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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도시라지만 회색도시다
띠아구와 헤어진 후 강안 길(R. Tagus)을 따르는 까미노 데 뽀르뚜게스를 걷기 4km쯤.
까미노는 이 지점(restaurant Voltar ao Cais 앞)을 지나 서쪽 내륙길(Av. Maj. José Joaquim de Paiva)
을 따라 550m쯤 서진하여 N10도로에 진입한다.
프레게지아인 알량드라(Alhandra, São João dos Montes e Calhandriz)에 이어서 알베르까 두 히바떼주
에 쏘브랄리뉴(Alverca do Ribatejo e Sobralinho(Freguesia)로 이어지는 까미노다.
알베르게가 없거나 있기는 하나 내 기준치를 크게 오버하기 때문에 알베르까 역사(Alverca 驛舍)를 목표로
한 것인데 역을 6km 정도 전방에 둔 지점의 시간이 오후 5시를 넘었다.
까미노 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눈줄 시간이 없디는 뜻이며 지름길이 있다면 까미노도 과감히 버려야 할 시간
이라는 의미다.
알베르까 열차 역이 목표가 된 이유에 부차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역 지근에 자리한 항공박물관(Museu do
Ar - Polo Alverca) 견학은 입장 마감시간이 17시 30분이기 때문에 이미 좌절되고 말았지만.
남은 일정이라도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어둑발과 동행하는 일이 없겠지만 띠아구 외에는 철저하게 비협조적
인 이 지역 인심을 연속적으로로 느끼며 왔기 때문인지 불안이 고개를 드는 듯 했다.
지겹게 느껴졌던 오전과 달리 철로와의 동행(平行)을 바라게 되었는가.
지그재그를 피하게 되고, 그러면 상당히(20%) 단축될 것이니까.
뭘 물어보기는 커녕 누굴 만나는 것 자체가 불안할 정도로 외면과 냉대를 받은 오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량드라 역이 위치한 프레게지아는 유명한 탐험가 아폰수 지 알부케르키(Afonso de Albuquerque/1453~
1515/제독. 정치가, 인도의 2대 총독)의 출생지라고 자랑하고 있으나 인심은 고약한 것 같다.
내가 외지인(外地人) 또는 수르두(surdo/deaf)만 골라서 물은 것인가.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관광업이 각광을 받고 있는 현대의 필수 기관인 관광안내소(Oficina de Turismo)를
물어도 모르고 봄베아루스(Posto de bombeiros/소방서)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으니.
까미노(Portugues)가 지나는 지역의 봄베이루스 중 더러는 자기네 건물의 사무공간 일부를 숙소로 개조해
뻬레그리노스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물은 것인데, 뽀르뚜갈에서 최초로 느끼는 냉기(冷氣)였다.
남으로 내려갈 수록 더 심한 무더위 탓인가.
N10 도로를 떠나 지근의 알량드라 역(Alhandra)으로 갔다.
그러나 직선인 철로와 동행할 요량으로 갔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강화도(서쪽)에서 고성 통일전망대(동쪽)까지 민통선(民間人出入統制線)을 따라서 휴전선 155mile(약 248
km)을 걸을 때 예측과 판단의 착오로 무척 많이 했던 고생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단축될 듯이 보였으나 막다른 길이었거나 철조망으로 차단 또는 초병의 제지로 되돌아 가기를 반복함으로서
체력과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했던 민통선이.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의 남방힌계선(Southern Limit Line/SLL)을 자꾸 침범하는 위법, 범법
을 거듭했으나 쫓겨나거나 단거리의 경우는 통과를 허용하는 등 군인들이 관대했다.
당시에는 내 나라의 70대 후반 늙은이임을 참작, 예우했을 것이지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뽀르뚜갈
의 철길에서도 가능하겠는가.
무모한 짓보다 까미노 마크가 보장하는 안전을 택해야겠기에 N10 도로로 귀환한 것이다.
면적 17.89㎢, 인구 31.070명으로 지자체 빌라 프랑까 지 시라에서 최대 도시였다는 알베르까 두 히바떼주.
프레게지아 쏘브랄리뉴와의 합병(2013년)으로 23.92㎢의 면적에 인구 36.120명으로 커졌다는 알베르까 두
히바떼주 에 쏘브랄리뉴(Freguesia) 역시 한판이었다.
리스본(首都)의 하늘길 관문인 뽀르뚜갈 최초의 국제공항(Campo Internacional de Aterragem)과 군용
비행장이 있었으며 현재에도 항공박물관이 있는 등 뽀르뚜갈 항공의 요람으로 알려진 곳인데도.
따라서 녹지 공간이 많아서 '녹색도시'라고 불린다는데 내게는 왜 꽉 막히고 답답한 회색도시로 느껴졌을까.
아무 기대도 갖지 않게 됨으로서 더는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물어볼 누구를 만날 필요가 없고, 이유도 없으니까 더 만나지고 더 절로 알아지고(get to know) 마음이 더
태평해지는 듯 했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까 웨이 마크(Camino)가 더 잘 보이고 속도감도 더 나는 듯이 느껴졌고.
자연의 공개념(公槪念)을 실현하면 소유권이 소멸되거나 삭감되는가.
알량드라 역에서 N10 도로로 돌아온 후 알베르까 두 히바떼주 원형 로터리까지 남서진하기 2.5km.
까미노 뽀르뚜게스는 이 로터리를 떠나 농장지대의 농로를 따라 1.2km쯤 남하한다.
남하와 남서진(Estr. do Adarse ~ R. Q.ta do Pinheiro ~ Az. das Sainhas)의 막판에는 경작지에 자리한
대형 화물운송업체(Amf-Transitários/Shipping co.의 warehouse)를 끼고 지난다.
다운타운이나 주거전용지 인근에는 이만큼 넓은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산업폐기물과 도시의 쓰레기에 골머리 앓기는 뽀르뚜갈이라고 예외되겠는가.
"산업 및 도시 폐기물을 경작지에 버리는 것은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위반하면 법에 따라 벌을 받게 됩니다"
(e expressamente proibido vazar terras residuos industriais
e urbanos obediencia punivel de acordo com a lei)
"버리지 말라"는 의미의 간판이 서있다.
지자체(VFX)의 환경품질부(camara municipal de Vila Franca de Xira departamento de qualidade
ambiental)가 세운 경고판이다.
한국의 지자체 공무원이라면 '처벌'이라는 막연한 표현으로 만족하겠는가.
"0년 이하의 징역 또는 XX만원 이하의 벌금"이라고 구체적인 형량을 명시했을 것이다.
금지와 처벌을 알리는 경고판은 양의 동서와 선 후진국에 관계 없이 흔하게 보는 옥외 간판 중 하나다.
그러나 동서양의 간판은 확연히 다른 느낌(feeling)을 주고 있다.
나의 과문(寡聞) 탓일까.
표현(언어)문화의 상이점을 고려(감안)해야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경고판에는 약방의 감초처
럼 필수적인 용어가 "징역 또는 벌금"인데 반해 그들(서양)의 간판에는 "벌을 받게 된다"는 정도다.
전자가 강압적이며 공포심을 갖게 한다면 후자는 연성적이고 호소하는 느낌을 준다 할까.
이같은 간판이 까미노에는 드물게 있지만, 까미노와는 다른 불교의 순례길인 일본의 1.200km 시코쿠 헨로
(四國遍路)에도 우리 경고판의 복사판에 다름 아닌 간판들이 무수히 서있다.
길을 벗어나거나 입산금지 위반, 오폐물의 무단방기 등 사소한 위법도 징역과 벌금 등 과중한 형벌로 다스린
다는 이 무시무시한 간판의 효시(origination, beginning)는 한 일 양국 중 어느 쪽인가.
일본인들은 식민 통치 36년간에 이 공포의 간판을 본국에서 하는 것 처럼 조선땅 도처에 세우고, 조선인들을
혹독하게 다스렸다.
일제(日帝)의 잔재를 뿌리뽑는다고 목청껏 부르짖고 있기 1c의 5분의 4(80년)가 지났지만 청산은 커녕 답습
과 추종이 날로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경고판에 이어 울타리에 붙어있는 작은 안내판이 내 눈을 끌어갔지만 나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이미 파악되어 관심을 갖지 않게 된 숙박소다.
뻬레그리노스를 위한 오스뗄(hostel)이라 하지만 내 상한선(10€)을 150%(15€)나 상회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까미노는 이 지점(Az. das Sainhas)에서 직각으로 좌회전, 남서진해야 하는데 길 모서리의 전주에
부착되어 있는 글씨 '쁘로쁘리에다지 쁘리바다'(Propriedade Privada/私有財産)가 나를 긴장하게 했다.
까미노가 광대한 사유(私有) 농 목장을 가로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이 진입할 때는 수동으로 개문(開門)하게 되어 있으나 문이 닫히는 것은 자동이다.
가축들의 이탈(탈주)을 막기 위한 문의 단속을 뻬레그리노스에게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문단속을 간곡히 부탁한 흔적들(aviso/案內文)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용자(Peregrinos)의 호응
과 협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주인이 출혈의 자동화 장치를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킹 랜치'(King Ranch/Texas州)는 미국에서 제일 크다는 목장이다.
사유 재산이지만 고속도로를 비롯해 각종 도로가 목장을 통과하고 있다.
미국 남부(Texas) 국경 지대의 멕시코(Mexico/Reynosa)에서 직장생활 중이던 딸한테 갔다가 함께 방문했
는데 대부분 주마간산의 승차 견학이었는데도 종일이 소요되었으며 한국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유지(소유권 행사)라는 이유로 입산과 통행을 아예 막고 있는 한국의 철조망 주인들(山主)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은 자연의 공개념(公槪念)을 실현하면 소유권이 소멸되거나 삭감되는가.
괜한 일로 편치 않게 된 기분이 직선거리 500여m에 불과한 개인 농장의 짧은 농로지만 자유롭게 걷는 잠시
동안에 평정심을 회복했는데, FC 알베르까 구장(Estadio FC Alverca/soccer field)의 일조가 있었다.
높은 조명탑들이 멀리에서도 경기장임을 짐작하게 했으나 알베르까 풋볼 클럽(Football Club)의 전용구징
임은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까미노 마크를 따라 구장 앞에 당도하여 비로소 알았다.
한여름 더위도 아랑곳 없이 파란 경기장을 휘젓고 있는 젊은이들이 활력소가 되는 의외의 일이 발생한 것.
봉사정신의 실천과 소방관의 소명
의외의 일은 계속되었다.
까미노를 임의 이탈하고 있으니.
서북쪽 500m쯤의 N10 도로변에 위치한 소방서(Bombeiros Voluntários de Alverca/Volunteer firefig
hters)의 인력(引力)에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지자체(VFX) 내의 모든 소방서가 뻬레그리노스에게 '봉사의 방'(dormitorio de serviço) 제공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알고 있는 내게 인력이 작동했다면 이상한(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나' 라는 기대감이 역동적이게 했는지 단숨에 소방서 앞마당에 당도했다.
그러나 20대로 보이는 젊은 봄베이루들이 무언가를 하거나 휴식을 즐기고 있는 듯 여기 저기 있지만 아무도
늙은 뻬레그리노에게 눈을 주지 않았다.
'역시나' 알려진 대로 까미노와 뻬레그리노스는 그들에게 관심권 밖의 존재인 듯.
한여름의 석양인데도 누구와도 말 븥여볼 염이 나지 않아 맥 없이 돌아섰을 만큼 차갑고 어색한 분위기였다.
소방관은 일부 지역에서 숙박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봉사정신의 실천이지 소방관의 소명은 아니다.
(Os Bombeiros oferecem, algunas localidades, alojamento.
Não é essa a vocação dos Bombeiros, mas fazem-no num espírito de serviço."
(Firefighters offer accommodation in some locations.
This is not the vocation of Firefighters, but they do it in a spirit of service.)
위 글은 보름 전(2015년 6월 19일) 밤에 지자체 올리베이라 지 아제메이스(Oliveira de Azemeis/Distrito
de Aveiro)의 자원봉사소방서(Bombeiros Voluntários)에서 한 소방관이 내게 준 책자 안에 있는 글이다.
그날 밤 나는 소방서가 제공하는 도르미또리우 지 세르비수(dormitorio de serviço/봉사의방)에서 최초로
1박했는데, 참으로 귀중한 체험의 시작이었다.
소방관에게는 순례자를 맞을(歡待할) 의무가 없으며 따라서 순례자가 여의치 않을 경우를 깨닫고(攄得하고)
타개하는 것은 전적으로 순례자 자신의 몫이라고 봄베이루스 측은 천명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오로지 고마울 뿐인 이 축적된 체험이 역시나로 끝난 봄베이루스 방문임에도 전혀 개의되지
않았고 도로( N10)변에 자리한 공원(Park/Jardim José Alvaro Vidal)에서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었다.
휴식하는 공원에서 마주친 까미노와 파띠마의 웨이마크에 괴이쩍은 생각이 들기는 하였으나 1km정도 되는
알베르까 역 까지의 길도 나를 경쾌하게 했다.
N10 도로에서 까미노(Portugues)로 회귀하지 않고 남동으로 분기하는 N10 -7(Av. Infante Dom Pedro)
도로를 따르다가 로터리 직전의 FC 알베르까 구장 앞에서 헤어졌던 까미노와 재회했다.
이후, 로터리를 직진(남서진)하여 노영 장소로 점찍은 알베르까 역사(驛舍)에 당도헸다.
맞닥뜨린 실물(Alverca驛舍)은 레일(rail)을 건너가는 육교(viaducto/overpass)처럼 보인 사진 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공간 활용도를 높인(多用途) 건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글을 쓰는 2026년 8월에 Google Map을 통해서 본 '알베르까 역사'는 레일 위에 지어진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유리집으로 개조되어 있다)
출입이 24시간 자유로운데다 노영(露營/ bivouac) 공간이 충분하여 내게 안성맞춤이라 할까.
동해 울릉도의 고지대 주민들을 위한 시설(고층 엘리베이터에 연결한 고공 수평복도)과 일본 시코쿠 헨로의
편의시설들을 노영 공간으로 활용한 체험들이 보탬이 되고 있으니까.
고진감래
까미노에서 하루의 걷기를 마친 후에는 그 날 거리의 10% ~ 20%정도를 까미노와 무관한 현지 답사에 투자
하는 내 일상의 룰(rule)을 노영하는 날만은 생략할 수 밖에 없다.
생략의 이유는, 어이없게도 선진문화사회라는 이 땅(europe)에서 도둑 때문이다.
내 소유물이라도 내 몸 밖에 있으면 내 것이 아니라고 이구 동성으로 주의를 환기시킬 만큼 도둑이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초저녁이 되어가는 시간대에 밤을 의탁할만한 지점만 확인한 후 백팩을 맨채 역사를 나왔다.
역사 지근에 위치한 항공박물관은 이미 문이 잠겨버렸으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은가.
저녁 먹거리가 필요하므로, 유일하게 남은 일이 마켓(Mercadona)에 가는 것이었다.
남으로 하행할 수록 더욱 심해 가고 있는 더위 때문에 먹거리를 예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백팩이 늘 가난하고, 따라서 수시로 마켓을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잦을 수 밖에 없는 등 뻬레
그리노스의 여건이 매우 나쁜 상태다.
이 백팩을 맨체 걷기를 연장하는 것은 무리의 가중인데 봄베이루스를 방문한 것으로 가늠함으로서 생략을 피
함은 물론, 완성도를 높인 결과가 되어 다행인 밤.
마감(close)을 서두르고 있는 메르까도나(supermarket)에서 저녁 먹거리에 차가운 맥주(Super Bock) 2병
을 더 구입하여 돌아온 역 안은 아직도(21시) 오가는 사람이 끊기지 않은 듯 했다.
새벽~자정 직전까지 운행(05.32~23.53)하는 듯 한 열차의 착발 시간을 확인한 후 항공박물관 쪽으로 갔다.
어차피 잠 못이루는 밤이므로 철조망 펜스(fence)를 통해서라도 박물관 안을 들여다 보며 식사를 할 요량이
었으나 주변 여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역사 옆 쉼터(소공원?)로 나왔다.
열차가 매 시간 왕복하는 듯 간헐적으로 적막을 깨는 것 외에는 석양의 소란스러웠던 분위기와 달리 잠자는
듯 고요한 휴식 공간의 벤치로.
이미 많이 늦었지만, 남은 유일한 과제인 저녁 식사를 하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식사는 물론, 비오는 밤이 아니면 잠자리로도 흡족한 벤치.
부실한 식사에 휴식 시간도 제대로 갖지 않고 온종일 걷기만 한 날이었다.
일과(걷기)를 마친 후의 저녁 식사마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늦게( 밤 10시를 넘겨) 했다.
햄버거 하나로는 부족할 듯 하여 바게트와 구은 소고기, 야채샐러드 등을 듬뿍 산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잖은가.
많이 먹고 많이 마시게 될 수 밖에.
변덕이 많은 대서양변의 날씨가 잠자리로 야외 벤지와 실내(驛舍內) 중 후자를 택하게 했다.
아게다(Agueda)의 심야 소동(續까미노이야기 49 -1번 글 참조)이 훈수를 들었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올라간 역사의 2층 바닥에서는 번거로운 텐트 대신 통비닐을 택했다.
비로소, 비닐 속에서도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실감하며 오카리나를 꺼내고 싶은 충동을 눌러야 했다.
어매이징 그레이스를 콧노래로만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몹시 안타까운 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