 나타나고 몽돌이 박혀있는 것이 이 지역 산의 특징인 것 같다. 9시 4분 흔전 고개 길에 도착 좌우 희미한 길의 흔적이 보이고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규모가 적은 성황당고개 같았다. 리기다소나무가 줄지어 잘 자라고 있는 마루금을 10여분 운행하니 조그마한 송전탑이 있는 아래를 통과한다. 길은 잘나 있다. 무덤들이 많아 산소길인 모양이다. 잘 다듬어진 무덤가에서 빵으로 간식하고 231봉을 넘어 가니 9시 37분이다. 오른쪽 낙동강변의 마을이 따뜻해 보이고 살기 좋아 보이는 소나무 간벌지역을 어렵게 통과하니 916번 지방도로에 내려서는데 아래 위 철사 줄이 발에 걸린다. 이번 구간 중 제일 어려운 독도 지점이다. 상당한 시간을 돌고 돌다가 결국 고개에서 100여m 포장길로 내려오면 오른쪽 소나무가 몇 그루 있는 논 가운데로 진행한다. 논을 건너가면 효자비가 있는 곳을 겨냥해서 가야하고 우측엔 경운기 소로길이 있어 직진하여 진행하면 되는데 여름 벼농사시에는 정상적인 종주가 어렵겠다. 훤히 터진 효동 부락 뒤 넓은 무덤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농로를 따라 계속 윗동막까지 가는데 왼쪽엔 다보탑 같은 납골당이 너무 거창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오른쪽엔 파란 물탱크가 마루금을 지키고 있었으며 건너 차도엔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농로길은 약 1시간 정도 걸은 셈이다. 앞에 가로질러 있는 바위산을 넘어야 오늘의 산행이 그진 끝나는 셈인데 동래정씨 무덤 왼쪽으로 돌아나가니 차도가 또 있다. (1차 편도)
와룡산(299.2m)은 너무 경사가 심해 오르는데 정말 고통스럽다. 길도 없을 뿐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은 이 마루금으로 오르지 않고 풍양면 쪽에서 오르기 때문에 길이라곤 없다. 어렵게 구슬땀을 흘리며 마루금에 도착하니 가로지른 산길이 너무 깨끗하고 뚜렷하다. 비봉산에서 지나 온 보현지맥의 끝줄기가 마지막으로 솟구쳐 빚어낸 높은 산이 와룡산이란 걸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는 이 산을 알운봉이라고도 부른다. 바위봉으로 되어 있는 이 봉은 여자의 은밀한 부분 같은 곳으로 오름짓하여 정상에 서니 310건설부 삼각점이 있었고 국기도 없는 외로운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12시 40분이다. 낙동강 건너 하늘금을 이룬 문수지맥인데 언젠가 저 산줄기도 직접 밟아 보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그 아래 강유역의 전답들이 넉넉해 보이고 사람살이도 평온해 보여 좋고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 것이 아니라 많이 남아 돌아 여유 있는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 묵은 전답이 가득 차 있고 노는 땅이 너무 많아 안타깝지만 경작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내려오는 길은 바위등을 타고 직진해야 하지만 통과할 수 없어 우회하는데 노루가 그 경사진 곳을 뛰어내려가는데 곤두박질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 지역은 동래정씨무덤이 많은 걸 보니 집성촌인지도 모르겠다. 1시 39분 213봉 삼거리에서 가픈 숨을 고르고 남은 구간을 살펴보니 2km정도는 남은 것 같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이곳은근무자가 없었다. 지도에는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었으나 아무리 찾아도 삼각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낙동강이 굽이쳐 돌아가는 그 모습이 보기 좋고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이상하게도 묘한 생각이 든다. 저 강물과 함께 님을 멀리 보내는듯한 그런 마음이고 우리가 힘들게 걸었던 여정을 여기서 끝낸다는 것이 아쉬워서 그런지 어쩐지 허전하고 적막하고 쓸쓸하고 외로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문수지맥이 벽포나루로 향하고 배산임수라더니 양지쪽 마을의 모습이 정을 느끼게 한다. 삼강교를 깃점으로 내려오는데 통훈대부 서원 정씨 무덤이 계속 있었으며 아주 큰 무덤은 옛날 큰 벼슬을 한 모양이다. 왕릉같이 크고 삼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무덤은 내가 보아도 명당임이 틀림없다.
三江이란
문경 쪽의 금천과 예천 쪽의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수되는 것을 말하며 삼강교가 그 위를 지나간다.
3시 산행을 종료하고 오래된 고택이 많은 풍양정씨집성촌인 풍양문화마을을 둘러보고 솟을 대문에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대부분이며 30여 호 되는 동네에 타성을 가진 집은 한집도 없다며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자랑한다. 삼강문화재 204호인 三江講堂(조선 선조 때 호종 공신 약포 정탁의 셋째 아들 청풍자 정윤목이 벼슬을 사양하고 후진 양성을 위한 사설학원이다.)
은 세 강의 합수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배산임수라는 말도 이런 곳을 두고 한 말인지 싶다. 오늘은 다리와 강둑까지만 갔다. 옛날 나루터 주막집과 그 앞 오래된 정자나무도 보고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껴 보며 다인으로 돌아와 2006년도 송년 산행 및 지맥 종주를 마친 셈이다. 함께 한 모든 분께 감사하며 물심양면으로 격려해 준 지인에게도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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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ds5 gz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