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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과 함께하는 두번쨰 산신,용왕 보병 공양을 마치고(10월 11일 ~ 13일)
언제부터인가 큰스님과 함께 방생 공양, 보병 공양을 다니면서 그때그때 기행문 형식으로 기록을 남겨 놓으면 수 십년, 수 백년 후에 누군가가 지엄 큰스님의 행적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생기고 또 짧게는 몇 년 후, 아니면 몇 십년 후 지금의 도반 또는 가족들과 함께 옛 기억을 더듬으며 이번에 갔던 그 발자취로 보병 공양이 아닌 조그마한 공양물이라도 준비해 옛 추억을 더듬으면 좋을 것 같아 그런 차원에서 이 기행문을 기록해 봅니다.
지난 10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의 1차 보병 공양을 마치고 바로 곡괭이를 쿠팡을 통해 주문했다. 1차 보병 공양 때 도혜 거사님과 땅을 파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하게 느꼈던 것이 바로 곡괭이 였기 때문이다. 주문 다음날 곡괭이를 받자마자 삽과 함께 차 트렁크에 보관했다. 혹시나 당일 아침 서두르다 보면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양물이나 숙소등은 함께 동행할 보살님들이 준비 해줄거지만 땅을 파고 보병을 묻는 일은 오직 내 몫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이번 여정에 있어서 삽과 곡괭이는 나의 관점으로 볼 때 공양물보다 더 중요한 공양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0월 6일 밤 큰스님으로부터 카톡으로 일정표를 받고, 함께 동행하기로 한 정진행, 수혜 보살님을 단톡방으로 초대하여 큰스님이 보내주신 일정표를 공유하였다. 그리고 9일날이 되어서야 최종적으로 복선행 보살님이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어제 만들어 놓은 단톡방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복선행 보살님은 회공때나 조상 기도 올릴 때 가끔씩 눈인사나 나눈 정도였고 항상 묵직하고 조용한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다 싶었다.
10월 10일(일요일), 출반 전날 사시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법당에 도착하니 큰스님과 수혜 보살님과 몇몇 보살님은 방생을 위해 바로 출발하시고 이번 보병 공양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은 5층 법당 앞에 준비해 주셨다. 큰 보병 80개, 작은 보병 20여개 그리고 식자, 초, 회공책 등 준비물을 사시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절에 온 도혜 거사님의 도움을 받아 차에 적재하니 이미 트렁크의 2/3를 차지한다. 내일 새벽 출발 전에 수혜 보살님이 준비한 공양물까지 합치면 어떻게 다 들어갈지 모르겠다. 하여튼 낼 일은 낼 걱정할 것이고, 사시 예불, 불교 대학까지 마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큰 스님께서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미리 하루 밤 머무르시기로 한 것이다. 내일 아침 미륵정사에서 출발할 경우, 최소한 새벽 2시에는 일어나 김밥 등을 준비하고 4시쯤 법당을 향해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다행히도 우리 집에 미리 오셔서 주무신다고 하니 큰스님의 이러한 배려에 너무 감사드릴 뿐이다.
10월 11일, 드디어 2차 보병 공양 시작하는 첫날이다. 3시 반이 되니 시계 알람이 울린다. 혹시큰스님이 깨실까봐 조심조심 정진행은 김밥을 준비하고 난 조용히 새벽 예불을 올렸다. 예불이 끝났는대도 정진행은 아직도 김밥을 싸고 있다. 4시 30분이 넘어가는데 마무리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5시면 출발해야 하는데, 큰스님도 주무셨던 방에서 기도 중이신 것 같다. 시간 절약을 위해 정진행의 설것이를 돕고 5시에 맞추어 1층으로 내려가니 수혜 보살님이 도착해 있었다. 수혜 보살님이 준비한 공양물을 내 차에 옮겨 실고 있으니 바로 큰스님이 내려 오셨다. 정진행은 그 후로 10여분이 지난 5시 15분쯤 내려왔다. 드디어 첫 출발, 첫 보병 공양을 위해 이화령 휴게소(충북괴산)를 향했다. 이화령 휴게소를 향하는 도중 정진행이 준비한 김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려 했지만 새벽이고 또 차안에서 모두 먹기가 불편해서 조금만 먹고 나중에 다시 휴게소에서 먹기로 했다. 창 밖은 큰 비는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내렸고, 큰스님께서는 이 비가 내일까지는 계속 될 거라고 아예 선포를 하신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큰스님의 말씀이 틀리기를 바라는 이 마음을 여러분은 이해할 것이다.
이화령으로 올라가는 길은 거의 안개비와 어둠에 쌓인, 정말 혼자 가면 무서울 정도의 귀곡산장 분위기다. 이미 해가 뜰 시간인데도 어슴프레하고 주차장엔 검은 승용차 한대 뿐인데 사람은 없고 오히려 안개비가 장대비 수준으로 더 세차졌을 뿐이다. 이 상황에 보병 공양이 가능할까 싶다. 그런데 큰 스님께서 바로 등산로를 찾으시고 등산로 계단을 향해 올라 가신다. 나는 비옷만 걸치고 우산도 없이 삽 한 자루만 들고 큰스님을 뒤따랐다. 계단을 10여분 올라 갔을까 너무나 가파른 경사 때문인지 숨이 목까지 차 올라 왔는데, 바로 공양할 장소를 가리키신다. 몇 번 삽질을 하자마자 돌밭이다. 올라 올 때 곡괭이도 같이 가져 와야 했는데, 처음 생각이 착오였다. 이 빗속에 바로 보병 공양 장소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비가 와서 땅파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 등등. 땅 파기 작업이 시작되니 몇 번 삽질에 차라리 차에 내려가 곡괭이를 가지고 오는게 낳겠다는 판단이 선다. 큰스님께서는 이미 기도를 시작하셨고 다른 보살님들은 우산을 펴고 공양물을 준비하고 향을 피우신다. 난 어쩔 수 없이 그 빗속을 뚫고 뛰어 내려가 곡괭이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래도 내 판단이 빨랐다. 곡괭이의 효력은 매우 컸다. 곡괭이를 이용하니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기도가 끝나갈 무렵 큰스님께서 보병공양 기도를 끝내고 산신전 기도를 준비하라는 싸인을 보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혜 보살님도 이 보병 공양만 끝낼 것으로 생각했는지 기도집을 안 가져 오신 모양이다. 수혜 보살님이 다시 차로 기도집을 가지로 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는다. 빗속에서 그냥 기다리느니 급한 마음에 나는 또 차를 향한다. 중간쯤 내려 갔는데 수혜 보살님이 기도집을 가지고 오신다. 이제 첫 시작인데 아침부터 3번이나 주차장과 공양 등산로를 오르내리니 기진맥진이다. 어떻게 앞으로 3일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다행히 이렇게 첫번쨰 임무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이제야 비도 좀 그치는 것 같다. 아침 7시 조금 넘은 시각에 아무도 없는 이화령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 하나 밖으로 나와 구경하신 분이 없이 차 안에서만 감탄사를 연발할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첫번째 임무 완수를 만끽하며 정진행이 준비한 김밥과 된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준비된 김밥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두번째 목적지인 봉정사로 향했다. 봉정사는 안동 서후면천등산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께서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을 보유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사찰이기도 하다. 이화령에서 봉정사로 향하는 길의 창밖은 어느 작품 사진에서나 볼 듯한 그저 조용히 비가 내리는 그림속의 조용한 시골 느낌이다. 1시간 조금 넘게 달려 봉정사에 도착할 무렵, 우리 보살님들의 정신을 반짝 들게 한 멋진 건물이 보인다. 시에스타(안동 봉정길 5), 시골의 한적한 풍경과 너무도 동떨어진 고급스런 느낌이다. 그리고 이름만큼이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커피 전문점(까페)은 큰스님의 마음과 보살님들의 마음을 서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기찻길과 같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진한 커피향을 만끽하고자 하는 보살님 마음, 오늘 하루 마쳐야 할 공양을 생각하면 1분 1초도 아까워 하시는 큰스님의 마음, 일단 보병 공양을 마치고 들리기로 하고 커피 전문점을 지나쳤다. 곧바로 봉정사에 도착하니 비는 멈추지 않고 산사의 주변에서는 어느 누구도 마주칠 수 없었다. 큰스님께서는 바로 봉정사의 대웅전을 지나 절 뒤편으로 가시고 좋은 장소를 선택해 주셨다. 보병 공양을 마치고 우리는 대웅전에서 삼배를 올리고 바로 주왕산을 향했다. 봉정사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유명 사찰임에도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실 어느 누구도 사진 찍을 여유도 없었고 비 때문에 빨리 차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커피 전문점을 기약하며.
주왕산(슬로시티팬션)을 향하는 중 돌아오면서 마시기로 한 커피 전문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멋진 까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찌된 것일까? 알고 보니 주왕산 전망대는 봉정사에서 출반한 반대 방향의 길이었던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비오는 아침, 한적한 시골에서 최고로 멋진 카페에서 진한 커피향을 만찍하는 모닝커피의 여유로움을, 그런데 아쉽게도 시에스타는 주왕산에 도착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복선행 보살님, 수혜 보살님은 이런 안타까움과 불만을 표현도 못한채, 그저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 시골 커피점은 유통이 잘 안되니 커피를 볶은지 한 달이 넘는 콩을 사용해서 맛이 없다는 큰스님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것인지, 수혜 보살님께서 복선행 보살님께 장기 자랑을 요청한다. 수혜보살님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재능을 이끌어 내는 재주를 가지셨나 보다. 난 복선행 보살님이 이렇게 성대모사에 장기가 있는지 몰랐다. 특히 OO보살님에 대한 성대 모사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뒤돌아 보지 않았다면 그분의 아바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듯한 느낌의 완벽함이다. 성대모사와 진한 커피향을 가슴에 뭍고 주왕산에 도착하니 네비게이션이 이상하다. 목적지 7~8km를 앞에 두고 갑자기 길을 찾지 못한다. 다른 곳으로 벗어났으면 바로 수정해서 다시 길을 찾는데 이곳에서는 몇 분이 지나도 먹통이다. 큰스님께서 바로 알아 차리시고 슬로시티팬션으로 목적지를 변경해 주신다. 그러자 바로 목적지가 3km로 바뀐다. 슬로시티 팬션을 지나 몇 분을 더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 주차 후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시고 큰스님은 바로 산속으로 향하신다. 이미 이화령, 봉정사의 경험을 한 우리들은 벌써 분업화된 모습으로 연장조(응공), 스님 우산, 비옷, 법문집(정진행), 공양물(복선행, 수혜) 3개조로 나누어 스님 뒤를 따른다. 빗속에서 주변 인적이 없는 곳이라 바로 좋은 장소를 선택하고 공양을 마치고 차에 탑승하니 이제 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차 내부 씨트는 진흙으로 범벅이고 바지가 진흙탕이 되어 내가 나를 봐도 못봐주겠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주왕산 보병 공양을 마치고 가까이에 있는 대전사로 향했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그래서인지 주차장이 본절과 떨어진 곳에 있고 많은 관광객이 오는지 꽤 넓다. 절쪽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젊은 주차 관리인이 대전사 스님들과 약속이 되어 있지 않다면 들여 보내주지 못한단다. 그럼에도 우린 큰스님의 백을 믿으며 밀어 붙였다. 주차장 관리하시는 분은 그럼 알아서 하라는 듯이 통과시켜 준다. 대전사 주차장에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인데도 공휴일이어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다. 우리는 대전사 경내로 들어 가면서 왜 차를 들여 보내 주지 않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대전사로 통하는 길이 주변의 상가, 그리고 관광객으로 인해 협소했다. 그래도 이미 출발한 길인데 후진하기도 어려웠다. 정문에 도착하니 또 한번의 난관이 기다린다. 정문 관리하신분이 어떻게 차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냐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런데 큰스님이 내리는 순간 수호천사가 나타나신다. 마침 그 시각, 대전사의 한 스님이 앞에 계시더니 큰스님이 방문하셨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절 내부의 체인 열쇄를 내려주시면서 입구에 있는 스님들 거쳐하는 법당 앞으로 주차하라고 인도해 주신다. 그럼에도 섭섭한 점은 사찰 입장료는 스님만 무료고 같이 동행한 우리들은 표를 구매해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배려가 잦으면 권리로 착각한다는 말이 기억난다. 우리 일행은 대웅전에 참배하고 드디어 처음으로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그리고 대웅전을 나오려는 순간 어느 비구니 스님께서 사탕을 주시면 어디서 왔냐고 여줍는다. 복선행 보살님이 서울서 왔다고 하자 “그럼 큰 부자 절에서 오셨겠네요” 하고 부러워 하신다. 우린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예~, 예~. 이 자신없는 대답은 뭔지, 빨리 우리 절도 부자 절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와락…., 나만 그런건가?? 대전사를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차를 가지고 들어간 덕분에 최소 1시간 이상을 절약한 것 같다. 대전사에서 나와 우린 바로 점심 공양할 장소를 물색했다. 대전사를 출발한지 얼마 되지않아 분위기가 깨끗한 한 식당에 들어갔다 . 송이가든(주왕산면 주왕산로 504), 송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으로 송이버섯 전골과 공기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그렇게 송이향이 진하고 맛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맛있는 건 이건 복선행 보살님이 보시하겠다고 하니 더 맛있을 수가 없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4번째 보병 공양 장소인 구미의 도리사로 향한다. 도리사는 신라19대 눌지왕(417년)때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웠다는 해동 불교의 발상지이며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중의 하나라고 큰스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정말 우리 도반들도 꼭 한번 가보시길 권해 드린다. 이렇게 큰 사찰이니 만큼 비오는 날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이 조금씩 보인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이분들이 보이시지 않으신지 주차장에 주차하자마자 장소를 물색하신다. 그런데 그 장소가 바로 문화해설사가 대기하는 장소의 바로 뒤편이고, 주차장에서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아마 산사 음악회등으로 사용하는 넓은 장소인데 주변에 벤치가 나란히 깔려 있다. 그럼에도 큰스님이 지정한 장소이니 삽질을 할 수밖에 없다. 한참 땅을 파는데 공양물을 준비하던 수혜 보살님이 빗속에 넘어 지셨다. 많이 다치지 않아야 할텐데, 다치셨어도 큰스님이나 여러 보살님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신다. 보병 공양을 완수하고 도리사를 관람했다. 도리사의 풍광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우리 도반들께는 꼭 한번쯤 방문하시길 권해 드린다. 그리고 별도의 카페에 올린 사진 참조 하시길 바란다. 복선행 보살님께서 천진 동자상과 함께 찍은 사진은 꼭 핸드폰 초기 바탕하면에 사용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지 모르겠다. 그리고 조금 전에 다치셨던 수혜 보살님은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셨는데 내색을 안하시니 좀 어떤지 모르겠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리사에서 나와 구미의 법성사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강 위를 건너는 다리 위에서 큰스님께서 여기서 보병 공양을 하시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다리 위에서는 주차를 할 수 없어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차를 세웠다. 확인해 보니 낙동강 다리 중의 하나인 숭선교 이다. 밖은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이슬비로 바꼈다. 보살님들은 차에 있기로 하고 내가 다리 중간쯤 가서 보병 공양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간단히 다섯번째 공양을 마치고 구미 금오산으로 향했다.
6번째 공양 장소는 금오산(법성사) 부근에서 차로 가능한 가장 높은 부분으로 향했다. 법성사를 지나 도로상의 가장 정상부분까지 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오늘은 참 이상하다. 운전중에는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보병 공양이 시작되면 비가 세차 진다. 이제 누가 뭘 어떻게 하라고 협의 할 필요도 없다. 각자 맡은 업무를 착착 진행하다 보니 큰스님 가시는 발 뒤꿈치만 보고 따른다. 바로 보병 공양을 마치고 나니 벌써 어둑어둑 해진다.
금오산 보병 공양을 마치고 나니 약간의 긴장이 풀린다. 이렇게 빗속에서 오늘 계획된 보병 공양은 잘 마무리 한 것 같다. 이제 저녁식사와 원성해 보살님이 예약해준 호텔에서의 회공만 마무리 하면 된다. 먼저 원성해 보살님이 소개해준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금호산 모텔이 보인다. 그런데 원성해 보살님이 주신 호텔의 주소와 비슷하다. 차마 보살님이 모텔을 소개해줄 리는 없겠고, 일단 식사를 마치고 와서 볼일이다. 식당 주차장에 도착 후 큰스님과 보살님들은 먼저 내리고 나는 주차 후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 식당은 돌솥밥이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 왔는데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전화로 주말은 안 된다고 확인은 했지만 그래도 한번 가 보자는 수혜보살님이 제안에 여기까지 왔는데 역시나 안되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방으로 들어 갈 수 없다는 눈치다. 내 바지가 진흙 덩어리로 공사판 노동자의 몰골 떄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래도 5명의 손님이 왔는데 들여보낼 생각을 하지않고 다른 트집 아닌 트집만 잡는다. 큰스님께서 바로 나가자고 하신다. 오는 도중 봐 두었던 쌈밥집으로 향했다. 쌈밥집 도착 후 식당 사장님의 무언의 압력에 의해 차 트렁크에서 준비해간 새 바지로 갈아입고 들어갔다. 큰스님께서 얼마나 배가 고프신지 이미 야채로 배를 채우고 계셨다. 특히 당귀 향이 참 좋다. 우린 두번이나 야채를 리필할 정도로 맛있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기대(호텔) 반, 걱정(모텔) 반으로. 그런데 바로 알아 차렸다. 원성해 보살님의 큰 스님에 대한 사랑을, 모든 것이 안성맞춤이다. 비오는 날, 손님도 많지 않고, 깨끗한 호텔에서, 더구나 호텔 창문에 약간의 턱이 있어 비도 들치지 않고 초연공까지 할 수 있는 호텔이었다. 이렇게 7번쨰 회공까지 마치고 파워까지 끝내니 10시가 다 되어간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회공 중간에 졸립기도 했지만 이렇게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호텔도 예약해 주시고 비용까지 모두 해결해 주셨다고 하니 원성해 보살님께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원성해 보살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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