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林秉植 rbs1144@hanmail.net
사람은 살아가면서 닥치는 액운(厄運)을 피 할 수 없다. 여기서 액(厄)은 모질고 사나운 것이고 액운(厄運 )은 바로 그런 운수가 닥칠 조짐을 이른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닥치는 액에 대한 공포때문에 조바심을 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그 액막이를 위해 푸닥거리도 심심치 않게 행하였다. 그러면서 그것과는 별도로 남을 위해 적선을 한다거나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돌다리를 놓기도 했다. 그만큼 정성이 가 닿으라고 향하였다.
그러고 나서도 화를 당하면 핑게거리를 만들었다. 예턴대 '그만 하기 다행이라거나' '액땜을 했노라'고 위안을 삼았다. 앞날이 불투명한 인생사를 살아내기는 간단치가 않다.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아도 그 뒤에는 불안한 일과 좋지 않은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때문에 옛말에도 '복은 쌍으로 오지 않고 화는 단독으로 오지 않는다( 복불쌍행(福不雙行)화불단행(禍不單行))고 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는 것이, 살다보면 아닌게 아니라 좋은 일이 있고난 뒤에는 꼭 마가 따른다. 어제 내가 당한 일도 그런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친구가 지자체선거에 출마를 하게 되어 자서전을 낸 출판기념회에 축하차 갔는데, 다녀온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이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대신 차가 손상을 입었다. 천행으로 그만 하기가 다행이었다. 그곳은 주택이 가까이 있어 차들이 쌩쌩 다니는 곳인데, 난데없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고를 당하고서도 당시는 무슨 일이 일어난 줄도 몰랐다. 차 후미가 조금 들석여서 차 바퀘에 다른 낙화물이 걸린 줄로만 알았다.그래서 대수롭게 여겼다. 그러면서 이날 모임 자리에서 한동안 만나보지 못한 친구들과의 조우장면만을 회상하고 있었다.
이날의 자리는 고향에서 지자체장에 출마를 한 친구가 다리를 놓았다. 친구의 출판기념회가 모교의 강당에서 열렸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동문들이 원근 각지에서 소식을 듣고 다수가 참석했다. 얼마만에 만자는 지리인가. 피차 졸업한지 40여 년이 넘다보니 서로 보고도 얼른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이날 나는 교정에 들어서자 먼저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변해버린 풍경속에 낯익은 것이 있나 싶어서였다. 그런 중에 중앙 화단 부근에서 반가운 흉상과 기념비를 만났다. 초대교장을 지내신 안태시(安泰時)교장선생님을 기리는 비였다. 선생님은 어떤 분이시던가. 학생들의 학력신장을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분으로 제자들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학급편성을 우열반으로 나누어서 가르쳤는데, 반(班) 대신 조 (組)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를 다시 인(仁),의(義), 예(禮),지(智),신(信), 효(孝)조라 했다.
이는 당신이 한학을 하신 분으로 품성교육을 병행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모교인 보성중학은 인동에서는 명문교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다보니 인접 고을인 화순이나 고흥, 장흥등지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도 많았다. 당시 보면 교장선생님은 집무실에만 계시지 않고 수시로 교습상태를 점검하고 만약에 결강이라도 생기는 교실이 보이면 들어와서 꼭 삼강오륜이며 인륜도리를 일깨우는 보충수업을 해주셨다.
그런 시간을 통하여 들은 특강 내용 중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말씀이 있다. 다른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신체보존을 당부하시면서 , 몸은 부모가 주신 것이니만큼 다치지 말고 잘 간수해야한다는 망씀이셨다. 훗날에 돌아보니 그 말씀은 효경(孝經)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으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요, 부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를 인용하신 것이었다.
교정에서 흉상을 대하니 어제인 듯 그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온 듯 했다. 감회가 여간 새롭지 않았다. 거기다가 오늘은 당신의 가르침을 받은 훌륭한 제자가 출판기념회를 갖는 날이 아닌가. 고을 발전을 위해 나선 것을 보기고 얼마나 대견해 하실까. 그간 정부 부처에서 고위공직에 몸담고 있다가 고향에서 봉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친구가 자서전을 내는데 나도 일조를 했다. 바로 초고를 검토한 것은 물론, 적절한 표제 글을 찾지 못하자 그의 평소 고향사랑을 참고하여 '나는 무작정 고향을 돕고 싶었다'라고 정한 것이다.
그 제목을 단 것은 앞으로도 고향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포부도 함께 담은 것이었다.
한데, 하필, 그 좋은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사고를 당한 것을 몰랐다. 어떤 차가 내 뒤를 따로 오는 것을 백머러로 확인을 했지만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거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파트로 들어와 주차를 하는 데까지 따라온 것이 아닌가. 내려서야 사고가 났음을 직감했다.
나와 마주치자 그가,
“바로 차를 세우시지 그냥 가십니까?”
“어련히 하실려구요. 중간에 세울 데도 없고.”
몽을 따고 말했다. 그 마당에 실은 '사고가 난줄을 몰랐다'고 이실직고할 필요는 없었다.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차 수리는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처음에 그가 매우 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 생각하니 그 지점은 상시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는 구간이라 다른 운전자들은 과속을 삼가는데 비해 그가 유독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로서는 정식 교통사고 처리보다는 적당히 수리를 해주고 끝내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끝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나는 당시 약간 충격을 받긴 했으나 병원에는 가지 않고 부서진 범퍼만 수리를 했다. 그만하길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이날 일어난 교통사고를 액땜으로 쳤다. 더 큰 사고가 예정된 것을 비교적 경미한 것으로 치르면서 다치지 않고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었다.(2006)
첫댓글 가령 좋은 일 끝에 교통사고를 당하면 '호사다마'라 하고
그렇게 사고를 당했는데도 별로 다친 데도 없고 하면 '불행중 다행'이라거나 '액땜'했다고 결론을 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또한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큰 사고가 났는데도 무사한 것만큼 더한 행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누가 자기 차를 앞질러 가면 욕을 하지 않고
"아이쿠, 나 대신 먼저 가려고 하시니 참 고맙습니다."라고 혼잣말을 한다더군요^^
행, 불행도 생각하기에 따라 바뀌는가 봅니다.
어느 분이 했다는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날은 정말 불행중 다행이었지요.
14년전에 이런 일이 있으셨군요. 천만다행입니다. 사고가 크게 안나서 다행이고 양심있는 운전자를 만나서 다행이구요. 그러고 보면 살아 숨쉬고 있는 거 자체가 행운이지 싶어요.
살다보면 액땜이라는게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그래도 양심적으로 아파트까지 따라와서 차를 수리해줘서 별문제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