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보 11월호]
호서 사림의 고매한 기품이 느껴지는 대덕 동춘당에서 |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서울역에서 대전행 KTX를 타고 달리기를 50분. 차창을 보며 읖조리던 ‘대전 블루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대전역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서울 변두리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 대전은 이제 중부권의 먼 도시가 아니라 수도권의 도시였다. 교통이 공간을 자유케 한 것이다.
대전 지하철 2호선은 X축으로 결정되어야
이처럼 대전에서 교통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대전의 발달도 기실 교통의 발달과 그 궤를 함께 한다. 경부선, 호남선,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그리고 고속철까지 탈 것에 관한 한 대전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대전 전체를 보면 도로와 철도가 도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도로와 철도가 지나는 대덕구인데요.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고속도로와 철로 때문에 지역을 개발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교통이 오히려 지역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셈이지요. 반면 구민들이 염원하는 지하철의 경우 대덕구에는 단 1m도 없어 교통천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대덕구 출신 김창수 의원의 말이다. 직접 차를 타고 보니 그의 말이 정말 맞는 듯 했다. 대전역에서 신탄진으로 가는 국도 좌우에는 철옹성 같은 고속도로와 철로가 길게 늘어져 동서를 단절시키고 있었다. 이래서는 지역이 발전되기가 어렵겠다는 걸 이방인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실제로 대덕구 북쪽에 자리한 신탄진은 KT&G 본사 및 공장이 자리했음에도 시골 읍내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철은 신탄진과 대덕 발전의 새로운 돌파구였다.
김창수 의원이 지방의원 및 시민들과 함께 계족산 황톳길을 걷고 있다. |
“서민들의 교통복지를 위해서라도 지하철 2호선은 신탄진과 진잠을 잇는 북동-남서 노선으로 되어야 합니다. 교통과 같은 인프라 구축은 경제적 타당성보다도 정책적 타당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B/C(비용 대 편익)만 따져 선택하면 발전된 곳은 더 발전하고 낙후된 곳은 영원히 낙후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향후 도시 발전을 위해서도 지하철 노선은 초기에 X축으로 구축하는 게 맞습니다.”
“구경 한 번 가보세요!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역구 사무실을 나와 일행은 오정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가락동 시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대전에서 오정동 시장을 모르면 간첩이다. 150만 대전 시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곳이 바로 오정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기 때문이다.
오정동 시장은 1987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장했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40~50년 전 시설로 느껴졌다. 천장을 보니 온통 시꺼멓게 그을려있었다. 중부권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난방 시설이 없어 겨울철 불을 때다보니 그을린 것이지요. 여름에는 또 얼마나 더운지 모릅니다.
냄새도 심하고, 어디 쉴 데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꾸 경쟁력이 떨어져, 구청장 시절부터 시설 개선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오정동 시장을 현대화하려는 김창수 의원의 생각은 구상에 그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만나 수차례 설득한 결과 오정동 시장이 서울 가락동, 광주 도매시장과 함께 시설현대화 우선 사업장으로 선정된 것. 오정동 시장은 이제 사업이 끝나는 2013년이면 상인과 소비자가 모두 만족하는 웃음의 장터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김 의원은 틈이 나는 대로 시장을 방문, 상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취재진과 찾은 10월 중순, 화제는 역시 채소값 폭등이었다. 배추나 무 등 신선채소는 10월 초에 비해 가격이 많이 진정됐으나 여전히 평소보다 30%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상인들은 “가격이 오르기 전에 정부에서 수급물량을 조절 했어야 했다”며 일본의 예를 들어 “오를 기미가 있으면 공급을 조절해 수급을 미리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김 의원도 “가격이 시장 수급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우리나라도 영세한 도매시장을 보다 육성해 시장이 가격을 잘 조절하게끔 해야 한다”고 답한 뒤 시장 옆 막걸리 가게로 자리를 옮겨 시장사람들과 즉석 민생대담을 나누었다.
맨발로 떠나는 계족산 황톳길 여행
(왼쪽)계족산 황톳길, (오른쪽)30리 오정동 시장에서 |
대덕구에는 이런 맨발의 후예들이 즐비하다.
장동 계족산에 맨발로 가는 30리 황톳길이 있는 까닭이다.
세계 유일의 맨발 마라톤이 펼쳐지는 계족산 황톳길은 지역 주류업체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지난해에는 한국관광공사가 5월의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할 만큼 이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최근에는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 군도 대통령이 와 극찬을 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계족산은 제가 사는 아파트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때문에 틈나는 대로 올라가 건강을 챙기고, 지역 주민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구청장 시절부터 대청호 주변과 함께 계족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아닌게아니라 10월 16일 계족산 장동 산림욕장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김창수 의원을 찾을 수 있었다. 김 의원과 취재진은 사진 촬영 등 취재를 하느라 비록 맨발로 걷지는 못했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이미 마음은 맨발로 초원을 누비는 마사이 전사와 다름없었거늘….
동춘당 공원과 HD 드라마 타운
대덕은 대전과 회덕에서 한 자씩 따와 만든 지명이다. 회덕은 이제 회덕동으로 축소돼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조선 후기에는 양 송(宋) 즉,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로 대표되는 호서 사림의 본거지였다. 대덕구 송촌동 동춘당공원내에 자리한 동춘당(同春堂)은 송준길이 직접 지은 별당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양 송이라 불릴 만큼 평생의 지기였던 우암이 쓴 현판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한옥이면 으레 보여야 할 굴뚝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온돌방 한 쪽에 구멍이 있어 연기가 배출된다. 왜 굴뚝을 만들지 않았을까?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일부러 굴뚝을 세우지 않은 것이지요.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겼던, 낮은 자세로 삶을 살고자 했던 송준길 선생의 풍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현재 동춘당은 흙길과 개천을 조성하고, 약초를 심어 예전의 모습을 재현했다. 동춘당 위에는 김창수 의원이 구청장 시절 유치한 무형문화재 전수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을 유·무형이 함께하는 문화 역사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의원은 “제주 올레길이 자연과 함께하는 올레길이라면 대덕의 경우 역사 문화를 테마로 하는 올레길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대덕이 가진 장점을 살린 명소 조성을 제안했다.
이런 생각은 산업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창수 의원은 뉴 미디어 시대에는 방송, 통신 등이 새로운 성장 산업이라며 지역주민들에게 관련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엑스포 과학공원 내 HD(고화질)드라마 타운 조성이다. 이를 위해 김 의원은 18대 국회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에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선택, 대전을 드라마 영화 제작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의욕에 넘쳐있다.
“대전에는 사실 이렇다할 산업이 없습니다. 대덕특구가 있지만 R&D를 상용화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런 만큼 대덕특구의 첨단과학기술을 접목시켜 대전을 영상산업의 중심지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서민을 위한 3전4기 오뚝이 정치인
(왼쪽)반석동 임대아파트 주민들과의 대화 (오른쪽)오정동 시장 옆 식당에서 막걸리 민생토크 |
대전고,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조선일보 기자, 대덕구청장, 제18대 국회의원. 드러난 이력만 보면 김창수 의원을 실패없이 승승장구한 엘리트로만 보기 쉽다. 그러나 속내를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생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1988년 조선일보의 노조창립을 이끌었다. 그리고 2년 뒤 노조위원장이 돼 우리사주제와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파업을 감행했다. 조선일보 90년 역사 상 전무후무한 파업이었다. 이후 그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자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직접 바로 잡는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계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통산 5전 2승3패, 환희의 순간은 짧았고, 고배의 나날은 길고 썼다. 오죽하면 초중고 동창이자 후원회장인 송대수 씨 조차 “누구라도 그렇게 고배를 마셨으면 일찌감치 정계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제 좌우명이 바로 ‘끊임없이 도전하라’입니다. 도전하고 꿈꾸는 자에게만 미래가 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것입니다.”
주말 오후 김창수 의원은 어디에서 전화를 받곤 서둘러 떠났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반석동 임대아파트였다. 주민들은 건설사 부도로 자칫 임차보증금을 날릴 뻔 했는데 김창수 의원이 관련 법을 만들어 이를 막아줬다며 감사해하고 있었다.
사실 법 통과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소속 상임위 위원도 아닌 의원이 만든 법을, 그것도 소수당 의원의 법을, 더욱이 국토해양부가 반대하는 법을 기어이 통과시킨 것은 김창수 의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창수 의원은 전 재산과도 같은 임대보증금을 날리게 된 임차인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국토해양부 장관을 만나 설득에 설득을 더했다. 또 국토해양위 법안 소위에 참석해 동료 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말 ‘부도 공고건설임대주택 임차인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의결됐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이 법으로 반석동 150가구 외에 전국적으로 3천300 가구의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혜택을 입게 됐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억될 것 같네요.”
대청호 금강수는 오늘도 흐른다
대전시민과 대덕구민의 청정 쉼터 대청호 공원에서 |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를 우리 국회에 대입하면 ‘힘은 의석수에서 나온다’고 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원내 3당, 그것도 교섭단체가 아닌 소수당 소속 의원으로서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극한 대립으로 갈 때 우리 당은 균형자,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대전충청 지역을 근거로 한 정당으로서 지역민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도록 정책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역발전과 함께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일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김창수 의원과 함께 마지막으로 대청호 공원을 찾았다. 일급수 맑은 물과 울창한 산림 아래 넓게 조성된 잔디밭. 화창한 가을 햇살 아래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평화로운 오후 한때를 즐기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공원도 자칫하면 보 건설 등으로 공사판이 될 뻔 하였다고 했다. 김창수 의원과 환경단체가 보 건설을 막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정부 말대로 홍수 피해를 막으려면 보 건설보다는 지천을 먼저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20~30조 원에 달하는 재원을 이렇게 단기간 속도전 식으로 쏟아 붓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국가 재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위해서라도 수정이 이뤄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지역구 사무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창수생각’시리즈 중 열 한 번 째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져나가고 / 마지막 강이 더렵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 그대들은 깨달으리라 /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크리족 인디언 시애틀 추장) 민심의 배를 타고 정치라는 강물을 순리대로 흘러가는 그를 보며, 언젠가 그가 드넓은 역사의 바다에 도달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순항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