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태극종주
불광매표소-쪽두리봉-향로봉-사모바위-청수동암문-715-나한.나월봉-부왕동암문-
증취.용혈.용출봉-가사당암문-국령사-산성매표소-점심식사(2진합류)-수문-시구문-
원효봉-상운사-위문-만경대-용암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구기동하산.
사람은 산을 목말라 한다.
매일 산을 보면서도...
바보야!
산이 패션 배우냐?
폼 잡고 날 보시오 서있게...
산에 목마름은 오름의 목마름이다.
오름의 목마름은 산과 동화의 목마름이다.
허 거창해진다.
불광역으로 간다.
노량진 소재 찜질방에서 자고 6시에 기상하여 딸 아이 집(원룸)을 지나쳐 역으로 간다.
역으로 가는 길은 차다.
바람도 없는 데...
역 앞에 육교가 있다.
육교 아래 새벽부터 문을 연 음식점이 있다.
평생 먹을 일이 없는 햄버그 종류다.
아침은?
오늘 산행은 만만치 않은데..
어제 강현 벗이
“여자 가이드야 깐깐해”
들은 기억이 있다.
다만 점심은 매식이라 맘이 놓인다.
어제도 민폐를 많이 끼쳤는데..
마음이 허락하지 않지만 먹는다.
먹으며 길을 걷는다.
차가운 길을 걸으며
‘내가 꼭두새벽부터 뭐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
‘해지고 달뜨면 산행이 끝나겠지’
하는 당연한 생각만 한다.
그러나 산행이 끝날 때 까지가 문제다.
호구가 걸리는 것이다.
호구지책 糊口之策?
내 신세야..
결론이지만 난 오늘도 왕 빈대였다.
(벗이여! 사정이 여의치 않았으니 부디 혜량을..)
불광역에 도착한다.
몇 번 출구더라?
역무원에게 묻는다.
블랙야크 매장을 ...그도 난감한지
“시내가 一字니까 죽 가면서 살펴 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산님 서너 분이 내 앞을 지나간다.
“불광역 블랙 야크 매장가려면...”
말끝을 흐린 것도 아닌데..
“1번 출구!”
하면서 지나친다.
어제의 경험상 58은 아니다.
블랙야크 매장을 찾았다.
어둠이 함께 있었다.
혼자니 바람이 더 거세게 몰아친다.
‘비겁한 놈들...’
작은 구멍가게가 옆에 있었다.
살生 길이다.
들어가 커피를 시킨다.(500원)
주전자 주둥이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아! 따듯함이여!
커피를 마시며 유과 (500원)를 사서 먹는다.
딱딱하다.
초코바를 허리 색으로 옮겨 놓는다.
有備無患이라?
준비하면 후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단다.
내 친구 치과의사의 얘기다.
은희 대장에게 전화를 건다.
“기다려 간다”
구멍가게에 오래 있기도 뭐해 밖으로 나온다.
누군가 있다.
묻지 않아도 58이다.
“58입니까?”
“아무도 없나요”
“식사 하러 갔어요”
“그래요 식사? 나도 밥 먹고 올께요”
햄버그가 후회된다.
그 싫은 것을 그 것도 우걱우걱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우걱우걱 집어 넣었으니...
설렁탕을 시킨다.
여러 명의 58이 들어온다.
“누가 포항 친구야?”
척 보니 알겠다, 여자니까.
은희 대장이다.
“응. 나”
반말을 하자니 습관이 되지 않았고 존대를 하자니 혼날 것 같고..
어제도 사진 부탁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니 당연히
“저도 (사진을 찍어 주세요) 좀...”
“야! 저도가 뭐야?”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라면과 김밥과 그런 다문다문한 이야기를 끝없이 펼쳐놓는 58들.
출발한다.
여명은 벗이 되어 우리를 따라왔다.
인도를 따라 올라간다.
부지런한 장사꾼은 전을 펴 놓았다.
순간 낯익은 도로와 도로 가장 자리의 건물이다.
언젠가 청소년 지도자 연수를 온 곳이다.
오후 1시가 접수라 아침부터 불-수를 하고 허겁지겁 달려 온 곳이다.
인도로 아웃 도어 노점상이 인상 깊었었다.
오늘 산행을 마치고 나면 삼각산 태극종주의 들머리를 확실하게 알게 되리아.
고마울 뿐이다.
펜스의 열린 문으로 들어 간다.
스트레칭과 어제와 같은 자기 소개를 한다.
개가 짖는다.
녀석은 검정색 옷을 입었다.
얼핏보니 말라무트 같은데...
얼굴은 겁을 많이 먹은 표정이다.
우리58은 저마다 스틱과 검정 계통의 옷을 입었으니...
강아지는 검정과 진남색을 두려워한다.
녀석이 쪼는 것은 불문가지다.
겁 많은 강아지...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 된다.
한참을 오르니 처음 만나는 이정표다.
탕춘대 능선이다.
잠시후엔 족두리봉과 향로봉을 만나게 될 것이다.
처음엔 족두리 봉을 만나게 된다.
날씨는 예상보다는 덜 추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음지를 지날 때 면 귀가 떨어질 것 같았다.
설악산 귀떼기 청봉은 바람에 귀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바람도 한 줌 없는 삼각산에...
힘은 들지 않지만 곰실거리는 작은 땀들의 속삭임으로 가볍게 오른다.
왼편으로 족두리 봉이 보인다.
거대한 화강암 머리 위에 족두리를 쓴 형상이다.
일행은 족두리봉을 우회하여 향로봉으로 향한다.
향로봉으로 향하는 갈림 산록에서 휴식을 한다.
‘처음 온 포항 친구도 있는데 후미 올 동안 족두리봉 갔다 오면 어떨까?“
한다.
오늘의 사진작가며 후미 가이드인 은희 대장의 남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몰랐다.
어디에선가 은희 대장을 보며 수줍게
“난 30,000원 짜리 펜티야”
하길래 알게 되었다.
긴 머리로 예술가 적인 향기가 있었다.
부부가 선두와 후미가이드를 하는 것이다.
와우.
나는 그 벗의 뒤를 따라 족두리봉으로 갔다.
족두리봉은 위험 구간이었다.
나는 족두리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족두리봉을 지나 오른편으로 길게 돌아서니 향로봉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 너머로 아스라이 연봉들이 보인다.
금성철벽 金城鐵壁 이다.
비봉능선이다.
비봉너머 상상할 수 없는 전경이 펼쳐질 것 같다.
오래 전 삼각산을 등산한 경험이 있다.
그땐 지도만 보고 구파발에서 산성 매표소를 지나 많은 대문을 지나 돌다보니
다시 산성매표소로 온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땐 삼각산엔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이렇게 3개의 봉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비봉능선에 서니 머리가 깬다.
정신이 버쩍 든다.
향로봉을 우회하여 지나친다.
긴 내림과 오름이다.
등로는 모두 돌계단이다.
이 곳도 수마가 할퀴고 갔나?
이름 모르는 연봉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저 연봉은 오늘 모두 내 건각으로 지나칠 것이다.
기억이 언제라고 새록새록 나게 정성껏 밟으리라...
전방에 남산이 보인다.
햇살이 비스듬하게 닿아서 하늘과 맞닿는 부분이 하나의 선분이다.
그 선분 아래 남산 타워가 외롭다.
남산타워를 휘돌아 싼 얇은 안개는 어떤가?
그 아래의 아파트와 주택은 래고상자의 조각 같았다.
비봉이 보인다.
뒤로 아스라이 문수봉도 보인다.
강현 벗이 얘기한다.
“저기 꼭대기에 서 있는 것 보이지?”
‘응“
“저게 진흥왕 순수비야”
소시 적 배운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다.
그런데 비를 저렇게 방치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광개토대왕비도 유리 상자(?) 속에 있는데...
이호우 시조 시인은 그의 명 시조 “균열”에서
“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라고 노래했었다.
바위도 세월이 아프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겠지.
그럼 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모형인가? 하하.
그야 내가 알 바 아니고...
아무튼 신라의 세력이 강화되는 시기에 진흥왕은 저 높은 곳에 영역 확인을 한 것이다.
삼각산은 백봉이 最高峰이다.
남쪽을 보니 남산이 보인다.
아마도 비봉이 한강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 비봉에 순수비를 세운가보다.
비봉을 지나면서 산님들의 왕래가 빈번해진다.
“사모바위야!”
사모바이라고 강현 벗이 얘기해준다.
“사모바위?”
“네모잖아”
“그럼 네모 바위지?”
“어떤 사람은 사모관대 같다고 해서...”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용장대 전망대인가에서 보면 思慕 다.
총각에 짝사랑하다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단다.
靑馬 유치환은 사모바위를 모방했단 말인가?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애련에 물들지 않고 喜怒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꺾이는 대로 億年억년 非情비정의 緘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生命생명도 忘却망각하고...]
아무튼 애닯은 영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 정녕 고통인가?
기쁨은 찰나고 고통은 영원하다-최운철.
어느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지낸다.
시산제를 지낼 때는 몰랐는데 바위의 사연을 알고 보니...
애닯은 사랑의 전설이 있는 이 곳에서 시산제를...
사모바위에서 떡과 과일을 먹는다.
떡은 크고 맛 있었다.
과일은 시원했다.
은희 대장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보다.
문수봉을 우회하며 크게 왼편으로 턴한다.
오른쪽으로 노적봉을 앞머리에 세우고 만경대도 보인다.
암벽은 경사가 가파르기도 하다.
음지의 고요한 추위는 귀떼기를 떼려는듯 기승을 부린다.
손도 시리다.
이런 제 길 헐 하는 소리가 나올라고 한다.
그 와중에도 산행은 조망에 흠뻑 빠진다.
“저긴 나중에 갈꺼야”
노적봉 방향을 보고 강현 벗이 말한다.
“그래?”
“그럼 가야지”
“힘들지 않아?”
이틀 연속 산행을 걱정하여 말한다.
“할 만해”
그런 대화가 어디선가 오고간듯하다.
그러나 그 장소를 모르겠다.
봉우리가 예쁘다.
그 거구를 예쁘다고 하면 어불성설 語不成說이지만 표면의 그 맨들맨들함을
만져보고 싶은 것이다.
예쁘니 만지고 싶겠지?
서있는 형상도 내가 있는 이 쪽을 보고 있는 듯하다.
벗님들도 모두 내 앞에서 모두 한 쪽을 응시하고 있다.
지금 이 곳에 있는 58모두 한 쪽을 응시하는 그 모습 또한 정겹다.
사랑은 한 쪽을 응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너희들 잘 있어. 내가 곧 가마’
이 약속은 당분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쳐 둔다.
그 봉을 보고 너희들 그 거구로는 아무 곳도 갈 수 없으니 그냥 거기에 있기를 명하노라.
공연히 움직여서 설악산 울산바위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지 말고...
마음속의 결심이야 얼마나 쉬운가?
누가 내 결심을 알기라도 하나?
“내가 강아지 바위 보여줄게”
난 “콘 쪼 콘”을 키운다.
“콘 쪼 콘”은 베트남어로 강아지다.
나는 강아지를 기르다 보면 강아지에 남다르다.
남들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왜 키우냐?’
이렇게 묻곤한다.
그러나 그 물음이 호의면 제대로 얘기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한다.
내삶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는 강아지를 분양받은 일이다.
벌써 두 아기가 먼 길을 떠나 무지개 다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손잡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려고..
강현 벗의 말에 강아지처럼 귀가 쫑긋해 진다.
“세상에 이런 일이 에도 나왔었어”
‘정말’
강현 벗이 강아지 바위를 가르쳐 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강아지 형상이 아니다.
어느 산님이 제보해서 방송에 나왔으면 분명 강아지 모양일텐데..
딸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여주니 대번에 강아지라며 귀 모양과 입 코를
확인해 준다.
난 바본가?
지금도 강아지 같지 않다.
강아지 바위를 뒤로하고 진행한다.
언제 부턴가 산님들이 출현이 홍수로 밀려온다.
그들도 우리를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겠지?
의상봉을 향하여 가는 등로다.
의상능선. 의상봉 건너에 원효암.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성불을 꿈꾸었는가?
오르막과 암벽이다.
너덜의 차원을 넘어선 등로다.
로프를 잡고 오르내린다.
오름 내림도 그려러니와 대기와 정체다.
“끊어요!“
”아래서 끊어요“
하는 소리가 허공을 맴돈다.
하산하는 나야 그렇지만 오르는 저분들도 대단하다.
하긴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힘든 것이지만...
오늘이 주일이라 그런 모양이다.
나야 주일을 피하여 평일에 다니니 정체 현상은 없었다.
지리산 세석 대피소도 서너 명이 머문 적도 있다.
전화로는 2진 (?)이 산성매표소에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점심 때가 가까워 지는 군.
뱃속에 걸벵이가 들어있나?
사흘 열 끼만 굶으면 코딱지도 양념된다고 품바는 흥얼거렸다.
난 굶은 적이 없는데..
우선 산성 매표소에 가면 행장을 다시 꾸려야 한다.
옷도 갈아입고 귀마개도 새 것으로 바꾸고...
하산을 하는 산님들의 틈을 뚫고 하산하는 등로는 人山人海 였다.
‘서울 대단하군’
하는 짧은 탄성이 연이어 나왔다.
‘주일이니 그렇구나’
하는 이해의 입장에도 서 보았다.
가뭄으로 등로는 스패츠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로 먼지가 바지가락의
색을 바꾸어 놓았다.
황토 물을 들이면 이렇게 될까?
또한 너덜과 암벽은 어떤가?
‘오르려면 산님들이 힘들겠다’
가 아니라 차라리 이런 등로는 내림보다 오름이 좋을 듯했다.
무릎에 신경이 쓰인다.
무릎 통증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습관적으로 암벽에 무릎을 잘 부딪친다.
그래서 가끔 무릎이 뜻하지 않게 긁히는 경우가 있다.
그 여파로 지리산에선 종주 산행을 포기했어야 했다.
백두대간 종주에서는 상처가 물에 닿으면 따가워 반신욕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종아리와 무릎은 보호대를 하고 다닌다.
부상은 죽지는 않겠지만 狂적으로 좋아하게 된 산행을 못하게 된다.
2년 마다 받는 정기검진 시에도 의사는
“다치면 잘 낫는 나이가 아닙니다”
이러면서 압박을 하시며 나를 훈계 勳階한다.
그렇다.
이제는 다치거나 아프면 잘 낫지 않는 나이다.
왜? 나는 58년 개띠. 하하.
오늘도 나는 다치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손을 사용하여,.
네 발 달린 사람이 되어,
다소 뒤에 오는 벗님에게 정체를 줄까 쉽지만 별 내색이 없다.
고맙다.
어지간히 내려왔나?
황토 흙길이다.
템포가 빨라진다.
산성매표가가 가까울 것이다.
의상봉과 계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추억이 새록새록 솟는다.
그 땐 계곡길이 삼각산 산행의 전부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삼각산의 대문 大門 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수봉, 백운봉 등 삼각산을 상징하는 봉 峰우리 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상봉?
오늘 처음 듣는 봉우리 이름이다.
의상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통한 산릉과 암봉과 조망이 좋은 곳이 존재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게 삼각산의 등로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2진 (?)과의 만남의 장소인 식당으로 간다.
식당 안은 온기 溫氣로 훈훈했다.
그 온기는 난로가 내 쏘는 열기 熱氣도 열기지만 벗님들이 내 쏘는 감열 感熱도 한 몫
했다.
난 식당안의 변두리로 가서 기구를 정비했다.
장갑을 교체하고 얼어서 서걱서걱한 바라클라바를 배낭 속에 넣고 뒤에서 착용할 수 있는
귀마개로 교체했다.
겉 속옷을 갈아입고 점심이 차려있는 원탁으로 갔다.
해장국이다.
국물까지 핥아 먹었다.
소주 한 잔을 권하는 벗의 호의를 거부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그랬다.
늘 사양이란 미안함을 내포하는 행위이다.
다행히 벗은 강요하지 않았다.
58 뒤풀이에서는 술을 강권하지 않았다.
58은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권하지 않는 멋진 모임이다.
식사 후 아쉽게도 효철 벗이 탈출했다.
벗들이 그의 이름을 부를 때 효철의 “철”이 반가웠다.
내 이름은 최 운철.
나에게도 “철”이 들어있다.
의상봉을 오르기 전부터 강이지 바위까지 오순도순 대화를 나눈 벗이었다.
여담으로 내 이름의 “철”은 어머니께서 날 낳으시고 자식이 “철”이 없을 까봐
이름에 “철”을 집어 놓으셨다고 했다.
물론 나의 창작이다.
나이을 먹어도 “철”이 없어 포항제“철” 까지 왔는데도 아직 “철”이 없다고 넉살을
부리기도 한다.
효철 벗은 “철”이 많이 들어 보였다.
철광석으로 치면 부광 富鑛 (鐵)이다.
난 빈철 貧鐵이다.
- 계속.2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