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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4.목 / CGV강변 / 잉투기 (엄태화 감독)
디씨 갤러리나 아프리카 티비와 같은 온라인 문화에 대해서 여러분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나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는 청춘들의 '잉투기'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오늘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을 만든 엄태화 감독과 엄태구, 류혜영, 권율 배우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엄태화 감독과 엄태구 배우는 형제예요. 엄태화 감독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시작할게요. 홍익대학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선인장>, <신봉리 우리집: 흔한 이야기>, <유숙자>, <숲> 등 여러 단편을 만들었습니다. <숲>으로 제11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요. <잉투기>는 졸업작품이자 데뷔작입니다.
‘현피’, ‘키보드 워리어’, ‘바츠해방전쟁’ 이런 것들 여러분은 알고 있었나요? ‘현피’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저도 잘 몰랐어요. '현실'과 ‘PK(Player Kill)’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죠. 온라인상에서 설전을 벌이다가 실제 싸움으로 번지는 것인데, 디씨 정사갤러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죠. 찾아봤더니 ‘바츠해방전쟁’은 5년간 벌어진 아주 역사적인 사건이더군요. 영화는 20대 문화로 이런 싸움을 다루고 있는데요. 무엇과 누구와 왜 싸우는 건지 궁금합니다. 저희 때는 분노의 에너지가 데모 같은 사회 변혁의 에너지로 이어졌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엄태화 감독 일단 게으름이 큰 것 같아요. 저희 집이 철거되는 내용을 다큐로 만든 적이 있어요. 건설회사가 들어오면서 쫓겨나다시피 나가게 됐거든요. 그때 그들과 싸워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용기도 없고 싸워봤자 이길 것 같지도 않고,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한마디로 귀찮은 거죠. 꼭 그 일뿐 아니라 뭔가 열심히 하기는 싫고 살다 보면 그냥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애매모호한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태도의 반발로 영화 안에서 싸움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류승완, 류승범 형제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두 분을 보니 느낌이 좀 비슷해요. 감독은 부드럽고 동생은 울퉁불퉁하고. 그런 소리 많이 듣죠? (웃음) 저는 엄태구 씨 포즈가 좋았어요. 첫 장면부터 힘 빼고 걷잖아요.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찌질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눈을 찡긋하는 건 본인 습관인가요? 마지막에 엄청 맞는 장면에서 진짜 맞은 건지도 궁금하고요.
엄태구 배우 원래 그런 습관이 있는데 태식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좀 극대화했어요. 영화 찍고 나서 더 심해졌어요. (웃음) 맞는 연기는 맞는 척을 해야 하는데 촬영할 때 진짜 많이 맞아서 눈이 시뻘게졌어요. 그래서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류혜영 씨도 어려운 장면을 연기했죠. 밀가루 던지는 장면 찍을 때 부담 많이 느꼈다고 하던데.
류혜영 배우 부담감이 컸어요. 저예산이고 스태프가 많지 않아서 괜찮다는 말이 제 귀에는 들리지 않았거든요. 괜찮다는 말은 다 거짓인 거 알고 있으니까요. (웃음) 처음에 액션 하고 밀가루 뿌리는 순간 이건 아닌다 싶은 거예요. 잠깐 스톱 하고 다시 찍기까지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알게 되면서 더 긴장이 됐어요. 다행히 두 번 만에 잘 찍은 것 같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저는 그거 보고 ‘말죽거리 잔혹사’ 여학생 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권상우는 창문을 깨고 류혜영은 밀가루를 뿌리고. (웃음)
류혜영 배우 멋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영섭 평론가 권율 씨한테는 이런 질문을 할게요. 희준은 왜 끝까지 태식을 안 돕는 거예요?
권율 배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와 관련해서 감독님께 약간 불만이 있었어요. 원래 희준이는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걸로 되어 있었어요. 저는 희준이 나타나서 태식과 같이 얻어터진 뒤에 어깨동무를 하고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을 상상했거든요. (웃음) 사실 희준이는 태식이나 영자에 비하면 히스토리가 없는 데다 날이나 각이 서 있는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도달한 결론은, 희준이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거였어요. 성장의 폭을 현실적으로 두고 싶었거든요. 그곳에 가는 정도가 성장이지, 직접 도와주는 것은 너무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A 일반 사람은 영화에 나오는 온라인 용어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배우들은 그걸 다 알고 연기했나요?
엄태구 배우 영화를 시작하면서 잉투기와 관련된 사이트를 처음 들어가봤어요. '십덕후', '부모 등골브레이커' 등 낯선 용어가 나오면 현장에서 형한테 뜻을 물어봤고요. 말투와 억양을 듣고 그대로 따라했어요.
류혜영 배우 저도 잘 몰랐어요. 다만 학창시절에 '노란국물'과 같은 엽기가 한창 유행해서 인터넷을 열심히 배회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디씨나 아프리카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심영섭 평론가 여기서 아프리카 문화란 진짜 아프리카가 아니고 아프리카 방송을 의미하는 거죠. (웃음)
권율 배우 그런 문화가 있다는 것,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어요. 아예 모르는 단어도 있었지만 특별히 연구하고 공부해야 알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에요. 현장에서 그때그때 물어보고 느낌을 살렸습니다.
관객 B 아주 독특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실제로 닮았다고 느낀 게 있나요?
권율 배우 희준처럼 저도 잉여 시절이 있었고 친구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어요. 그런 기억을 여기서는 더 과장되게 표현하려고 했고요.
엄태구 배우 가장 비슷한 점은 진지한 거? (웃음) 그리고 태식이 엄마 없는 방에 혼자 누워 있는 모습이 제 모습 같다고 느꼈어요. 혼자 사는 나도 저러고 있나? 나도 비슷한 자세로 누워 있나?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심영섭 평론가 태식의 엄마는 왜 코스타리카로 가는 거예요? 아들을 두고 발걸음이 떨어질까?
엄태화 감독 저런 아들이라고 생각하시면... (웃음) 식탁에서 대화할 때 엄마가 아들을 다시 포용할 것처럼 하다가 결국 간다고 얘기하잖아요. 우리한테 익숙한 어머니상은 자기 희생으로 자식을 감싸주는 모습인데, 저는 좀 다른 엄마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못 본 엄마였으면 했어요. 그런 느낌으로 설정했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태식이라는 캐릭터가 그렇듯이 영화를 보면서 희비극적 요소가 돋보였어요. 본인은 칼을 들고 다닐 만큼 진지한데 남들은 비웃고 조롱하는 식이잖아요. 이런 상황을 통해서 감독님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엄태화 감독 잉투기라는 대회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바로 호기심을 가졌는데 찾아보니 하나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열심히 하는데 다들 너무 못해요. 격투기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격투기 선수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떨어져서 보면 웃기지만 들어가서 보면 진지하거든요. 그런 게 영화 톤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동생이 캐스팅되면서 진지한 모습이 많이 들어가게 됐어요. 사실 옆에 있는 사람이 좀 불편할 정도로 진지하거든요. (웃음)
심영섭 평론가 어떻게 진지해요? 예를 좀 들어주세요.
권율 배우 무대 인사를 돌 때 한번은 제가 태구 씨한테 달리기 잘할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감독님이 초등학교 때 자신이 더 빨랐다는 거예요. 그때 갑자기 태구 씨가 정색하면서 “형이랑 나랑 3살 차이였잖아!” (웃음) 성장과 발육이 끝나기 전에 이루어진 승부이니 무효라고 주장하더라고요. 웃자고 던진 얘기에 형제의 난으로 번질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폭소)
관객 C 마지막에 태식이 주먹을 쳐다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엄태화 감독 태식은 현실과 싸우려는 게 아니라 현실을 피하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식으로 살아가죠. 왜, 요즘 세대는 패배할 기회조차 없다는 얘기가 있죠. 어쩌면 자기 상태를 자기가 몰라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라는 거죠.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먹을 쳐다보는 순간에는 자기 앞에 닥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상태에서 한발 내딛는 느낌으로 찍었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어머니는 말합니다, 사는 게 장난이냐고. 싸움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나는 이 영화 속에서 어머니조차 누군가와 싸워야 합니다. 세상은 거대한 싸움터일까요? 우리는 내구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장은 자꾸만 내구력이 없다고 얘기하죠. 존나게 버티는 ‘존버’ 정신은 어디서 나올까요? 안면타격 공포증이 있는 주인공이 두 눈을 부릅뜨고 앞을 쳐다봐야 하는 까닭은 그것 외에 방법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잉투기>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린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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