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활동하는 정선영 시인의 새 시집 '빨랫줄에 걸터앉아 명상 중입니다'가 발간되었습니다.
◉출판사 서평
최근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선영 시인이 새로운 시집 『빨랫줄에 걸터앉아 명상 중입니다』(작가마을)를 펴냈다. 정선영 시인은 최근 3년동안 『슬픔이 고단하다』(2021), 『책상 위의 환상』(2022), 이번 시집 『빨랫줄에 앉아 명상 중입니다』(2023)를 펴내는 등 3권의 시집을 발간하고 있다. 그만큼 시를 쓰는 재미(?)에 빠져있다. 하지만 발간한 세 권의 시집이 다작이라 하여 문학적 층위가 낮은 것도 아니다. 시집을 발간할수록 문학적 사유는 오히려 더 깊어간다. 이는 정선영 시인이 완전한 자시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했다는 반증이다. 자기 세계를 갖지 못했다면 즐거운 시 쓰기가 어렵다. 만든 시와 감성적 사유로 쓰여진 시는 엄연히 다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시집 또한 정선영 시인 만의 부드러운 직선과 풍부한 서정적 어조의 이미지를 잘 아우르고 있다. 크게 보면 지난해 나온 『책상 위의 환상』과 비슷한 시적 세계를 갔고 있긴 하나 대상에 대한 사유적 깊이는 점점 더 날을 세운다. 날을 세운다 하여 날카롭다는 것이 아니다. 섬세한 언어의 결과 언어 이면의 시공간적 세계를 더듬어가는 시적 완성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정선영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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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정선영 시인의 최근 시들을 보면 시 작업의 집중도가 대단히 높음을 감지한다. 근자에 들어 펴낸 『슬픔이 고단하다』, 『책상 위의 환상』을 지나 이번 시집 『빨랫줄에 걸터앉아 명상 중입니다』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창작 편수에 놀라고 무엇보다 시집을 펴낼수록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선영 시인이 마침내 시의 눈을 뜨고 있다는 것으로 그 눈높이가 커질수록 시인의 지적 욕구는 더욱 강하고 넓어진다. 이번 시집에도 바로 그러한 시인의 광활한 ‘독서’와 ‘사유’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배재경(시인, 사이펀 발행인)
시인은 왜 이토록 가열하게 시를 써야만 하는 것일까.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도록 추동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불안, 불면, 상처, 슬픔 등 불화적 심리나 정서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와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다. 이 둘은 다른 층위이면서 시인에겐 내면에 차오르는 것, 가득 차기 전에 비워내야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역에 자리한다. 이 비워내는 작업이 시인에게는 시 쓰기였던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내면에 차오르는 감정과 사유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비워냄으로써 마침내 고요에 이르는 여정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그 여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감정을 절제하는 형식적 의장과 불화에 응전하는 시적 주체의 태도이다.
-박진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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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떠오르기 위해
두 팔을 펼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것은 그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빗물에 휩쓸린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어둠을 더듬다 닿는
순간들이 던지는 물음들에
귀를 기울인다.
◉시인 약력
정선영 시인
정선영 시인은 1962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2001년 《한맥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영주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우울한 날에는 꽃을 산다』, 『홀로그램』, 『디오니소스를 만나다』, 『달의 다이어트』, 『슬픔이 고단하다』, 『책상 위의 환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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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속의 시
당신의 등에
밤새
당신의 등에 꽃이 핀다
살을 찢고 장기臟器와 뼈를 친친 감고 자란 뿌리
발끝에서 정수리까지 뻗는다
죽음의 대지에 뿌리내린
땀에 흠뻑 젖은 검붉은 장미
창밖 모과나무 사이 칠월 달빛 부서지고
당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귀뚜라미
밤새워 운다
당신은 안으로 가시를 돋우고 돌아눕는다
찰랑거리며 범람하는 어둠
당신의 등에서 떨리는 꽃송이들
미세한 바람이 불고 더운 비가 내렸다
당신의 등에서
꽃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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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부끄러워 나서지 못했습니다
쭈뼛쭈뼛 서성였습니다
스쳐 가는 사람들은 모두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아 숨도 쉬지 않고 있었습니다
안개는 비밀의 투망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눈빛에 흔들렸습니다
막 깨어난 모든 것들의 첫 향기를 맡으며
햇빛 찬란한 사람들 뒤에서 흘러갑니다
노을이 너울대는 저물녘
기다림이라는 올가미에 걸린 나는
당신들의 의식 밖 프레임입니다
찬란한 꿈들이 원경으로 흘러갑니다
당신들의 눈에 조명되지 못한
나는
초점에서 벗어난 바탕화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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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었을까
초록 물방울들이 모여 결계結界 친다
지느러미와 부레가 사라진 것이
퇴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속으로 잠기는 꿈을 꾼다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셔도 지느러미는 돋지 않았고
몸에서 마른 비늘이 진눈깨비처럼 흩날렸다
퇴화된 비늘과 지느러미, 부레를 그린다
뻑뻑한 동공에 살균된 액체를 떨어뜨리며 생각했다
바다에 이르러 발가락이 소금물에 닿으면,
두 팔을 활짝 펼치면 돛이 될 수 있을까
심장에 바람을 가득 채우면 둥둥 떠오를 수 있을까
나의 전생이 물고기였을지도
눈먼 생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투명해서 물인지 생명체인지 구별되지 않는
눈동자조차 투명해 분별되지 않는
오직 감각만으로 움직이고 나아가는
물이 내가 되고 내가 물이 되는
사람의 몸 70%가 물이라는데
나는 물에서 태어난 것이 맞을 것이다
저 초록의 결계를 풀기 위해
온 몸을 던져 뛰어들면
막막한 도시를 떠나 인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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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정선영 시집
차례
자서
제1부
당신의 등에
흰 철쭉
뭐 먹고 살았지
왕관을 썼다
물고기 알람
아름다운 무덤
멍 때리다
배경
그릇
나무 시인
커피포트
무엇이었을까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소화되지 못한 말
도려내고 싶다
재2부
불안
자장가
미리 보다
불면의 날들
아침이 오는
지금 준비 중입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생각
수분의 날들
끓는다
투명
섣부르다
수족관처럼
울먹
어떤 사람에겐
지루하다
제3부
종달새
개구리밥
징후
사월의 침묵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열돔
무너지는 것들 1
켜
상추를 털다
검은 담즙
덫
채식주의자
고래인 줄 아나봐
해제된 봄봄봄
터져버릴까
제4부
연착
생각의 껍질
지하철에서
조금 늦게, 조금 빠르게
동백
뿌리의 傳言
달리는 사람들
검은 새
잠기다 부서지다
대청소
세상 모든 것이
겨울 환타지아
‘ㄱ’은 당신을 기억한다
소가 간다
시간에 대한 사유
제5부
그늘에 대한 사유 4
그늘에 대한 사유 5
기미
난해함에 대한
배회徘徊
물수제비
*해설/고요, 그 ‘오래 묵은 중심’에 이르는 치열한 여정-박진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