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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널리스트'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폴리널리스트'는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결합한 조어로 정치인으로 변신한 언론인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말이다. 요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KBS, 세계일보, 문화일보등 방송과 신문에서 일했던 그는 노태우정부때도 잠시 청와대에 근무했었다.
역대 정권에서 언론인이 정관계에 진출한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만 MB정부에서 유독 늘어났고 폴리널리스트들이 많은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에 더 지탄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홍보라인에 있는 인물들도 모두 폴리널리스트다. 윤창중과 진실공방을 벌인 이남기 전 홍보수석은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출신이며 이종원 홍보기획비서관은 조선일보 부국장을 지냈다. 또 김행 대변인은 중앙일보와 인터넷매체인 위키트리에서 일했다. 전문성을 살린다는 측면에선 바람직한 면도 있지만 윤씨처럼 평생 펜으로 비판만 해왔지 공직자로서의 자세는 한없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이번 처럼 대통령의 해외순방중에 발생한 대변인의 성추행사건으로 정권이 곤혹을 치른것은 사상초유다. 역대 정권에서 가장 흔했던 것은 권력형 비리사건이었다. '권력형 비리'는 때만되면 나타나는 각설이처럼 대통령의 임기 중반이 지나면 어김없이 등장해 레임덕을 가속화시켜왔다.
MB정부가 이전 정권과 다른점은 주로 언론인출신 실세들이 비리에 연루됐거나 의혹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전 정권에서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은 주로 대통령 인척이거나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가신그룹 또는 386운동권 출신들이었다.
특히 메이저신문 논설위원으로 청와대 참모로 기용됐을때 거의 모든 신문에서 '강직하다'는 인물평을 받았던 K수석의 경우 금품수수 혐의기사가 자신의 사진과 함께 청와대에 가기전까지 일했던 신문의 1면 머릿기사에 올라 아이러니한 인생역정을 실감했을 것이다.
언론인 출신이 권부(權府)의 영입제의를 받는 것은 대체로 일선취재경험이 많기 때문에 현실감각이 뛰어나다. 이때문에 정치현상에 대한 분석력을 갖추고 있으며 여야를 넘나들며 대인관계가 넓다보니 정무적인 감각도 탁월한 편이다.
언론인 입장에서도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는 것은 큰 매력이다. 국정운영에 기여한다는 보람도 있겠지만 정치적인 힘을 과시할 수 있다는 세속적인 욕망도 있을 것이다. 이때문에 언론인출신은 청와대나 정부 요직뿐만 아니라 여야 포함해 현역국회의원도 20여명에 달한다. 이번에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김한길 의원도 전직 언론인이다.
폴리널리스트에 대해 권언유착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교수, 법조인, 운동권, 경제인, 시민단체 출신도 정치를 하는데 언론인이 못할 이유가 없다. 정치발전에 기여한 점도 있다. 그러나 언론인출신 정치인들이 다른 직종에 비해 과연 도덕적으로 떳떳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MB정부에서 비리의혹을 받았던 K수석과 S 차관도 그렇지만 모신문 미디어담당 기자였던 모 전직 국회의원은 신정아 회고록에서 차안에서 성추행한 인물로 부각되기도 했다.
기사와 칼럼을 통해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인사에겐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행실에 대해서는 그럴수도 있다는 식의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언론인이 흔하다. 위선자들이 수두룩 하다는 얘기다.
윤씨도 화끈하고 공격적인 논조의 보수논객으로 활약하면서 박 대통령의 눈에 든 케이스지만 재주는 있을지언정 '인격'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인격'이 문제다. 개념없는 언론인이 현실권력의 맛에 취하니 눈에 보이는것이 없었을 것이다.
몇년전 한국신문협회 주최로 제주도에서 열린 일간지 정치부장 세미나가 끝난뒤 식사자리에서 폴리널리스트들의 행태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다. 갑론을박속에 당시 협회 사무총장의 말은 명쾌했다. "기자가 무슨짓을 하건 지 마음이지만 그럴려면 공직에 갈 생각을 아예 버려야지!" 바꿔말하면 공직에 가려면 성직자 못지않은 책임감과 도덕성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디 언론인만 그럴까. 권력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