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가(何如歌)와 개자추(介子推)
이봉래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1392년 때 일이다. 사냥에서 낙마한 이성계 병문안을 간 정몽주에게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이 병문안 와준 정몽주에 대한 답례로 황주(黃州)의 룸싸롱?에서 거하게 술대접을 하면서 정몽주의 심중을 살피고 아래와 같은 하여가(何如歌) 라는 시조를 지어 떠보았다.
此亦何如彼亦何如(차역하여피역하여)
城隍堂後垣頹落亦何如(성황당후원퇴락역하여)
我輩若此爲不死亦何如(아배약차위불사역하여)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주석에서 즉석으로 정몽주가 답한 것이 아래의 단심가(丹心歌))이다.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
이에 이방원은 정몽주가 절대로 자기편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에 선지교(選地橋-훗날 이곳에서대나무가올라와선죽교(善竹橋)라함)에서 조영규와 고여의 철퇴에 정몽주를 죽인다.
정몽주는 자기의 죽음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결과를 알면서까지 자신의 주장과 심중을 이야기 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아마도, 그가 생각한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심과 신하의 도리를 잘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필자가 존경하는 분의 한분으로는 중국 춘추시대의 진(晉)나라 은사(隱士) 개자추(介子推)가 있다. 그는 진(晉)나라 문공(文公)과 19년 동안 그를 모시며 같이 망명생활을 하였다.
그러나,양쯔강을 건너면서 논공행상(論功行賞)하는 신하들을 본다.
그는 오로지 의(義) 하나를 위하여 자신의 허벅지 살까지 떼어 국을 끓였던 충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식객으로 있던 장해라는 사람이 ‘문공(文公)이 개자추(介子推)를 소홀히 대하였다’고 한밤에 성벽에 벽보를 붙임으로 문공(文公) 자신의 잘못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찾으니, 그는 모친을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가 숨어 지낸다.
이에 문공(文公)이 직접 그의 고향으로 내려가 개자추(介子推)를 찾으니, 그는 더 깊은 면상산(綿上山)으로 노모를 모시고 숨어버린다. 문공(文公)은 어느 신하가 ‘불을 지르면 나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불을 지른다.
그러나 개자추(介子推)는 나무를 부둥켜 안고 노모와 같이 불에 타 죽고 만다.<포목소사(抱木燒死)>
그 후 면상산(綿上山) 은 개산(介山)으로 칭하기도 한다.
문공(文公)은 ‘어리석은 자신이 어진 신하를 죽였다’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며 1년이 지나면서 이날을 기억하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말고 찬 음식을 먹어라’는 뜻으로 한식(寒食)날의 기원이 된다.
과거 어느 정치인은 목에 칼이 들와도 할 말은 한다고 했다던가?
그러나 결과는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듯이, 요즈음 문단의 작태를 보면 역시 한심스런 일들이 많이 있다.
안타깝게도 일신의 영달(榮達)을 위하여 권모술수(權謀術數) 빠른 문사들과, 의리도와 진실도 염치도없이 배신이 판치는 문단의 세태가 부끄러운 현실이 안타깝다.
또한,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하는 무리배들 역시 부끄러운 현실이다.
모문협지부에서는 정치가인 현직구청장(지금은 전임구청장)을 문인으로 만드는 그런 작태까지 서슴지않는 현실에 개나고양이나 다 문인이 된다는 말들이 흘러다니고 있으니 어찌아니 부끄러운가?(물론 역량있는 대다수의 구청장이나 정치인 문사들도 있지만)
과거 우리 선조 문사들은 때로는 죽음로써까지 자신의 충절과 절개를 바쳤건만,지금은 그런 충절을 가진 문사들 보기가 어렵다. 자신의 이해득실에따리 이리저리 휩쓸리고 선배도 스승도 몰라볼 뿐 아니라 때로는 동료도 없다.
또한, 바른 선배 문인으로서의 길을 보이는 문사들도 적어지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이라도 용기 있는 문사들은 과거의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문단사의 잘못된 진실을 바로 밝히고 바른 문단으로 바로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더 발전 된 큰문단으로 말이다.큰 어른을 모실줄 아는 그런 문사들이 되어서.)---삭제요? 차제에 문단도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지 말고,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단으로 우뚝 서는 날까지 바른 길, 바른 문단을 위하여 많은 들은 힘을 보태고 힘을 모아서 새로운 문단이 되어 후배 문사들에게 부끄럽지않는 문단이 되어보길 바래본다.
※ 약력 및 경력
추실詩 동인(1981)으로 작품 활동,
보리수문학 同人(1982∼86),일터詩 同人(82∼86)회장 역임
월간 <한맥문학> 신인상 수상
금천 詩人會 사무국장(전 금천.호암 문인협회, 2001∼현재)
경동 문학회 회원(현),누리문학회 회장(2005년~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현)
에이스 테크 대표 (현)
저서 공저 : 어떤 가을(1982년)
청무우(1985년)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