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0.15(수)
맑음, 구름 간간히, 바람 강하고 쌀쌀.
닷새 만에 찾아오는 북한산엔 단풍의 절정은 지나가고 있었다.
이틀간 내린 많지 않은 가을비는 단풍이 나무에 매달려 곱게 물드는 걸 그대로 두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대니 단풍잎도 갈나무 갈색 잎도 여지없이 흩날린다.
산길과 골짜기마다 붉고 고운 단풍잎과 각가지 찬란한 색깔의 낙엽이 밟힌다.
낙엽이 쌓인 산길은 조심하여야 한다.
단풍에 취해 정신 놓고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발 디딜 곳이 드러나지 않아 발목을 겹질리기 십상인 것이다.
오늘도 잠수함 바위 위쪽 능선에서 낙엽에 미끄러진 등산객이 머리를 다쳐 헬리콥터에 실려 갔다.
송 대장도 발목이 뒤집혀 불편하다고 한다.
오늘 참가한 사람은 송대장, 이애희님, 꿀꿀이, 바다, 그리고 나 산아래이다.
"119 긴급 출동......"
오늘은 서면벽3을 등반할 것이라 한다.
(올 가을 들어 제일 춥고 바람이 강하다는 데, 하필이면………)
인수봉의 서쪽면은 가을이나 겨울철에는 늦은 시간까지 햇볕을 받는 곳이어서. 여름철이 지나면서 우리는 이 곳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숨은벽과 인수릿지(악어능선) 사이 골짜기로 불어 올라오는 세찬 골바람이 실로 만만치 않은 암벽이다.
내 기억으로는 서면벽을 등반할 때면 유난히 바람이 세차고 추운 날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수봉 서면의 바윗길은 서면벽1 ,2, 3와 뱀길 등이다.
이들 코스는 비둘기길 안부에서 숨은벽의 골짜기로 조금 내려온 곳에서 시작된다.
예상한 대로 비둘기 길 안부에서부터 바람이 거세다.
나뭇잎과 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마치 겨울 바람처럼 소리를 낸다.
겨울옷을 챙겼으나 방풍복을 빠뜨린 나는 가지고 온 윗도리 3개를 전부 입었다.
이여사의 도시락 보온용 검정 털모자 까지 빼앗아 덮어 쓰고 그 위에 헬멧을 쓴다.
나는 오늘 후등을 보게 된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계속 움직여 주어야 한다.
<첫 번째 피치 : 크랙 35m, 난이도 5.9>
초반에서 중반 까지는 레이 백이 잘 적용되는 90도 방향의 좌향 크랙 오름 길이다.
크랙을 뜯는 손가락이 시려 오면서 감각이 무디어 진다.
3년 전 이었던가? 바람 불고 몹시 쌀쌀하던 초겨울, 월류봉님이 여러 차례 미끄러져 손등이 까진 게 생각난다.
나는 레이백으로 조심 조심 오른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크랙을 더듬어 홀드를 정확히 잡고, 손과 발의 거리를 가깝게 두어 정확한 자세를 잡는 것이 좋다.
확보지점에 이르러서는 머리 위 쪽 커다란 크랙으로 올라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슬랩 왼편의 수평으로 짧게 흐르는 1Cm 내외의 상향 크랙에 손가락을 걸어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이다.
서면 벽 첫 피치 확보지점에서는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 온다.
껴 입은 옷 사이로 찬 바람이 들어 온다.
차례를 기다리는 중에 체온이 내려 가면서 두 손이 다시 시려 온다.
하강을 위하여 준비한 목장갑을 끼어본다.
확보를 마치고 숨은벽을 조망한다.
나무들은 너도 나도 가을 옷으로 갈아 입은 지 오래다.
쓰러진 나무들 과 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들도 눈에 많이 띈다.
며칠 전 왔을 때, 인수릿지에서의 본 그 단풍은 어디로 갔나?
저 아래 숨은벽 골짜기로 눈을 돌려 본다.
그런데, 그 붉고 곱고 단아한 단풍은 거기에 있었다.
노란색, 갈색, 초록색 나뭇잎들 사이에서……….
<두 번째 피치 : 크랙 19m, 세 번째 피치 : 11m 난이도 A1>
바위 턱을 잡고 아래로 2m쯤 내려와 약 10시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어렵지 않게 두 번째 피치가 끝나는데, 쉬지 않고 세 번째 피치를 등반한다.
세 번째 피치는 크랙과 슬랩, 그리고 90도가 넘는 오버행의 인공등반 코스이다.
오래 만의 서면벽3 등반이어서인지, 후렌드를 회수하고 나니 겁이 더럭 난다.
왼편 오버행에 붙으려면 손이 잘 닫지 않는 거리의 바위 턱을 붙잡아야 하는데 그게 아슬아슬하고 두려운 것이다.
“아니~ 여길 어떻게 통과하지~”
나도 모르게 저절로 흘러 나온 탄식이다.
(까짓 것, 떨어져야 얼마나 떨어지랴~ 후등이니까,,,,,)
잠시 망설이다가 왼손을 뻗어 바위 턱을 붙잡고 몸을 매달고 다시 오른손으로 바꿔 잡는다.
왼손을 뻗어 늘어진 슬링을 잡고 오른 손도 옮겨 잡는다.
이제 몸은 오버행의 허공에 대롱대롱 매어 달린다.
인공등반의 요령을 적어 본다.
몸을 끌어 올려 피피를 건다.
오른 발을 슬링에 끼우고 무릎을 꺾어 슬링에서 몸을 일으킨다.
무릎을 확실히 꺾고, 발 뒤꿈치를 엉덩이에 붙여야 몸을 일으키기 쉽다.
왼손을 바위에 올려 홀드를 찾아 손가락으로 잡고 왼 발을 바위에 올린다.
오른손을 높이 뻗어 올려야만 머리 위의 양호한 홀드를 잡을 수 있다.
몸을 슬랩에 올린 다음 크랙을 잡고 몇 걸음 내려와 바위틈새에서 확보한다.
홀드를 확실히 잡는 것이 크럭스를 통과하는 요령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피치 : 크랙 및 인공등반 25m>
오버행을 오르고 나니 몸에서 열이 나고 추위가 가신다.
이 바위 틈새의 확보지점에는 바람도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햇볕도 더욱 따듯해 진 느낌이다.
네 번째 피치는 초반 5.10a의 커다란 크랙 통과가 크럭스이다.
이 크랙은 깊으나 몸이 들어갈 만한 크기와 모양새는 아니다.
더구나 바위 날개의 모양이 항아리의 곡선처럼 튀어 나온 모양이다.
따라서 크랙 의 바위 날개를 잡고 레이백 자세를 응용하는 것이 요령이다.
바위 날개의 각도가 급한데다, 오른쪽 바위에 마땅한 스탠스가 없으므로 자세를 정확하게 잡아야 오를 수 있다.
크럭스 통과의 요령을 적어본다.
두 손을 크랙 속으로 집어넣고 양 발을 넓게 벌려 가급적 위로 몸을 올린다.
손을 크랙에서 빼내어 바위 날개를 잡는다.
이 때 몸의 중심은 오른편으로 확실하게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른발을 왼편 벽면으로 옮기어 레이백 자세를 취하여 몸을 위로 올린다.
두 손은 바위 날개의 윗부분으로 바꿔 잡는다.
다시 오른발을 바위 날개 오른편으로 옮기고, 왼발을 조금 더 올려 딛는다.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면 양호한 홀드를 잡게 되고, 오른발은 양호한 스탠스를 딛게 된다.
크럭스를 탈출하면 1시 30분 방향으로 올라가는 좌향 크랙을 만나게 된다.
홀드가 좋고 레이백이 잘 적용되는 교과서적인 크랙이나 경사가 급한 편이다.
역시 힘으로만 올라서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며, 정확한 자세를 잡아야 한다.
10여m의 크랙을 오르면 수평으로 이동하는 Ao 등급의 인공등반 코스에 도달한다.
쉬운 인공등반 코스이나 구형 볼트가 낡고 녹슬어 위험스러워 보인다.
코스의 보수가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위쪽으로는 바위 벽이 가로막아 섰다.
인공등반이 끝나면 확보지점에 도착한다.
확보지점은 경사가 급한데다, 볼트 역시 낡아 위험스러운 생각이 드는 곳이다.
대장은 확보지점 옆 크랙에 후랜드 2개를 설치하고 확보를 보완한다.
뿐만 아니라, 다음 피치까지 올라가 자일로 확보를 하고 다시 내려와 확보를 보아준다.
세심하게 안전을 고려하는 대장이 언제나 믿음직스럽다.
<마지막 피치>
여기서 마지막 피치는 10여 m 쯤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피치는 서면벽1의 마지막 피치중 끝 부분과 겹치는 구간이다.
초반에는 크랙 등반 방식으로, 마지막에는 침니 등반 방식으로 등반한다.
확보지점에서 위로 조금 걸으면 비둘기 길 정상이 된다.
네 번째 피치를 오른 나는 잠깐 자만심에 빠진다.
전에는 크럭스에서 죽을 힘을 다 했었는데, 오늘은 의외에도 쉽게 통과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초반 크랙은 첫 피치 초반과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
(이 정도의 크랙은 문제 없지~)
자신 있게 손가락을 걸고 오른편의 암벽에 두 발을 딛고 레이백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한 순간 손가락이 빠지면서 미끄러진다.
“손가락에 피가 나는데요~”
대장이 밑에서 한 마디 한다.
“길을 잊어 버리신 모양입니다~”
“다리를 벌리고 양 발을 이 쪽과 저 쪽으로 딛으셔야죠~”
마지막 피치를 통과하여 비둘기길 위 아늑한 테라스로 자리를 옮긴다.
여긴 햇볕도 따듯하고, 바람도 그리 세지 않다.
먼저 도착한 이애희님이 바위틈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다.
첫댓글 사진만 보아도 아찔하고, 글만 읽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군요. 그런데 사진에 찍힌 분들의 표정을 보면 평화롭고 희열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