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5:8-17]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무엇으로 알리이까 - 이 질문은 아직껏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의심이나 불신앙의 반문이 아니라,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한 열의에서 나온 요구이다. 이와 동일한 경우로는 기드온의 간구(삿 6:17-24),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20:8), 마리아의 물음(눅 1:34-38)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필요에 따라 우리에게 적절한 증거로 확신을 심어 주시는데 우리들도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과 그에 따르는 확신을 지닌 진정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막 16:17)...나를 위하여 -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의 영원성을 확약하며 동시에 이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삼 년 된 - 3년 된 희생 제물은 충분히 성숙되고 아름다운 것들, 즉 짐숭 중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Mur-phy).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레 1:2-17)....그 중간을 쪼개고...마주 대하여 놓고 - 이러한 제사 형식은 고대 근동 국가에서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한 후 이를 보증하기 위해 시행하던 보편적인 관습으로 후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도 습관화되었다(렘 34:18,19),
이는 (1) 피와 고통과 죽음 앞에서 자신이 맺은 조약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맹세의식이자 (2) 화해와 통일을 나타내는 한 몸 의식인데 이떼 둘로 쪼개진 희생제물은 곧 언약의 두 당사자를 의미한다. 한편 상징적으로 볼 때 이 의식은 장차 가나안을 상속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과 출애굽시 지불해야 할 꾀와 죽음을 예시하고, 구속사적으로는 장차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늘 가나안을 보장해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훗날 모세의 율법에도 새는 쪼개지 않고 통채로 불에 태우도록 규정되었는데(레 1:14-17) 이것들은 쌍을 이루어 각기 한 마리씩 마주 배열된 것 같다. 한편 여느 재물과는 달리 새,즉 비둘기(9절)는 쪼개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Wordsworth)는 그것이 결코 나뉘일수 없는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나(마 3:16;눅 3:22;요 1:32) 실제로는 그것이 쪼갤 필요가 있을 만큼 몸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Kalisch).
아브람이 쫓앗더라 - 솔개와 같은 맹금류(猛禽類)가 짐승의 사체를 쪼아먹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장차 원수들에게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한다(Keil, Knobel, Lange, Kalisch). 그리고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을 이스라엘이 결코 멸망당하지 않고 원수들을 격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onathan, Rosenmuller, Bush).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아뭏든 아브람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하나님께 더럽혀지지 않은 제물로서 제사를 드리기 원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일삼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요 4:24). 깊이 잠든 중에 - '깊은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아담을 재우신 것(2:21)과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선창밑에서 잠든 것(욘 1:5)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는 솔개를 쫓느라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든 평범한 잠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깊은 잠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특별 계시 수단으로 삼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 직역하면 '극심한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캄캄함으로 인해 두려워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장차 그의 후손이 당하게 될 어둠의 역사(13절)를 어렴풋이나마 예견한데서 온 놀라움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어둠의 공포를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당할 애굽의 속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Cavin, Keil, Rosenmuller,Ka-lisch).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을 계시하시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미리 조성하신 적절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생겨 난 공포일 것이다. 너는 정녕히 알라 - 문자적 뜻은 '너는 아는 것을 알라', '알고 또 알라'.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 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유념하여 듣고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공동 번역은 '똑똑히 알아 두어라'로 번역하였다. 사백년 동안 - 정확한 기간은 430년이지만(출 12:40,41;갈 3:17) '사 대'(16절)란 말과 맥을 맞추기 위해 대략적으로 사용된 예언적 숫자이다...그 후에 네 자손이...나오리라 -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 즉시로 주시지 않고 이방 곧 애굽에서 400년간 지내게 하신 뒤 주신 까닭으로 두 가지가 있다. (1) 당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16절).(2) 이스라엘 자손들이 연단의 기간을 겪는 동안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이는 아브람의 유해가 그의 조상들의 장지(葬地)인 메소포타미아 땅(11:31,32)으로 운구되어 안장될 것이란 뜻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모두 살다가 경건한 신앙계통의 그의 조상들이 이미가 있는 영적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아람에게는 영적 가나안이, 그의 후손에게는 실제적 가나안 땅이 기업으로 주어짐으로써(16절)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7절)은 공평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대 만에 - 당시 100세가 넘었던 족장들의 평균 수명에 따라 한 세대를 10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출 6:16-20에 의거하면 아람의 증손 레위가 일 세더, 레위의 아들 고핫이 이 세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삼 세대 그리고 아므람의 아들 모세가 제 사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강력한 오므리 왕가와 아합 왕가가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듯이(미 6:16)
여기서도 가나안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던 아모리족(10:4)을 가나안 민족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경우이다.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 '관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 은 더 이상 채울 틈이 없이 완전하게 가득찬 것을 뜻한다. 이 처럼 죄악에도 도수(度藪)가 있는데(6:5;롬 2:4,5;벧후 3:8,9) 회개치 않은 죄는 계속 쌓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르고마는 도수에 까지 이르게 된다(대하 36:15,16).
본절에 나오는 아모리족 역시 아브람 때 까지 이미 팔레스틴에서 400여년간을 살면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400년간의 회개 기간을 더 주셨다. 그러나 끝내 회개치 않고 죄악의 도수만 높여갈 뿐이므로 마침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수 10:40-43). 이처럼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는 그 깊이에 있어선 제한이 없지만(엡 3:18,19) 기간에 있어선 제한이 있다(막 1:15;고후 6:2).
해가 져서 어둘 때에 - 여기서 이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혹암의 세계를 상기시켜 주는데, 그러나 그러한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을 모든 속박으로 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더욱 찬연히 빛날 것이다. 연기 나는 풀무...타는 횃불 - '풀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누르' 는 불을 담아 둘 수 있는 주발이나 가마, 화로를 의미하며, 타는 횃불은 그 화로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 또는 거기서 취하여진 횃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꽃은 호렙 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출 3:2-4),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불기둥(출 13:21,22;40:38)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며(출19:18;겔 10:2-4;슥 12:6;계 15:8)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의미한다(사 62:1).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학자에 따라서는 쪼개어진 고기를 아브람의 영적 자손들에게 천상의 가나안 땅을 보장해 주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이 언약 당사자인 아브람과 하나님, 양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모든 언약은 본질적으로 그분의 주권걱인 뜻에 의해 맺어지는 편무(片務) 계약(6:18;9:8-17)일 뿐임을 강조해 준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무궁토록 변하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