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참 인간적이야!” “인간미가 풍겨”라는 말에서 인간(人間)은 마치 모든 사람은 품이 넓고 마음이 따뜻할 것 같다. 한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사람이 맺는 모든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할 것만 같다. 하지만 1967년 도쿄 근교의 인간들은 이웃에 대한 배려보다는 오직 자기 앞가림에만 급급할 따름이다. 저 혼자 살겠다고 이웃을 몰아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너구리들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숲을 허물고 그 자리에 삭막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촌을 건립한다는 ‘뉴타운 프로젝트’에 의해 다카숲과 스즈가숲에 사는 너구리들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그리하여 마음고생 심한 우리 너구리들은 ‘인간연구 5개년 프로젝트’와 금지돼 있던 변신술의 부활로 인간들의 개발계획에 대항한다. 변신술이 완성되는 날 <요괴대작전>을 펼치고, 이를 경험한 인간들이 너구리(자연)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품도록 만들어 ‘뉴타운 프로젝트의 백지화’를 하겠다는 것. 얼마나 깜찍한 발상인가. (94년도에 개봉돼 DVD도 나온 이제야 극장에 걸렸다는 게 의아하다. 하지만 이 <요괴대작전> 장면은 꼭 극장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탐욕(개발지상주의)에 물든 인간들에게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다시 심는다는 건 요원한 일이다. 자연을 아낌으로서 얻는 경제적 효과보다 개발을 통한 가시적인 경제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한다. 이런 희한한 계산법은 모니터와 자동차, MP3를 좀 더 팔아먹겠다고 농업을 포기하고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요즘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지브리 스튜디오作 애니메이션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부터 연상하게 되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원령공주(1997)처럼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게 만든다. 허나 하야오와 달리 ‘다카하다 이사오’는 반딧불의 묘(1988), 추억은 방울방울, (1991), 이웃의 야마다군(1999)과 같은 대표작만 살펴봐도 알 수 있듯 인간관계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 이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도 주인공이 너구리들이라는 점만 다를 뿐 관계맺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야오식의 자연 이야기보다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 우리 아이들에게 환경의 소중함을 전해주고 싶다면 백 편의 환경다큐멘터리보다는 이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