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이렇게 뽑았다
이방주
좋은 수필은 한 마디로 이렇게 규정하고자 한다.
'수필을 바로 알고 세계에 대한 독창적 인식을 주제에 맞게 구성하여 진정성 있는 언어로 형상화한 수필'
좋은 수필 선정은 미학적 가치 평가도 중요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독자들이 대부분 창작 경험이 있거나 수필가이므로 창작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1. ‘수필’을 바로 알기
우선 수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수필의 개념을 알고, 한국 수필의 뿌리를 알고, 수필이 어떤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독자적인 존재 가치를 알아야 한다. 수필이 시, 소설, 희곡과 다른 소재, 형식, 언어, 형상의 경계를 분명히 알고, 상상의 과정과 구성의 일반적인 성격도 알아야 한다. 한국 수필의 현황과 문제점은 물론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세계 문학으로서 한국 수필의 경계와 범위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2. 대상 바라보기 (인식)
수필은 일상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다.
수필의 제재는 일상이고, 일상에 대한 해석은 작가 자신의 가치관 내지는 삶의 철학이 바탕이 된다. 비평가는 대상을 인식하는 작가의 시선을 본다. 비평가는 제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사유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또 그 사유가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살필 것이다.
① 물리적 사유
수필가는 제재의 본질을 끝까지 궁구해야 한다.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본질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 들리는 것 너머의 세계까지 보고 들어야 한다. 소재가 되는 대상의 물질적 속성을 천착하여 거기에 감추어진 물질성으로부터 고유한 본질적 이미지를 환기해내는 과정이다.
② 역동적 사유
물리적 상상 속에 감추어져 있던 자아의 세계가 이 단계에서 함께 드러난다. 이 단계는 한 마디로 대상으로부터 발견한 물질적 이미지를 거울삼아 자아를 성찰하는 과정이다. 대상을 상관물로 삼아 그 본질을 통하여 자아가 지향하는 미지의 세계, 인간이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세계를 찾아가는 힘을 발견하는 단계이다. 여기에서 주제 구현에 가장 용이한 접근 방법은 통섭을 통한 사유이다. 작가는 통섭을 통하여 발견된 대상의 본성에 자아를 비추어본다. 통섭(統攝, consilience)이란 ‘큰 줄기(통)를 잡다(섭)’라는 뜻으로,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는 개념이다. 통섭은 관습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이나 방법만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본질 세계를 제재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활용하여 탐구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단계는 인간에게 바람직한 세계를 찾아 도약(跳躍)하도록 이끄는 지고(至高)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지닌 존재 생성의 힘을 주는 단계이다. 한편의 수필에서 가장 역동성을 지니는 단계로 예술적 공명을 가져오는 중심이 된다. 작품성의 기로에 서게 되는 사유의 단계이다.
③ 원형적 사유
원형성은 대상에서 비롯된 기본 이미지가 역동적 상상력의 도약을 거쳐 도달하는,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가치의 세계를 뜻한다. 이것이 원형적 상상력의 실체이다. 원형(原型 archetype)이란 시공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여러 작가들에게 반복적으로 환기되는 보편적 의식과 가치를 말한다. 이러한 원형은 상상력의 총합이자 궁극성 자체로서 상상의 세계에 대한 평가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상상의 궁극성(窮極性)을 지니고 있어서 작가와 독자 간의 근본적인 교감[共鳴]을 가능하게 한다. 이 단계에서 수필은 문학적 작품성을 비로소 확보한다.
3. 상상을 받아 적기 (구성과 형상)
수필은 주제를 향한 구성이 치밀해야 한다.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라고 한다. ‘무형식의 문학’이란 말은 형식이 없으므로 구성도 필요 없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무형식의 문학’이라는 말 속에는 오히려 무한한 형식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만큼 작가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수필은 짧은 산문이고 그 짧은 산문에 작가의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야 하므로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다.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인식의 단계에서 사유와 상상이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이루어졌다면 구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주제에 따라 다양한 구성을 선택할 수 있다. 때로 서사 중심으로 구성하거나, 서정성을 강조할 수도 있고, 시간의 추이에 따른 순행적 구성을 하거나 역순행적 구성을 할 수도 있다. 상관성을 고려하여 교차구성을 하기도 한다. 일인칭화자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이인칭이나 삼인칭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다. 대개의 좋은 수필은 서사를 뼈대로 삼아 서정으로 옷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주제에 맞도록 이러한 다양한 형상의 방법을 적용하게 마련이다.
구성에서 유의할 점은 수필의 모든 요소가 주제를 향해서 한 방향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점이고(통일성), 소재와 주제, 묘사와 설명, 체험한 사실과 사실에 대한 해석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균형성). 또 한편의 수필은 하나의 유기체이므로 모든 요소가 전체를 향하여 하나로 기여하며, 서두 본문 결미의 내용 연결이 이루어져야 설리(說理:논리적 설득력)를 유지하게 된다.(연결성)
좋은 수필은 인식의 과정에서 단계적 사유의 결과를 치밀하게 구성한 흔적이 보이게 마련이다. 수필이 고백의 문학이라면 상관물을 거울삼아 자아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진정성 있게 성찰의 결과를 고백해야 한다. 작가의 진정성 있는 고백이 담겨 있을 때 독자는 감동하고 비평가들은 미학적 평가를 하게 마련이다.
수필 문장은 바르게 진술되어야 한다.
흔히 수필은 철학적 인식과 문학적 형상의 경계에 놓인 장르라고 말한다. 나는 어느 비평가의 이 명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일상의 철학적 해석을 문학적 언어로 형상화해야 하므로 수필 문장은 다른 문학 양식에 비해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수필 문장에는 수필가의 지식과 교양이 배어난다. 이것이 품격미이다. 문장을 바르게 쓸 자세를 갖지 않으면 좋은 수필을 쓸 수 없다. 바른 문장은 주제를 압축하여 명료하게 드러낸다. 수필 언어는 쉽고 인상적이어야 한다. 수필은 설명적 말하기보다 묘사로 보여주기가 더 인상적이다. 몇 개의 문장을 같은 소주제로 묶어 놓은 것이 문단이다. 문단이 분명하면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통일성 있고, 완결성이 있고 일관성이 있는 문단으로 구성된 작품은 독자에게 쉽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4. 왜 좋은 수필을 써야 하나
좋은 수필에는 작가의 개성 있는 인식과 형상이 보인다. 인식은 독창적이고 형상은 인상적이다. 좋은 수필을 써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수필을 쓰거나 읽는 일은 수행의 한 과정이다. 그래서 수필을 ‘수필(修筆)’이라 부르고 싶다. 수필은 곧 그 사람이다. 좋은 수필은 좋은 수필가로부터 나온다. 좋은 수필가는 바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수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좋은 문장 쓰기에만 전념하는 것만으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끊임없는 수행(修行)이 좋은 수필가를 만든다. 좋은 수필은 작가 자신의 성장과 변환을 가져올 뿐 아니라 독자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픔을 치유할 수도 있다.
좋은 수필 평가와 선정은 여러 창작 기법의 총체적 적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늘은 그중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원칙만으로 맺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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