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아버지가 장에 소 팔러 간 사이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고 해서 장소팔이야.
형님은 중팔이고 아버지는 대팔이고…."
속사포 같은 수다와 재치 만점의 애드리브로 1950~1970년대 공연장과 TV, 라디오를
종횡무진하며 시청자들의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만담가 장소팔
(본명 장세건·1922~2002)씨. 당대 최고의 예능 스타였던 장씨의
동상이 생전 그가 살았던 서울 흥인동에 들어선다. 장씨는 '황금 콤비'
고춘자(본명 고임득·1922~1995)씨와 함께 만담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서울 중구는 오는 28일 성동공고 후문 인근에서 장씨의 동상 제막식을 갖는다.
장씨는 세 살 때인 1925년부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1975년까지 흥인동과 황학동,
신당동을 오가며 살았다. 나이 든 토박이 주민 중에는 당시 장씨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조각가 어순영씨가 제작한 장씨의 청동 전신상(全身像)은 높이 1.5m, 폭 1.2m의
아담한 크기다. 장씨가 정장 차림으로 왼발을 꼰 채 화강석 위에 앉은 모습이다.
"그나저나 이건 알고 계슈? 내가 말이요~" 하는
특유의 따발총 만담이 금세 터질 것 같다. 동상 제작에는 3000만원이 들었다.
동상 받침대 뒤에는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자 최영섭씨가 짓고,
가수 장사익씨가 손 글씨로 쓴 헌사(獻辭)가 새겨져 있다.
'해방 후 어려웠던 시절 고춘자 선생과 함께 온 국민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 주셨다'는
내용이다. 정동일 중구청장은 "서민에게 친근한 장씨를 기리는 뜻에서 오가는
시민들이 편안히 앉아 기념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처럼 꾸몄다"고 말했다.
부친의 이름을 본떠 '장광팔'이라는 예명으로 만담가의 대(代)를 이어가는
장남 광혁(57)씨는 "동상 건립이 재치와 철학이 가득했던
그 옛날의 고품격 코미디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퍼온글/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