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기생으로 꼽히는 황진이. 황진이는 여러 남성들과 잠자리를 했을 텐데,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불임이 아니었다면 피임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도 피임법을 갖고 있었을까. 기생처럼 특수한 상황에 있던 여성들은 의도적으로 임신을 피하려 했을 것이며, 임신이 됐더라도 낙태를 시도했을 것이다. 또 성폭행 등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에도 낙태를 시도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피임과 낙태에 대해 문헌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한희숙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노동력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여염집 기혼 여성들은 일부러 피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녀와 같은 특별한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피임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임법에 대한 기록을 담은 문헌은 없으나, 민간요법으로 비단 실이나 특수하게 가공한 창호지를 여성의 자궁에 넣어 피임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대의 피임법인 자궁 내 장치 ‘루프’와 비슷한 개념이다.
조정훈 경희의료원 한방부인과 교수는 “그런 방법을 시도했을 수 있으나 100% 확실한 피임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창호지나 비단이 멸균되지 않았다면 부작용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병원 장준복 교수는 “조선시대 사람들은 정자와 난자, 수정 등 임신의 원리에 대해 정확한 정보는 없었더라도 월경 주기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다. 월경 주기에 맞춰 성관계를 피하거나 질외 사정 등의 피임법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의 한시 ‘애절양(哀絶陽)’에는 한 백성이 군정 문란으로 낳은 지 3일밖에 안된 아들이 군보(軍保)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탐관오리가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가자 칼을 뽑아 자신의 남근을 잘라버리면서 “이 물건 때문에 이런 곤액을 받는구나”라고 탄식했다는 내용이 있다.
임신 중절에 대해서는 피임보다는 좀더 많은 기록이 전한다. 경희의료원 장준보 교수는 “누룩을 이용한 낙태법에 대해 동의보감에 언급돼 있다”고 말했다.
내용은 ‘임신부가 편하지 않을 때는 유산을 시켜야 하는데 약 누룩 반 잔 정도를 큰 잔으로 물 2잔에 넣고 달여 1잔이 되면 찌꺼기를 버리고 세 번에 나누어 먹으면 유산한다’ ‘보리길금(맥아)과 약 누룩(신국) 각각 다섯 홉을 물에 달여 먹으면 유산에 효과가 좋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민간에 전해진 간장을 엄청나게 마시면 낙태한다는 것도 조선시대 때에도 통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과격한 움직임으로 몸에 무리를 주는 방법, 또는 식물줄기나 막대기를 자궁에 삽입해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수은이 함유된 독한 약재를 먹고 낙태를 하려다가 불임이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밖에 근거는 없지만, 독특한 피임·낙태법들이 있었다. 성관계 직후 뒤로 일곱~아홉 걸음을 팔짝 뛰면 임신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남의 집 3곳의 문턱 나무나 도둑놈의 지팡이를 갈아 먹으면 낙태가 된다고 믿기도 했다. 임신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없던 옛날 사람들의 피임법과 낙태방법은 주술적인 성격이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