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ㅡ 산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광경 - 기억은 과연 믿을만 한가? 가끔씩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분명 봤는데 확실히 갔었는데 똑똑히 들었었는데 등등의 기억과 지각에의 연결이 완벽히 연결되지 않을 때를 틀림없이 겪었을 것이다. 지금이 딱 그 경우다.
달마산은 약 13년전쯤에 산악회를 통해 산을 제일 처음에 갔을 때 짙은 해무와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 개고생을 하며 힘들게 돌다 너덜지대를 거쳐 절로 내려왔는데 그게 미황사였었던 같다. 걸린 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건 기억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고 똑똑한데 어제 갔던 달마산과는 전혀 포개짐이 다른 붕어빵틀이었다.
이런 기억이라면 고흥의 팔영산도 아마 분명 생경하고 낯 설고 기억과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으리라. 거의 구름을 방불케하는 짙은 해무가 온 산 봉우리를 휘감아 구름바다의 특별한 감흥의 그 기억도 맑은 날 파란 하늘과 바다가 열려진 풍경이라면 처음 온 듯한 아리송함을 느끼게할 것이란 얘기다.
기억의 보조장치인 기록과 녹음과 녹화(사진)가 없는 산행은 이렇듯 불분명의 미혹이 생기니 갔던 산도 처음으로 알고 두 번씩 갔던게 비슬산과 와룡산이었다.
잡설은 이 쯤하고 어제의 산행얘기를 하련다.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땅끝 해남의 소요시간을 어쩌진 못했으니 귀가가 당일에 한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날짜 변경의 25분 전 집에 도착한 것은 차에서만 거의 아홉시간 반 정도 걸리고 산행시간도 거의 여섯시간이었으며 뒷풀이를 삼십분 정도 짧게 했지만 빡빡한 시간표를 온전히 채운 결과였다.
갈 때의 시간은 기대와 설렘으로 지루함은 생각나지 않았다. 무안을 지나며 고구마가 떠올랐다. 어려서 더 비싼 무안산 밤고구마는 구황까지는 아니지만 군것질이나 주전부리거리 혹은 간식으로 최고였다. 그런데 거길 지나 오늘의 목적지 해남에서는 그 쪽 말로 물감자(감자는 하지감자라부른다), 요즘 얘기로는 호박고구마가 유명한 곳이었다. 지금은 후자가 더 각광 받는 세상이 되었는데 나이들어 팍팍한 것보다 물기 많은 걸 찾는 식성이 바뀐건지 아님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를 일이다. 여하튼 시장에서 밤고구마보다 호박고구마가 비싼 세상이 되었다.
월출산이 있는 영암을 지나고 주작, 덕룡산이 있는 강진을 거쳐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을 넘어 미황사에 드디어 네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왼쪽으로 진입해 산행을 시작했다.
동백과 조릿대,굵은 소나무등과 표피가 매끄러운 나무등이 많고 참나무 종류는 많지 않다. 희한한 조합이다. 숲의 연령은 중년을 넘어 장년이 되었다. 높지 않은 표고라 쉽게 정상에 도달할거라 여겼는데 가파른 암봉인지라 길도 협소하고 중간중간 로프가 설치된 구간의 정체로 시간이 걸린다. 평일 (4월 4일 화요일)이라 이 정도란다 주말엔 전국에서 오는 산객들때문에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한다. 중간에 바위를 오르며 앞을 보지 않고 발을 내딛다 바위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얼얼했다. 굉장히 아팠지만 표를 내기는 부끄럽다. 뒷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는데 다른 길이 있었다. 으이그~~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희끄무레하게 먼 시야끝에 바다가 있다. 아울러 섬들도 무지 많다. 미세먼지가 공장하나도 없는 이 곳까지 신경을 거슬리게한다. 정상은 한 시간도 채 안걸린다. 달마봉이다. 해발489미터. 이 곳에서도 건너편에 바다가 보이며 다리도 보인다. 완도와 연결되는 다리다. 우리의 산행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해남반도를 따라 남쪽 땅끝으로 향하는 암봉으로 연이어진 바위능선을 타고 도솔암까지 그리고 그 주차장까지 가는 것이다.
정상에서는 바다라는 새로운 배경에 사진을 연달아 찍었다. 돌로 둥근 탑을 만든 정상엔 조그마한 표지석이 있는데 인증샷은 대기번호가 상당히 뒷편이라 전망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터가 묘하다. 나중 알고보니 봉수대 자리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시선의 몫은 바다였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본격 능선 산행을 시작했다.
달마산의 클라이맥스는 이 기~~~인 암봉구간이다. 규암으로 이뤄져 하얀 단단한 바위들에 비와 해풍과 햇빛이 무늬를 새겨 각각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어 계속 바위만 있는 이 길이 지루하지 않고 감탄과 경탄으로 신음처럼 중얼거리게 된다 "야~~~! 와~~~! 멋지다 환상이네 대단하다"
인공적인건 규칙과 정형화된 무늬가 있어 아름답지만 자연은 완전 카오스적 혼돈을 보여줌으로 아름다우며 공포스럽고 기이하지만 빼어나며 틀이 없지만 조화로운 복합감정을 갖게 한다. 이 능선의 6km 정도는 계속 이런 다양다채의 모양과 색상으로 화려하다 기이했다 조화롭다 아름답다 두렵다가 빼어나다. 또한 힘들다를 느끼게한다. 이런 모습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어떤 구조물에서든 결코 절대 볼 수 없다. 그래서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산에 오게되는 까닭이다. 여기를 남쪽 금강산이라고도 하며 혹자는 설악의 용아장성 같다하고 공룡의 등줄기를 닮았다하며 장가계까지 애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 6km의 과정에 그 모든게 담겨 있어 잠깐씩 거기를 갔다 온다는 느낌이다.
너른 들판만이 연상되는 호남이 사실 이런 암봉의 산들이 많은 것은 아이러니다.이 곳 달마산이 두륜산의 가련봉이, 강진의 덕룡산도 이랬고 주작산까지 이어진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월출산도 이와 비슷한 유형인 대표적 바위산이다.
평평한 육산의 이 정도 거리도 만만치 않지만 바위를 오르내리며 수 많은 봉우리를 넘는것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밧줄을 타고 오르내릴때 특히 그렇다. 밧줄은 혼자만 잡아야지 두명이 잡으면 힘 주는 상황이 달라 예기치 못헌 상황이 생길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가다 쉬다 하니 가는 시간이 더디어 해가 슬슬 기운다. 어디까지 가야되느냐 물었더니 거대 안테나가 보이는 곳이 끝이란다. 아직 온 거리 만큼 남았다. 사진은 이제 그만 찍어야지 했지만 자꾸 색다른 바위가 나오니 환장할 노릇이다. 공룡능선에서 마등령 이후의 사진이 없어 연결이 안되는 아쉬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해서 최소한으로만 찍었다.
바위와 바다는 주식이지만 진달래는 계절음식인데 엄청 싱싱하여 물이 올라 기름진 주식에 곁들인 봄 향기 가득한 찬이다. 앞으로 이 맛난 반찬은 열흘까지는 피크를 이를 것이다.
드디어 도솔암까지 왔는데 그 걸 잠깐 볼 틈이 없다. 다섯시 반이다. '추노'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도솔암은 다음에 해남 구경의 기회가 있을때 차로 도솔봉 주차장까지 오면 오래 걸리지 않다. 이 얘긴 쭉 바위산에서 안테나가 있는 도솔봉 주처장이 나오는 순간 콘크리트 포장의 도로가 나온다. 이 길에서 다시 십여킬로마터 가면 땅끝이 나온다. 이렇게 이 산의 절경은 끝이 나는데 포장도로가 나오기 전 늦은 시간에 운동화를 신은 몇 분이 반대쪽에서 오기에 의아했는데 찻길이 난 이걸 보니 허망하기 짝이 없다. 반대편으로 가면 오후내내 해를 등지며 갈 수 있다는 팁을 주겠으나 권유는 안하겠다. '산에서는 산의 방식으로' 관광온게 아니라면 한 걸음이라도 더 걷고 바라보고 느껴야하는게 산의 방식이 아닐까 어쩜 이게 산에 온 이유에 더 부합되지 않을까?
달마산은 불교적 색채가 진한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달마의 이미지완 거리가 꽤 멀다. 동글동글한 후덕한 육산이라면 이름과 매칭이 되겠지만 공감하긴 어렵다. 또 달마대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미황사의 유래와 전설로 치면 불교의 해양전래설에 커다란 실마리의 하나라서 상징적 이름으로 인정하련다.
남도의 훌륭한 산 하나 눈에 가득 담고 온 하루는 행복으로 소화돼 온 몸에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다. 잊지 않고 조금씩 꺼내쓰도록 사진과 글을 남긴다.
이 모든 것을 압축해 네 문장으로 줄인다면
술을 안먹고도 약을 안하고도 꿈이 아니어도 . . . . . . . . . . . . . 천계를 볼 수 있는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