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환속당했다가 복권되다 / 효순 노부 (曉舜老夫) 선사 효순 노부 (曉舜老夫:운문종) 스님이 여산 서현사 (棲賢寺) 의 주지로 있을 때 괴도관 (槐都官) 이 남강 (南康) 태수가 되어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의 승복을 벗겼다. 정인사 (淨因寺) 대각 연 (大覺懷璉) 선사는 일찍이 효순스님의 회하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효순스님이 환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정인사로 모셔서 주지방에 기거하도록 양보하고 자기는 구석 방에 거처하였다. 당시 인종 (仁宗) 은 자주 회련스님을 궁중으로 불러 도를 물었지만 회련스님은 끝까지 효순스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루는 가왕 (圈王) 이 황제의 명을 받아 정인사에 가서 승려들에게 음식공양을 했는데 대각스님이 효순스님의 곁에서 몹시 공손하게 시봉하는 모습을 보고서 대궐에 돌아가 아뢰었다. 인종 (仁宗) 은 효순스님을 편전 (便殿) 으로 불러 만나보고는, ꡒ위대한 도풍을 간직한 산림의 진짜 달사 (達君) 로다ꡓ 하며 감탄하였다. 그리고는 부채 위에 ꡒ효순에게 내리노니 옛처럼 승려가 되게 하고 특별히 다시 서현사의 주지로 명하노라ꡓ라고 써주었으며, 자의가사와 은발우를 하사하였다. 효순스님이 서현사의 주지에서 파면되었을 때, 두 장정이 가마를 메고 가다가 나한사 (羅漢寺) 앞에 이르러, 이미 우리 선원의 노스님이 아니니 멀리 갈 것 없다고 의논하고는 가마를 버리고 돌아가버렸는데, 효순스님이 서현사로 다시 오게 되자 먼저 사람을 보내 두 장정을 위로하며 말했다. ꡒ당시 너희들의 행동이 옳은 것이었으니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ꡓ 효순스님은 절에 이르자 법당에 올라 송을 하였다. 까닭없이 참소입어 쫓겨났던 몸 반년남짓 세월을 속인이었네 오늘 또다시 삼협사에 돌아오니 기뻐할 이 그 얼마며 노여워할 이 그 몇일까. 無端被枉遭迍 半年有餘作俗人 今日再歸三峽 寺幾多喜幾多嗔 효순 노부스님은 어느 날 거량하였다. ꡒ염관 (鹽官齊安:?~842, 마조스님의 법제자) 스님이 시자를 불러 물소뿔 부채를 가져오라 하니, 그 부채는 이미 부서졌다고 하였다. 염관스님이 ꡐ부채가 부서졌으면 내 물소를 돌려다오' 하자 시자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ꡓ 그리고는 이에 대해 말하였다. ꡒ삼복 더위라 부채가 필요할 때인데 시자가 되어 자기 할 일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염관도 너무나 다그친 것이다. 어찌하여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하였는가? 시자도 그 당시 염관이 ꡐ부채가 부서졌으면 내 물소나 돌려다오' 하였을 때, 곧 그에게 ꡐ이미 바람에 날려 쓰레기더미로 들어가 버렸습니다!'라고 했어야 한다.ꡓ 취암 (翠巖) 진점 흉 (眞點胸, 可眞, ?~1064) 스님은 일찍이 효순 노부스님에게 무사선 (無事禪) 을 설한다고 욕을 하였는데 석상 법영 (石霜法永) 스님이 가진스님에게 사람을 보내 말을 전하였다. ꡒ효순이 동산 (洞山曉聰) 스님의 회하에 있을 때 고경인연 (古鏡因緣) 을 그렇게나 깨달았는데 설마 무사선을 설하였겠는가? 그를 욕한다면 그대 스스로 한쪽 눈 〔一隻眼〕 을 잃게 될 것이다.ꡓ 효순스님은 그 말을 듣고 송을 지었다. 나는 선이 뭔지 몰라 그저 발씻고 침상에 올라 잠잘 뿐 겨울 오이는 그저 둥글고 표주박은 구불구불하네. 雲居不會禪 洗脚上牀眠 冬瓜直儱侗 瓢子曲彎彎 법영스님도 송으로 답하였다. 나도 선이 뭔지 몰라 그저 발씻고 침상에 올라 잠잘 뿐 목침이 떨어지는 바람에 사원의 벽돌이 박살났구려. 石霜不會禪 洗脚上牀眠 巖子撲落地 打破常住甎 효순스님은 어느 날 상당하여 말했다. ꡒ황혼이 진 뒤에는 버선을 벗고 잠을 자다가 새벽녘에 일어나 다시 행전을 묶는다. 밤사이 바람 불어 울타리 넘어지니 노비를 모두 불러들여 대나무를 쪼개어 울타리를 일으켜 세우는구나!ꡓ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
출처: 불교 붓다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온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