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휴대폰 사용자들을 조롱하는 것은 당신 자유이다. 그러나 그 조롱이 정당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다음 다섯 가지 부류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첫째 부류는 장애자들이다. 이들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 하더라도 의사나 응급 구조대와 언제라도 연락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휴대폰이라는 구원의 도구를 그들에게 제공한 과학 기술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두 번째로는 직업상의 막중한 책무 때문에 어떠한 긴급 사태에도 즉각 대응해야 하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소방서장, 시골 의사. 갓 죽은 사람의 장기를 기다리는 이식 전문의 등). 이들에게 휴대폰은 싫어도 지니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이다.
세 번째 부류는 내연內緣의 커풀이다. 이들에게 휴대폰의 등장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마침내 가족이나 비서나 심술궂은 동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내연의 파트너와 은밀하게 통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전화번호를 그녀와 그 (또는 그와 그, 그녀와 그녀일 수도 있다. 이 밖의 다른 결합이 가능한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두 사람만 알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위에서 말한 세 부류의 사람들은 비난을 받거나 조롱을 당할 이유가 없다. 앞의 두 부류로 말하자면, 설령 그들이 레스토랑이나 영화관이나 장례식장에서 전화를 받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용납한다. 내연 관계에 있는 남녀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대개 아주 조심스럽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다.
그런데 다음 두 부류의 사람들은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 위험한 (남보다 자기 자신들에게 더 위험한) 자들이다. 우선, 방금 헤어진 친족이나 친구와 하찮은 화제를 놓고 계속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조건에서 어디에 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이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는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없고 그 시간에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또 만일 그들이 회자정리의 철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자기들의 공허함을 깃발처럼 흔들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성가시게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내면이 얼마나 삭막한가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점에 감사하면서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우리 자신이 그들과 닮지 않았다 해서 악마적인 기쁨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그건 오만과 무자비함의 소치일 수도 있다). 그들을 우리의 고통 받는 이웃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우리의 한 쪽 귀를 시끄럽게 하거든 다른 쪽 귀도 마저 내밀도록 하자. 마지막 부류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단히 복잡하고 지극히 긴급한 업무 때문에 자기들에게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 온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과시하고 싶어하는 자들이다(사회 계층의 밑바닥에 있는 가짜 휴대폰 구입자들도 여기에 포함한다).
기차 안이나 공항이나 레스토랑에서 우리의 귀를 따갑게 하는 그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그 내용은 대개 미묘한 금전 거래나 납품되지 않은 금속 형재, 재고품 넥타이에 관한 할인 요구 따위와 관련된 것들이다. 전화를 하는 당사자가 생각하기에는 한결같이 록펠러 같은 사업가들이 나눌 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상류층 행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 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메커니즘이다.
졸부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무산 계급의 촌티를 쉽사리 벗어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생선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도 모르며, 자기의 페라리 뒷유리창에 원숭이 인형을 매달아 둘 것이고, 전용 제트기의 계기판에 이탈리아 어를 하면서 <메니지먼트> 같은 영어 단어를 서툰 발음으로 섞어 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게르망트 공작 부인 같은 고상한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초대를 받지 못한다 (그는 다리만큼이나 긴 요트를 가지고 있는 자기 같은 사람이 왜 초대를 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면 속을 끓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작 록펠러 같은 사업가에게는 휴대폰 따위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록펠러 같은 사람은 대규모의 유능한 비서진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기 할아버지가 임종을 맞고 있다는 소식 같은 것도 운전사가 와서 귓속말로 전해 준다. 진짜 힘 있는 사람은 걸려 오는 전화를 일일이 받지 않는다.
늘 회의 중이라서 전화를 직접 받을 수 없는 자, 그는 바로 힘 있는 자이다. 경영진의 말석이라도 차지한 사람에게는 성공의 두 가지 상징인 개인 화장실 열쇠와 <이사님은 지금 회의중이십니다>라고 대답하는 여비서가 있게 마련이다. 이렇듯 휴대폰을 권력의 상징으로 과시하는 자는 오히려 자기가 말단 사원의 한심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만인 앞에서 고백하는 셈이다. 한참 섹스를 하고 있다가도 상사가 부르면 차려 자세를 취해야 하고, 먹고 살기 위해 밤낮으로 채권자들을 쫓아다녀야 하며, 딸아이가 처음 영성체 성사를 받는 날 예금 잔액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은행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처량한 신세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휴대폰을 보란 듯이 남들 앞에서 사용하는 것은 위와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고, 자기가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나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1991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중에서
첫댓글 30여년 전 상황이네요.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히네요.
요즘은 휴대폰이 외부장기가 되어버렸지요. 빼놓고 나가면 허전하고 불안하죠.
선배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말씀처럼 휴대폰이 외부장기가 되어버린 요즘 시대
이 글은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하는 메시지네요.
30년이 지난 지금 움베르토 에코가 다시 휴대폰에 대해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을 썼을까요.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