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사의 마음으로 변화와 혁신”
쏜살같이 흘러간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또다시 느끼는 것은 허무함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가 묘비명에 새겼듯이 지난 1년이 ‘갈팡지팡’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되돌아보면 특별히 기억되는 사람도, 시간도, 장소도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 보내는 일상이 된 듯하다. 그래도 지난 1년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언제였을까?, 특별한 기억이 얼른 떠오르질 않는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도 그렇고, 가장 좋았던 시간도 희미하다. 그럼 가장 괴롭고 슬펐던 시간은 언제였나?, 아니면 가장 불편하고 짜증스럽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이건 차라리 생각하기조차 싫다고 뇌리를 친다. 그렇게 1년이 또 지나가는 세모(歲暮)다.
하지만 ‘돈오돈수(頓悟頓修)’까지는 아니더라도 ‘돈오점수(頓悟漸修)’처럼 다가오는 것이 세월의 ‘격변’이다. 참으로 무섭기까지 한 ‘변화’의 속도는 격세지감을 넘어 상전벽해를 실감케 한다. 그동안 시나브로 나타난 변화를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칼럼 지면이 너무 좁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개벽’과 같은 변화를 느낀다.
사실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변했다. 1인당 국민소득 100 불도 안되는 시절에 태어나, 1천 불도 안되는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3만 불이 넘는 국가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상전벽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당연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반세기 만에 지금 세계 10위에 버금가는 부자 나라가 됐다는 현실은 단군 이래 최초여서 자랑스럽고 영광이지만 그러한 기쁨 뒤에는 엄연한 새옹지마가 있다.
이른바 격변의 명암이다. 우선 첫째 정치, 경제, 사회의 변천이다. 인간 철학의 근본이 도덕철학이라면 그에 파생된 것이 정치철학이고 그다음으로 경제철학과 사회철학이다. 물론 인문학도 마찬가지지만 도덕과 윤리가 변화면서 정치가 변하고 그에따라 인문. 사회. 경제학도 모두 변해버렸다. 변화된 것까지는 인정하고 수긍할 수가 있지만 그 여파가 전통적 도덕과 윤리마저 실종시키는 세태가 참으로 난망하다.
과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도 큰 변혁이 있었다. 전통적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선(善)’의 객관화가 ‘선(善)’의 주관화로 바뀐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이 무너진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까지 이어져 오던 고정관념이 영국의 급진적 철학인 공리주의와 사회계약론의 등장으로 급변하게되는데 이것이 바로 자유와 평등이다.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그러한 기조 아래 일어난 것이며, 그것이 오늘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태동시키면서 인권 의식과 함께 복지주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만연되는 모습이다. 산업화의 성공으로 민주화가 이뤄진 후 이제는 선진화로 가면서 대한민국의 전통적 유교 사상은 물론 그리스도교 사상마저 뛰어넘어, 동서양 철학이 혼재된 정치. 경제. 사회를 이루는 상황이다. 그 혼돈이 실로 올해의 사자성어 1위인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잉태시킨 것인데,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잊는다’는 고사성어는 16세기 마키아벨리(1469-1527)도 간파한 아포리즘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자기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고 설파했듯이 물질 만능의 격변하는 세태 속에 사람들은 더욱 ‘이(利)’를 추구하는 행태다. 더군다나 주관적인 ‘선(善)’의 개념으로 ‘정의(正義)’마저 주관화에 젖어 ‘너도, 나도 옳다’는 혼돈의 격변이 어지러운 것이다.
그로인한 두 번째 새옹지마가 세대 간 갈등이다. 앞서 말했듯이 1천 불도 안되는 사회 속에서 살던 사람들과 3만 불 시대에 사는 사람들과는 엄청난 의식의 차이가 있다. 이른바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근본적으로 문화가 다르다. 과거 시대 사람들은 지금 시대 사람들을 알지 못하며, 지금 시대 사람들은 과거 시대 사람들을 이해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인식의 차이가 서로를 불인정하면서 결국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는 격변의 어두움을 드리우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시대정신은 변화와 혁신이다. 특히 기성세대에 대한 변화와 혁신이 MZ세대를 이해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시발점이다. 지금 정치권의 변화와 혁신도 그러한 맥락의 일환이다.
그래서 2023년을 현명하게 갈무리하기 위해서는 지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우선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사회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과 동료 간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상호 인정과 유대를 필요로 한다. 바로 그 인정과 호혜의 정신이 감사의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무는 한 해를 겸허히 맞으면 절로 변화와 혁신을 선택하면서 집중하게 된다.
2023년을 어영부영 보내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연말연시가 요구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