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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 중생론과 연속적 중생론의 간단 비교 도표
holyjoy / 조회 685 / 2012.07.24. 11:06
순간적 중생론과 연속적 중생론의 간단비교도표
관련주제 |
순간적 중생론의 입장 |
연속적 중생론의 입장 |
중생의 주체 |
전적으로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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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부르심의 방편 |
말씀/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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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부르심과 좁은 의미의 중생의 상호관계 |
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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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부르심의 방편 |
말씀/전도(성령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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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과의 관계 |
넓은 의미의 중생은 현대 개혁교회에서는 사용되지도 않고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
넓은 의미의 중생은 현대개혁교회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고, 좁은 의미의 중생과의 관계가 잘 이해되어서 사용되어야 한다. |
내적 부르심에서 회심에까지 이르는 기간 |
순간적이다(기간이 없다) |
연속적이다(기간이 있다) |
구원의 확신 |
구원의 확신이 중요하지만 그 확신의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바람같은 성령의 역사에 그 이유를 돌린다. |
구원의 확신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또한 그 확신의 과정을 잘 설명할 수 있다. 바람같은 성령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중생을 위한 하나님의 방편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
전도의 역할 |
외적 부르심때만 필요하고 내적 부르심이 있고 나서는 전혀 필요없다, 전도가 중요하지만, 내적 부르심 이후에는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
외적 부르심때에도 필요하고, 내적 부르심이 있고 나서도 여전히 필요하다 |
믿음과 회개의 위치 |
중생 이후에 믿음과 회개가 온다(중생이전에는 믿음과 회개가 위치할 수 없다. 인본주의적이다) |
좁은 의미의 중생때 깨어나서 각성하고 믿음과 회개에 대한 촉구에 결단하여 참된 믿음과 참된 회개를 가질 때에 (넓은 의미의)중생을 하게 된다. |
내적 부르심에서 회심에까지 이르는 기간에 설교/전도/상당자의 역할에 대한 견해 |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기간중에 있는 인간의 개입은 신인협동적이다. 알미니안적이다. 오순절주의적이다. 변질된 칼빈주의이다. |
너무나도 중요하다. 설교/전도/상담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인정하신 방편을 활용하는 것이다. 정통적 칼빈주의이다. |
그 동안의 토론을 통해서 가지게 된 인상들을 간단히 요약해 본 것입니다. 혹시 순간적 중생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잘못 정리했다고 여기시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을 통해서 교정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96
holyjoy 12.07.24. 11:07
그 동안의 토론을 통해서 가지게 된 인상들을 간단히 요약해 본 것입니다. 혹시 순간적 중생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잘못 정리했다고 여기시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을 통해서 교정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holyjoy 12.07.24. 11:15
현재 진행되는 토론의 핵심은, 이 두개의 중생론 중에 어느 것이 개혁신학과 청교도의 전통을 올바로 잇고 있으며, 현대개혁신학자들이 설명하는 중생론과 일치하는 것인가? 나아가서 어느 중생론이 보다 더 성경적인가 하는 것에 대한 토론입니다. 이 토론에 양무리마을 카페지기가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
한아름 12.07.24. 11:35
앞으로 더 이상 오해가지 않게 잘 도표로 표현하셨는데요, 저는 우선 “순간적 중생론”이라는 용어도 눈에 거슬립니다. 그냥 ‘중생’이라고 하였으면 좋겠는데요. “저는 순간적 중생론을 믿는 것이 아니고 개혁신학자들이 말하는 ‘중생’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심플할 텐데요. 그리고 “순간적 중생론의 입장”보다 ‘연중론 반대입장’이라 표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구원의 서정이 ‘내적 부르심-중생-회심...’ 이렇게 나가는데 여기에다 그 기간이 “순간적이다, 연속적이다?”를 묻는 것은 정말 잘못된 질문 아닙니까?
설문조사한 것에 대해 홀리 님께도 제가 이의를 제기했었지요? “이것은 연중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함정이다.”고...
┗ holyjoy 12.07.24. 11:37
한아름 님은 어찌하여 시계를 뒤로 돌리려고 하는 것 같군요. 중생이라는 용어가 종교개혁 당시에도 혼동스러워서 갈고 다듬고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냥 “중생”이라고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것 참 나이브한 것이지요. 나이스가 아니고 나이브.
제가 두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를 빨간 색으로까지 표시하면서 강조하였습니다. 그 칸 속에 나오는 단어들이 ‘순간적’, ‘연속적’입니다. 그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두 중생론 이름입니다. 왜 이런 용어가 필요한지 모르신다면, 위의 도표를 다시 한 번 보시거나, 그래서, 도표상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근거를 가지고 제시해 주십시오. 쓴 소리라도 근거 있는 쓴 소리는 언제든지 받아들인답니다.
┗ holyjoy 12.07.24. 11:38
그렇지 않는데도 받아들인다면, 거짓과 진리를 뒤섞어 놓는 ‘태도’가 되겠지요? “이런 말이 님이 ‘거짓’이요, 제가 ‘진리’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분간하시겠지요?
┗ 한아름 12.07.24. 11:44
중생이라는 단어를 써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혼선을 자꾸 야기하시기에 ‘사용을 자제하시라.’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해 마세요.
지금 게시물에 올린 개혁신학자들 글에서만 봐도 ‘순간적 중생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셨는지요? 그것은 논리적인 설명을 할 때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것으로 보는데 마치 ‘최근 개혁신학자들이 좁은 의미에서만 중생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처럼 뉘앙스가 느껴져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구원의 서정이 ‘내적 부르심-중생-회심...’ 이렇게 나가는데 여기에다 그 기간이 “순간적이다, 연속적이다?”를 묻는 것은 정말 잘못된 질문 아닙니까?》이렇게 제가 물었는데, 홀리죠이 님의 댓글처럼 말씀하시면 아직도 제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요.
┗ holyjoy 12.07.24. 11:51
어느 개혁신학자가 ‘순간적 중생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한아름 님께서는 “지금 게시물에 올린 개혁신학자들의 글에서만 보아도 ‘순간적 중생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셨는지요?”라고 하셨는데 눈을 닦고 보아도 그런 단어가 안 나오는데 말입니다. 님의 마음의 눈으로는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의 눈에는, 육신의 눈으로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지요?
또, “최근 개혁신학자들이 좁은 의미에서만 중생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처럼 뉘앙스가 느껴져서”라고 하셨는데, 연속적 중생론이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입니까? 순간적 중생론이 그렇게 주장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좀 더 분명하게 해주셔야 나이스해지지 않겠습니까?
┗ holyjoy 12.07.24. 11:53
한아름 님이 구원의 서정이라고 올린 도식, 곧 “구원의 서정이 ‘내적 부르심-중생-회심...’”이라는 그 도식 자체에 나오는 “중생”이라는 용어가 성경 전체에 나오는 ‘중생’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연속적 중생론이 출발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 도식으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인 양 주장하고 있습니까? 제가 한아름 님의 그 나이브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여전히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블 나이브?
┗ 한아름 12.07.24. 11:55
《한아름 님께서는 “지금 게시물에 올린 개혁신학자들의 글에서만 보아도 ‘순간적 중생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셨는지요?”라고 하셨는데 눈을 닦고 보아도 그런 단어가 안 나오는데 말입니다. 님의 마음의 눈으로는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의 눈에는, 육신의 눈으로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지요?》라고 하셨는데 제가 한 말과 전혀 동문서답, 적반하장으로 들리는데 무슨 말씀이지요?
┗ 한아름 12.07.24. 13:28
다른 회원 분들에게 묻고 싶네요. 《구원의 서정이 ‘내적 부르심-중생-회심...’ 이렇게 나가는데 여기에다 그 기간이 “순간적이다, 연속적이다?”를 묻는 것은 정말 잘못된 질문 아닙니까?》라는 제 질문이 근거 없고 터무니없는 지적인지를... 《어떻게 그 도식으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인양 주장하고 있습니까?》라고 홀리죠이 님은 피해 가시는데. 정말 참 어이가 없습니다. 별로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십니다.
┗ holyjoy 12.07.24. 14:15
제가 피해간다구요? 한아름 님의 말을 인용하는 제 말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옮겨놓습니다: 《한아름 님께서는 “지금 게시물에 올린 개혁신학자들의 글에서만 봐도 ‘순간적 중생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셨는지요?”라고 하셨는데 눈을 닦고 보아도 그런 단어가 안 나오는데 말입니다,》눈을 닦고 한 번 봐 보세요. 님이 올려놓은 그 자료들을 말입니다. 자신이 올려놓고도 어떻게 없는 단어를 읽어보라고 요구합니까? 적반하장이란 것이 있다면 바로 한아름 님이 저에게 보여주고 있군요. “별로 대화 나누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십니다.”(이것이 메아리임)
┗ holyjoy 12.07.24. 19:04
피에스 님이 저에게 쪽지를 보내주셔서, 한아름 님 진의에 대해서 저에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한아름 님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음을 진심으로 한아름 님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저는 ‘순간적 중생론’이란 단어를 개혁신학자들 글에서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보았습니다. 이 점 다시 한 번 더 정중히 사과를 드립니다. 그런 뜻이라면 바로 아래 댓글로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댓글은 사과하는 것으로만 사용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제가 실수한 점 사과를 드립니다.(사실, 이전에도 이런 조그만 실수들을 한 것에 대해서 서슴없이 사과를 여러 번 드린 적도 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 holyjoy 12.07.24. 17:45
다시 한 줄 더 해서, 사과를 진심으로 드립니다~ 제 사과를 받아주시면, 한아름 님께서 “지금 게시물에 올린 개혁신학자들 글에서만 봐도 ‘순간적 중생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셨는지요?” 하신 말씀에 대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의 사과내용을 쪽지로도 발송하였습니다).
holyjoy 12.07.24. 11:53
저는 일단 점심... 손님이 왔거든요^^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grace 12.07.24. 11:59
한아름 님^^ 홀리죠이 님의 말은 이 카페에서 순간적 중생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개혁신학자들은 순간적 연속적이라는 용어를 다 사용하시지 않았다는 말 아닌가요?
┗ 한아름 12.07.24. 12:07
그레이스 님, 지금은 더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죄송해요.ㅠ
hyun 12.07.24. 12:07
‘순간적, 연속적 중생론’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보다 더 주장하는 핵심을 더 이상 어떤 말로 잘 표현할 수 있는것인가요?
성경이 말하는 바 그냥 중생이라고 하고(순간적 중생 개념을) 그것을 반하는 것이 연중론이라고 한다면 굳이 토론할 까닭이 없을 것 같은데... 하나는 성경적인 것이 되고 나머지는 성경이 말하는 바른 개념을 뒤틀어서 변형적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니까 오히려 더 불공평한 게 아닐까요?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무엇이 더 성경적이냐를 알기 위한 토론이 갈릭 님과 홀리조이 님의 토론으로 알고 있는데...
┗ holyjoy 12.07.24. 16:55
hyun 님의 말씀이 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드러내시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
마우스 12.07.24. 12:18
단어들도 생소한 것이 많아 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순간적/연속적 중생관’에 대한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아무튼 한 사람의 구원에서 중요한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하심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기록되어진 성경과 전도자들 전도를 통하여서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들이 되어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에 힘써야 함을 다짐하게 됩니다.
날씨도 요즘 무더워 가는데 모두 몸 건강하시고 오늘 하루 주님과 이웃들에게 시원한 냉수 같은 사람이 되어 봐요 ^^
┗ holyjoy 12.07.24. 16:56
사실 산수를 부지런히 해두면 수학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의 토론은 ‘산수’ 정도에 관한 것입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수학’도 즐겁게 엔조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석천 12.07.24. 15:32
글을 올려 주시는 홀리죠이 목사님을 비롯하여 관계하시는 여러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위 도표는 중요 부분에 대하여 정리된 도식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갈릭 목사님께서도 같은 형식의 도표가 도식된다면 배우는 입장에서 비교 정립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 됩니다. 감사합니다.
┗ holyjoy 12.07.24. 16:47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한번 기대해 봅시다. 제 도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궁금하거든요.^^
정야베스 12.07.24. 17:52
한가지 궁금한것은,.연속적중생관 이라는 이러한 개념이 한국교회내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홀리조이님 말고,.다른 어떤분이 이러한 내용을 알고,.인정하는 분이 누구인지도 알고 싶습니다...중생에 대한 이해를 모두가 똑같이 이해한다고는 할수 없지만,.적어도 순간적중생관으로 이해하고 전해진 세월이 무려 50년이라고 합니다.(영혼의 의사의 내용을 빌리면)..그러니까 당연히 우리세대에서는 이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 우리라 봅니다..연속적입장에서 바라본 기존의 중생관이 <순간적중생관>이라는 것이지,.기존의 중생관을 지니는 이들은,.<순간적중생관>이라고 지칭하는것도 받아들이기가 싫을겁니다..
┗ holyjoy 12.07.24. 17:58
그렇습니다. 기존의 중생관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의 중생관을 <순간적 중생관>이라고 하면 기분이 나빠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도표에서 보면, 기존의 중생관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부분은 연속적 중생관과 대동소이한데, 문제는, 이렇게 순간적인 것(기간이 없다)과 연속적인 것(기간이 있다)고 하게 되면 그에 따르게 되는 귀결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나게 되기 때문에 너무나도 중요한 구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를 우리 한국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바로 정야베스님이 언급한 <영혼의 의사>라는 책자를 번역한 이입니다. 그 번역자는, 용어는 처음 소개할 뿐이지, 이 개념은 오
┗ holyjoy 12.07.24. 18:00
래 전부터 한국교회에 있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선교사님들이 공부했던 그 본국의 신학들을 검토하고, 그들이 가르쳤던 내용들을 분석할 때 그렇습니다. 아마도 선교초기상황에서 복음을 단순화시켜서 가르치는 바람에 좀더 체계적으로 이런 면들이 소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입장이 좀 더 효과적으로 소개되고 정착되면, 한국교회가 성숙해지는 귀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혼신을 다해서 이 토론을 감당하고 있답니다.
┗ 정야베스 12.07.24. 18:04
그리하여,.중생관에 대한 ,.역사적 진술및 흐름을 파악하여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져 왔는가를 지적할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제가 이해하기로는 연속적중생관이,.기존의 중생관(순간적중생관)보다는 복음을 복음되게 할수 있다고 믿어집니다..순간적에 대비하는 연속적이라는 용어보다는,.기존의 중생관과 달리하는 ,.그 어떤 용어가 산출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외국의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이 중생론을 두고,.첨예하게 대립한적이 있는지요?..앞으로도 이 중생론 논의는 많은 논란과 쟁론이 될것입니다..이 연속적중생론 문제는,.대립적인 자세보다는,.설득적 자세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정야베스 12.07.24. 18:24
제자신도 이 양무리에 몇년 있었지만,.처음에는 용어자체가 이상해서 관심도 두지 않았지요!!~그러다가 영혼의의사라는 책을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전도설교라는 말도 생소했지만..사역자를 염두에두고서 쓴책같아..더욱 그러 했지요!!~그러다가 작년인가?..순간적/연속적 게시판에서 약간의 이해를 하였고..이번 토론을 통하여 ,.기존의 중생론과 홀리조이님이 주장하는 중생론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이제사 알게 되었습니다..홀리조이님이 생각할것은,.이 연속적 개념은 쉽게 이해되는것이 아니라고 봅니다..그만큼 이 개념은 생소한것입니다..그러니까 홀리조이님이 이해한 만큼,.우리 일반신자 들이 쉽게 이해하리라는 생각은,.
┗ 정야베스 12.07.24. 18:15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다만 믿는것은 이 연속적중생관 내용을 알면 알수록,.믿음에 관하여 더욱 선명하게 알수있다 라는 것입니다..저는 장로교의 약점이 무엇인고 하니,.교리와 신조는 훌륭한데,.이것이 실제적 삶에 있어서 적용하는 부분이 너무 약하다는 겁니다..그리하여 몇십년을 다녀도,.구원의 확신조차 없는,. 구원의 확신을 지녀도 그것을 견줄만한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이지요!!~제가 생각하기로는 이 연속적중생관이 한국교회에 많은 파장을 일으킬겁니다..적어도 장로교만이라도..이 교리는 많은 영향력을 미치리라 봅니다..처음부터 파급력이 있겠습니까??.이미 양무리가 그것을 짊어지고 나아가리라 봅니다..
한아름 12.07.24. 18:49
연속적 중생론이 더 성경적이라고 주장하시는 홀리죠이 님에게 이것 한 가지 여쭤 볼께요. 참고하려 합니다. 최근 개혁신학자 중 중생에 회심을 포함하는 신학자가 어느 신학자가 있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근거 자료가 있으면 더 좋고요.
┗ holyjoy 12.07.24. 18:48
제 사과를 받아 주신다고 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털 것은 털고 넘어 가야지요.^^
┗ 한아름 12.07.24. 18:58
난데없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어떤 사과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 holyjoy 12.07.24. 19:01
제가 보낸 쪽지를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바로 위의 댓글들에 있는 한아름 님의 글에 대한 제 글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털 것은 털어야, 앞으로 대화가 더욱 진실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어서...^^
┗ 한아름 12.07.24. 19:02
제가 윗 댓글은 읽어보지 못하고 댓글을 썼습니다.
┗ holyjoy 12.07.24. 19:02
제 사과를 받아주신다면, 당장이라도 님의 질문에 답변해드리겠습니다~
┗ 한아름 12.07.24. 19:07
그렇습니까? 저는 일하고 있어 밖에 있어서 볼 수가 없는데 위 댓글만 봐도 오해를 하셔서 그런데 사과까지 하시니 송구스럽게 받아들이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의 거친 말도 이 자리에서 사과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holyjoy 12.07.24. 20:52
이제 제 사과를 받아주시니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제가 그 문장을 봤을 때 끝까지 보지 못하고 의문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말았었습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행을 바꿔서 질문하신 것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 한아름 12.07.24. 20:59
제가 밖에서 일하다가 홀리죠이 님에게 정말 궁금점이 있어 댓글도 보지 않고 잠깐 핸드폰으로 질문을 하는 중 사과하신다는 글이 눈에 띄었지요. 그러다가 핸드폰을 통해 문자입력을 하려니 좀 불편하여 추가 질문을 못했는데요. 위에 빨간 표시로 한 글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순간적 중생론 입장의 답이 “순간적이다.(기간이 없다.)”라고 쓰셨습니다. 그 답은 누구의 의견의 결과인지도 말씀해 주세요.
holyjoy 12.07.24. 20:56
먼저, “최근 개혁신학자중 중생에 회심을 포함하는 신학자가 어느 신학자가 있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는, 지금 제 앞에 존 파이퍼의 두란노에서 번역 출간한 책,{거듭남}이란 책이 있어서 펴 보았더니, 디.에이.카슨이란 개혁신학자가 이렇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출판을 더없이 축하한다. 지난 수년 간 칭의 논쟁과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에 관한 논쟁이 계속돼 왔다. 그렇다 보니 회심에 대한 문제를 소홀히 한 경향이 있다. 새언약에서 보면, 회심에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위치와 신분이 포함된다. 하지만 결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회심은 성령이 일으키는 기적적인
┗ holyjoy 12.07.24. 20:59
변화를, 인간의 단순한 결심을 무한히 초월하는 그 무엇을 포함한다. 회심은 거듭남이다. 회심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회심은 복음이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입증한다. 정통적인 신앙고백을 다 합쳐도 회심을 대신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네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당신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추천사 중에, “회심은 거듭남이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카슨 박사는,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입니다. 저는 개혁신학자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일단 한 사람만 소개해 올립니다.
┗ holyjoy 12.07.24. 21:14
존 파이퍼의 책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제가 지금 책장사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아름님께서 언급하셔서 부분적으로 발췌해서 올리신 그 책자들 속에서도 중생과 회심을 동일시 하는 곳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예진입니다. 시간만 주시면 제가 찾아서 올려보겠습니다. ^^
holyjoy 12.07.24. 21:41
로빈슨크로소 님, 죄송합니다만, 욧점만 간단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쏟아내시면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헷갈리게 되고, 욧점이 흩어집니다. 세 개나 올리신 댓글들 한 개 정도로 줄여주시면...저도 이 글 삭제하겠습니다. 열심에 감사를 드리면서... 이 토론은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줄 아시지요? 그래서, 헷갈리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려봅니다. ^^ 그러고 보니, 저도 댓글을 한꺼번에 세 개나 올렸군요 ㅎㅎㅎ
정야베스 12.07.24. 21:52
제가 두 분(홀리조이 님과 로빈슨 님)의 댓글을 보면서 생각케 됩니다...예수를 만났다..하나님을 만났다의 의미가 무얼까요?..저는 그것이 <예수가 구원자로 믿어지는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을 의미한다고 봅니다..그것이 어느때에 이루어 질까요?..저는 이것을 회심이라고 보는 것이지요!!.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회심에 이르지 아니하고는 믿음으로 들어갈수가 없다고 봅니다..저는 중생에 대하여는 그리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오직 성령받은 확신을 무엇으로 할것인가?..이것에 많이 매달렸다고 봅니다..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죄의 용서가 이루어짐이 믿어진후..성령체험을 그리 중요시하게 생각지 않았지요,.
┗ holyjoy 12.07.24. 21:54
그래서 참된 믿음을 가지게 되면 바로 회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의 회심은 물론 '넓은 의미의 중생'이지요. 그래서, 믿음으로 중생하게 된다는 것이 극히 성경적이고, 이 성경적인 견해를 개혁신학자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또 다른 의미로서의 중생, 곧 좁은 의미의 중생은, 믿음 이전에 있습니다. 결코 헷갈려서는 안되는,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아예 탐구하기를 포기해 버리지요. 오호, 애재라, 그리고,........연속적 중생론의 복됨이여!
┗ 정야베스 12.07.24. 22:01
일반 신자들은 구원의 확신도 중요하지만,.성령체험을 강하게 느끼려고 할겁니다..회심이 성령세례라고 하는 부분은 많은 공감이 됩니다..왜냐하면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예수를 구원자로 부를수 없기때문이지요(신약의 어느 성경구절인데,.적지를 못했네요)..저는 교회안에서 회심을 강조해야 한다고 봅니다..그러나 순복음처럼 방언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것인양 생각하는,.다시 말하면 회심에 이르지 아니하면..성령받지 못한것처럼..구원받지 못한것처럼 인식하는 행위는 없어야 할것입니다.홀리조이님의 표현대로..부르심에서 이미 우리는 성령을 받은자입니다..왜냐하면 중생으로 시작하잖아요!~~물과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
┗ 정야베스 12.07.24. 22:12
하나님이니까요??.. 조심스럽게 건의하는 것은..연속적이라는 이 용어가 <기존의 중생관>을 순간적이라고 지칭한 다음 대비시켜 사용함이 그리 좋게 비쳐지지는 않습니다..<새로운 중생론>에 걸맞는 용어가 만들어 졌으면 합니다..우리을 거듭나게 하시는것은 하나님이신데..그것이 일시적 ,순간적으로 된다고 믿어 온터에..갑자기 연속적이라는 용어를 쓰시니 ,누구라도 거부감이 들겁니다..그리고 <기존의 중생론>은 <회심>을 생각지 아니하는데..그것이 어찌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기존의 중생론을 지지하는 분들을 위하여,.저는 <기존의중생론>그리고 <새로운중생론>..이렇게 개인적으로 쓰고싶은 생각도 드네요!!~
┗ holyjoy 12.07.24. 22:29
정야베스 님,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회심을 강조하는 것을 방언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초기중생 시에 이미 성령을 받은 것처럼 여기시는 것도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로 초기중생이 시작되고, 또한 성령의 역사로 회심하게 됩니다만, 그것을 성령세례와 연관시켜 생각하면, 성령세례를 초기중생시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 후의 중생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는, 좀더 성경을 고찰해 보아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회심과 중생에 대한 한아름님의 질문에 대해서 로빈슨크로소 님이 성령세례를 말하고 있는 서철원 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 holyjoy 12.07.24. 22:30
그것도 많이 인용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주의를 드렸던 것입니다.
┗ holyjoy 12.07.24. 22:30
그리고 용어에 대해서는 정야베스님께서......ㅎㅎㅎ 좋은 용어 하나 만들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현성훈 12.07.24. 22:12
표를 보니 이해가 쉽네요.^^
정야베스 12.07.24. 22:28
<내적 부르심에서 회심에까지 이르는 기간 순간적이다(기간이 없다) 연속적이다(기간이 있다).............> 도표의 내용인데요!!~
<기존의 중생관-순간적중생관>은 회심을 인정치 아니하는데..기간이 있다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라고 봅니다..기존의 중생관을 주장하는 분들은,.중생이 순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합니다..중생케 하는 생명의 씨앗이 순간적으로 심기워지니까요!!~ 이것마저 연속적으로 심기워진다라고 하면,.말이 너무 이상하잖아요!!~기존의 중생관을 주장하는 분들은 그들의 주장이 정당합니다..우리가 말하는 <새로운 중생관-연속적 중생관>..하고는 처음부터 출발이 다르잖아요!!~
┗ 한아름 12.07.24. 22:37
제가 그래서 처음에 질문한 것이고 바로 위에 그와 관련해 다시 질 문드리고 있습니다. 말씀 잘하셨어요..
빨간 줄까지 치고 홀리죠이 님께서 제일 중요시하시는 것 같은데 답변이 아직 없으시네요.
┗ holyjoy 12.07.24. 22:35
정야베스 님께서는.....아직도 좀 더 정리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 기존의 중생관이 회심을 인정치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의 중생관도 회심을 인정합니다. 그 회심의 위치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지, 회심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순간적”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정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중생케 하는 씨앗이 심겨지는 것은 ‘순간적’임을 ‘연속적 중생관’에서도 인정합니다. 잇슈가 되는 것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심겨진 것으로 모든 것이 한 번에 중생의 모든 문제가 완결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회심의 문제까지도 말입니다. ‘연속적 중생론’은 바로
┗ holyjoy 12.07.24. 22:37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중생의 씨앗이 심겨지는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적으로 심겨진 중생의 ‘씨앗’이 자라서 ‘싹’이 되어서 그 생명이 ‘발현’되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발현’조차도 ‘순간’적입니다. 그러니, 순간과 순간, 곧 씨앗이 심겨지는 순간과 심겨진 생명의 씨앗이 발현되는 순간 사이에 각자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과정이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전도자, 상담자, 설교자의 역할이 무지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 중요성을 순간적 중생론이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짜신자들, 가짜중생이나 회심자들을 분간하지 못하는 셈이 되지요. ^^
┗ holyjoy 12.07.24. 22:40
저는 오늘 그만^^ 죄송합니다. 바둑을 두어도 요즘은 밤새워 두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모양, ㅎㅎ. 6학년 님들 앞에서 이거 무슨 말쌈을. ^^....죄송합니다. ^^(넙죽 절하고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grace 12.07.24. 22:37
우리나라 교회가 회심을 무시하는 사영리식 복음전파로 칭의를 선포해서 문제인 것이지 정통 중생론은 회심을 강조합니다. 정야베스님 게시판지기방에 제가 올린 글 좀 보세요.
구사 12.07.24. 23:16
핵심이 기간의 유무에 있다면...<연속적>...보다는 <기간적 중생론>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연속적...이란 용어는 별반 좋지 않은 것 같은데...
┗ 정야베스 12.07.24. 23:40
제 생각은 <점진적중생론>이라는 용어도 생각나네요!!~아무래도 연속이라는 의미는.. <어떤 개별된 것들이 수없이 나온다 >..이런 늬앙스를 풍기는 것 같아서요..그리고 기존의 중생론을 지지하는 분들에게도..<순간적>이라는 용어는 그들에게도 달갑지 않을겁니다..누가 그렇게 불러달라는 것도 아닌것 같아서...<청교도>..<예정론> 이런 용어는 제삼자에 의하여 부정적 용어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아마도 누군가 우리를 향하여..어떤 용어로 지칭할 것입니다..그때에 그것이 후대에 남겨지는 것이지요!!~
┗ likeagle 12.07.24. 23:45
저는 기간적이나 점진적보다는 연속적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간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구원의 서정상의 인접한 각 단계는 구분은 되나 분리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봐야 하기 때문에 연속적이라는 표현이 좋은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으면 좋겠지만 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네요..^^
┗ holyjoy 12.07.25. 08:04
기간적, 점진적....저는 연장적이라는 단어를 구상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 구사 12.07.25. 14:05
<연장적>..은 ㅎㅎ..망치, 드라이버 등...그런 연장이 생각나서요.^^
┗ 구사 12.07.25. 14:08
그리고 라이크 님..기간적이란 용어는 다분히 긴밀한 관계성도 당연히 들어갑니다... 중생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관련성이 없이는 불필요한 기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간이 필요함은 당연히 관련적 기간성이 되는 것이지요...
한아름 12.07.25. 10:52
홀리죠이 님, 윗 댓글에 제 추가 질문을 못 보셨나 봅니다. “순간적이다(기간이 없다).”라는 질문에 답변이 없어서요..
┗ holyjoy 12.07.25. 11:27
제가 정야베스 님에게 한 답변 댓글로 충분하지 못한 모양이지요?
┗ 한아름 12.07.25. 11:49
《“위에 빨간 표시로 한 글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순간적 중생론 입장의 답이 “순간적이다.(기간이 없다.)”라고 쓰셨습니다. 그 답은 누구의 의견의 결과인지도 말씀해 주세요.》 이것이 제 질문입니다. 그런데 “정야베스님에게 한 답변댓글로 충분하지 못한 모양이지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위 답변이 제 질문과 매칭되는 답변으로 생각되시는지요? 그리고 긴 설명은 굳이 필요 없습니다.
┗ 로빈슨크로소 12.07.25. 11:51
그럼 한아름 님은 ‘기간이 있다.’는 주장이로군요~!
┗ 한아름 12.07.25. 11:53
로빈슨크로소 님,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제가 처음에 이슈를 제기한 일에 대해 아직 모르시는 것 같네요.
┗ holyjoy 12.07.25. 12:29
누구의 의견의 결과라.....제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연속적 중생론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던데 안 그런 사람도 있나 봅니다. 제가 “기간이 없다.”는 말을 괄호 속에 넣은 것은, 인간의 믿음이나 회개 등의 작용, 곧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여서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들(스스로로 포함)의 노력과 힘씀을 나타낼 수 있는 기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이런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기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 기간이야말로 얼마인지와 관계없이 말 그대로 신비주의 그대로이겠지요. 혹시 한아름 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입니까? ^^
┗ 한아름 12.07.25. 12:45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질문의 모호성 있는 설문조사이고 비밀리에 조사한 결과를 답으로 한 것도, 그것을 반대 입장 사람들의 결과라고 확신하시며 자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활용하신 홀리죠이 님이 정말 unfair하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내용 갖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외형적으로 일처리 하는 것이 공정치 못하다는 이야기죠. 이것은 무척 critical한 문제인데, 정말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 아닌지요?
답글을 주시면 제가 곧 일을 나가야 하기에 나중에 답글 올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holyjoy 12.07.25. 13:07
설문조사는 제가 주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회원 중 한 분이 먼저 아이디어와 함께 제 의견을 묻길래 저도 흥미롭다, 지울 것 있겠느냐 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페어하시다면, 한아름 님께서 설문조사를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공정한 질문도 만들어 보시고..... 아주 기대가 됩니다. ^^
┗ likeagle 12.07.25. 13:15
설문조사는 순전히 저 혼자 올린 것입니다. 그 어느 분도 저에게 제안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올리긴 했으나 후에 문제가 있다면 운영자분들이 삭제해도 괜찮다고 댓글을 달았구요. 혹시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 한아름 12.07.25. 13:36
아직도 언페어하지 않게 생각하시는군요.ㅠ 저보고 다시 시도해 보라구요? 기대가 된다구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님은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곤 합니다. 아주 나쁜 습관인데 안 고쳐지네요.. 좀 새겨들으세요.. 회원들 감정 상하게 하는 것을 본인은 모르나 봐요.ㅠ
이글 님이 주최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활용하는 홀리죠이 님이 문제 아니겠어요? 먼저도 그 설문조사를 한 후 후평으로 회원들이 지적들을 하였구만.. 그걸 강행해서 빨간글씨까지 동원해 활용하세요?
┗ 한아름 12.07.25. 13:25
우리가 지금 구원의 서정을 말할 때 ‘내적 부르심-중생-회심...’ 순서로 갑니다. 연속적 중생론을 반대하는 회원 입장에서는 ‘회심을 중생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질문에 굳이 이 답변을 한다면 “연속적이다.”라고 답을 할 수밖에 없지요.
제 생각인데 ‘아마 이것을 “순간적이다.”라고 말할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중생이 연속적이냐 순간적이냐?”라고 물으면 형평성이 맞는데 이 질문은 연속적 중생론을 지지하는 회원 입장에선 당연히 “연속적이다.”라고 나오지요.
┗ 한아름 12.07.25. 13:34
왜 불합리한 설문조사냐 하면 중생의 범위를 서로 달리 보는데 저 범위를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구원의 서정 순서나, 과정을 잘 모르는 회원이나, 잠시 그 생각까지 미처 생각지 못한 연중론을 반대하는 회원들은 “순간적이다.”라고 덜썩 답을 할 소지가 많다는 것이지요. 유도성의 질문 같다는 것이지요.
“순간적이다.”라고 답변한 사람이 열 명이라는 것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것 질문 같지 않아 응하지 않은 회원들 많습니다.
왜 이렇게 형평성에 맞지 않게 일처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한아름 12.07.25. 13:33
likeagle 님은 설문조사를 정당하게 하셨어요. 문제가 있다면 삭제해도 좋다고까지 하시면서... 하지만 저는 그 자료를 끝내 활용하시는 홀리죠이 님의 일처리가 공정치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개인의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고 봅니다.
┗ holyjoy 12.07.25. 13:56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시는 것 보니, 배러리가 나간 것 아닌가 싶습니다(이런 표현으로 더 기분 나쁘실란가?)....
한아름 님의 말씀에 《문제는 “중생이 연속적이냐, 순간적이냐?”라고 물으면 형평성이 맞는데 이 질문은 연속적 중생론을 지지하는 회원 입장에선 당연히 “연속적이다.”라고 나오지요.》라고 하셨는데, 그럼 그렇게 한 번 설문조사를 해 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아예 애당초부터 이런 설문조사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까지도 했었는데, 왜 이렇게 이런 투표에 신경을 쓰시는지....? 한아름 원하시는 질문대로 설문조사를 해 보십시오. 저도 그렇게 하는 것 흥미롭군요.
┗ holyjoy 12.07.25. 13:57
그 자료를 “끝내 활용”한다고 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저는 도체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왜 그렇게 그런 별 의미가 없는 투표 나부랭이에 신경을 쓰실까요?
┗ 한아름 12.07.25. 15:29
배러리가 나가다니? 그 비이냥 투의 말은 끝도 없습니다.
또 적반하장격으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제가 할 말을 대신하고 있군요. 그 공정치 못한 데이타를 빨간줄로 강조하여 활용하는 것 제가 보고, “홀리죠이 님이 도표에 끝내 활용하시는군요.”라고 했는데 이해를 못하셨나요?
┗ 로빈슨크로소 12.07.25. 17:26
한아름: 타 카페에서는 연중론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하셨길래.. 전 또... 아닌가 보군요.
┗ 한아름 12.07.25. 18:43
연중론 좋으면 이렇게 반대 입장에서 얘기를 안 하지요. 처음엔 이렇지 않았는데 이끌어 가시는 것이 썩 안 좋아 안티가 돼 버렸네요. 논리도 맞지 않고요. 한마디로 억지 같아 보입니다. 남의 견해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계신데요.ㅠ
┗ holyjoy 12.07.25. 18:02
안티다운 안티 한 분 계시는 것도 양무리 마을이 양무리 마을다와지는 것이지요. 결국 안티가 되시겠다 하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저도 안티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공정치 못한 데이타를 빨간줄로 강조하여 활용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당췌 이해가 안 되는데 좀 더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준 안티님?
┗ 한아름 12.07.25. 18:44
금방 “안티”로 부르는군요. 네 알겠습니다. 댁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다른 분들 잘하고 계시는데 왜 제가 그분들까지 포함해서 말하겠어요. 정말 다른 운영자 분들 수고 많으세요. 늘 감사하구요.
그렇게 댓글로 길게 설명하면 알아 들으실 텐데 복잡하지도 않은 예기 뭘 모르신다고 자꾸 묻는지 모르겠네요.ㅠ
┗ holyjoy 12.07.25. 18:57
“그 공정치 못한 데이타를 빨간줄로 강조하여 활용하는 것”... 솔직히 이 한아름 님 말씀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든요. 한아름 님 설명하시는 것이 귀찮다고 여겨지면, 어디 다른 분들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저에게 좀 이해시켜 주시겠습니까? 다른 회원님들, 이 지루한 댓글 교환 끝날 수 있도록 도움을 부탁드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 likeagle 12.07.25. 22:36
한아름 님 제 설문에 대해 일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아 글을 남깁니다. 하나는 홀리조이 님이 제 설문의 결과를 연속적 중생론의 근거로 활용하시는 것으로 알고 계신데.. 그건 절대 아니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설문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이미 연속적 중생론은 이곳 양무리에서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바이며, 회심까지의 기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연중론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며 {영혼의 의사} 저자, 그리고 번역자, 이곳 운영자, 책의 추천서를 쓰신 백금산 목사님, 그리고 청교도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성경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확신하기에 그렇게 도표까지 만들어 설명하는 것이지 설문 따위가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 likeagle 12.07.25. 22:51
그리고 다른 하나는 중생의 정의가 서로 다른데 부르심에서 회심까지 기간의 유무를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입니다. 한아름 님께서 중생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주 잘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생이 순간적이냐 혹은 연속적이냐고 질문하지 않고 부르심에서 회심까지 기간의 유무를 물은 것입니다. 무언가 설문을 하려면 일치하는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일치하지 않는 기준으로 비교 질문을 한다면 그것 자체가 모순이 됩니다. 이곳 회원 분들 중에 대부분은 부르심과 회심에 대한 정의가 거의 동일할 것입니다. 바로 그 동일한 기준으로 질문을 한 것이고,
┗ likeagle 12.07.25. 22:55
회심까지의 기간의 유무는 연중론의 존폐가 달려있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바로 그것만을 물어본 것입니다. 중생의 정의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더라도 회심까지의 기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분은 이미 연중론을 지지하고 있는 샘이 됩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중생을 지지하더라도 시간의 경과를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절대 연중론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시간의 경과 유무가 연중론에서 중요합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저의 설문때문에 한아름이 맘고생을 하신거 같아 저도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군요.^^ 상한 마음 터시고 한아름 님께도 유익한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grace 12.07.25. 13:58
칭의를 얻는 중생자체는 순간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생을 위해서 주님이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복음의 씨가 수태되고 난 후 중생까지는 연속적이라는것입니다 .순간적 중생론은 과거의 부르심이나 복음을 듣는 것등이 성령의 중생의 역사와 무관하다는 것이고 연속적 중생론은 그 자체부터 중생을 위한 성령의 역사로 보는 것입니다.
┗ grace 12.07.25. 14:01
순간적 중생론에서도 중생하기 전에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기도 하고 교회출석도 하지만 이것은 중생을 위한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는 것이고 연속적 중생론은 이미 그때부터 중생을 위한 성령의 사역이 시작된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 holyjoy 12.07.25. 14:01
저의 도표를 보시면 그레이스 님도 약간 미스가 있는 것을 살필 수 있습니다. 순간적 중생론도 과거의 부르심이나 복음을 듣는 것 등이 성령의 중생의 역사와 무관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점은 순간적 중생론과 연속적 중생론 모두가 다 주장합니다. 저의 표를 다시 한번 보세요. ^^
┗ grace 12.07.25. 14:03
갈릭 님 글을 보면 상관이 없다라고 본적이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것은 중생을 위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으로 보았는데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 holyjoy 12.07.25. 14:05
한 번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갈릭님이 그렇게까지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도표를 보시면 첫번째 관련 주제부터 세번째까지는 순간적 중생론과 연속적 중생론의 입장이 모두 같습니다.
┗ grace 12.07.25. 14:06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MDcs/2182 라마드 님의 글입니다.
┗ grace 12.07.25. 16:33
루디아의 예를 들면서 바울을 만나기 전의 상태는 중생을 위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 grace 12.07.25. 14:15
댓글중/ 묵상 365일 12.07.23. 16:26 제임스 뷰케넌은 그의 책에서 그녀가 유대 신앙으로 개종한 자였으며 참되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는 자였음에도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예수 안에 있는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닫혀있었다 합니다. 바로 이러한 루디아의 상태가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기 전 모든 사람들의 자연적 상태라고 합니다. 곧 이러한 마음은 이해와 양심과 의지와 감정을 포함하는 인간의 도덕적이며 전인적인 본질을 뜻한다.
┗ holyjoy 12.07.25. 15:27
그것은 라마드 님의 주장이고, 갈릭 님은 그렇게까지 나간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만일 갈릭 님이 그렇게까지 주장했다고 하면, 그 견해가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제가 주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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