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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화천 서오지리의 산판에서 여름 내내 가을까지 산판의 일을 하던 다섯 사람들이 겨울이 되면서 일감이 없게 되자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임시로 있을 숙소를 찾다가 가라메기 마을에 철수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였다,
철수 아버지와는 각별한 사이의 조장인 윤성태의 부탁이라 전에도 그렇게 한 적이 있어서 그날부터 집에 와서 사랑방에 묵게 하였다.
그들이 한데 몰려다니는 것은 일이 없을 때를 이용하여 돈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투전판을 벌려 해마다 재미를 톡톡이 보기 때문이다.
그때 철수 아버지는 농사를 짓는다고 하였지만 가지고 있는 땅을 다 합치면 논이 열마지기고 밭은 모래밭 하루거리가 그 집의 재산이었다.
철수 아버지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라 평소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불철주야 일을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청년이란 소릴 듣기도 하였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겨울이면 대동제를 열기 위해서 집집마다 쌀을 걷어 떡을 하고 쇠머리를 삶아서 국을 끓이고 거리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안팎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나누워 먹었다.
대동제를 기하여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윤성태를 아는 사람도 있어 함께 놀다가 투전판에 휩쓸리게 되니 돈이 있는 사람은 밤을 새우다가 밑천도 뽑지 못하고 빈손만 털고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 다섯 인부 중에 키가 작고 곱술 머리에다 얼굴은 하회탈의 합죽이처럼 생긴 조장 윤성태를 처음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생김새를 보면서 속으로 희한하게도 생겼구먼. 하고는 후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동제에 참석한 사람들도 그를 처음 대하고는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았는데 이구동성으로하는 말이 이상하게도 생겼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였는데 그 사람을 자주 대하고 나면서부터는 그의 대한 선입견은 차츰 잊게 되었다.
그는 원래 술을 좋아하고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곳곳에 친구들이 많았으며 그에게 친구들이 모여드는 것은 어려울 때에 그들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는 산판에 다니지 않을 때도 한 달이면 한 열흘 정도는 집보다는 다른 곳에서 날을 보낼 정도로 객지가 그의 집이고 그의 집이 객지라고 할만치 나돌아 다니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런 성격과 비슷한 이 마을의 대서방을 하는 정 조준을 알게 되면서부터 서로만나기만 하면 술집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조준이 친하게 지나는 여자 친구인 이점례도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정 조준은 이날 막걸리를 세주전자나 마시면서 술이 얼큰해지자 할 말 못할 말을 마구 쏟아내는 중에 어떤 여자애하고 여러 번이나 같이 술을 마시다가 나중에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면서 큰 소리를 쳤다.
그 소릴 듣게 된 점례는 그 여자애가 누구냐고 자세히 말을 하라고 하자 정 조준은 가만히 있더니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이 말을 하였다.
“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상세히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여.”
그 소리를 들은 점례는 그날은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지만 도무지 그가 한 말이 신경을 쓰게 하였다.
그래서 다음에 만나게 되면 철저하게 따져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드디어 여럿이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에 점례는 정 조준의 뒷덜미를 잡고 궁금했던 말을 하였다.
“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젠가 말하던 그 여자애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싶어.”
“ 여자하면 하도 많아서 누구에 대한 말을 하지.”
정 조준이 무의식중에 뱉은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 소리를 들은 점례는 너무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
" 어떤 여자라니 ? 그렇다면 지금 사귀는 여자애가 여러 명이나 있다는 말이야. “
“ 넌 뭘 그런 걸 따져 묻냐.”
“ 뭐야.”
점례가 도전태세로 달려들자 정 조준은 한발 물러서는 것 같았다.
“ 난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왜 자꾸만 곤란하게 하지?”
“ 아무 잘못도 없다구.”
“ 그래 정말이야.”
“ 가만히 생각을 해보라구. 진실을 말한다면 엊그제 나에게 들려준 말은 충격적이었거든.”
“ 충격적이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데.”
“ 솔직하게 말을 한다면 여자애에 대해서 깊은 얘기는 할 수가 없다고 했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구.”
정 조준은 점례가 끈질기게 다그치자 잠시 눈을 감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 이제 생각이 어렴풋이 나긴 하는데 사실을 말한다면 그 여자애와는 천상의 견우와 직녀 같은 사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그런 사이가 되고 말았어야.”
그 소리에 점례는 직감적으로 그 애와 깊은 관계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언제부터 가까웠는데.”
“그러니까 점례를 알고 난 이후 어느 날 저녁에 다방엘 갔다가 친구가 소개를 한 여인에게 첫눈에 반하여 저녁을 함께 먹은 것이 계기가 되고 그 후에 몇 번 만났어. “
“세상에 나 모르게 그런 애를 만났다니 참.”
“ 왜 그런 관계를 묻는 거야. 유치하게.”
그 한마디에 점례의 감정은 있는 대로 부글부글하였으니 그 녀와의 관계가 견우와 직녀라는 말을 한데다가 그 녀가 혹시 박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애자와 점례는 이웃집에서 자라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 중에도 서로의 비밀을 다 털어놓을 정도로 둘은 어디를 가나 서로 엉킬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다.
그런 사이의 애자와 어느 날 저녁 때 물결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가를 거닐다가 샘물가에서 표주박으로 물을 떠서 마시는데 애자가 이상한 질문을 하였다.
“ 점례야. 벌써부터 너를 만나게 되면 한 가지 물어보아야지 했는데 오늘 잘 만났다. 대답 좀 해 줄 수 있니.”
“ 네가 말을 하는데 대답을 하지 못할 게 뭐냐 .”
“아무 말이라도 괜찮다는 말이지 그래. 그러고 보니 역시 너는 내 편이야.” “ 사실은 말이야. 나 지금 어떤 남자를 무척 좋아하고 있거든. 솔직히 말하면 결혼까지 끌고 갈 참인데 글쎄 요즘 와서 보니 이 남자에게 또 다른 계집애가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단 말이야. 난 지금 그를 내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데…. 그렇게 된 사연을 말한다면 학교를 다닐 때의 여름방학이었지. 그가 갑자기 나타나 날씨도 무더우니 시원한 바다로 해수욕을 가자는 거였어. 바닷가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는 그 말에 혹하여 따라나섰지 뭐냐. 그런데 대관령엘 올라서서 저 멀리 동해바다를 바라다보게 되니 와! 소리가 저절로 나고 가슴이 확 트이는가 하면 그동안에 너무 좁은 세상 속에 갇혀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런 기분이었으니 그날 나를 데리고 간 그 남자가 너무도 듬직해 보이고 그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나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구. 일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강릉의 경포대라는 곳을 갔을 때는 작은 야산에 높다랗게 지어놓은 정자가 관동팔경의 하나인 경포대라 하더라구.
누구나 강릉엘 오게 되면 한번쯤은 경포대의 아름다운 경관 속에 푹 파묻히게 된다는 거였어. 그날 경포대 난간에 앉아서 경포 호를 바라보면서 왜 진작 한번 와 보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더라니까. 더구나 맥주를 몇 잔 먹어서 그런지 기분은 하늘로 올라갈 것 같기도 하여 그를 꽉 끌어안았지 뭐냐. 그러자 그는 한술 더 떠서 나를 끌어안고는 키스를 하더라니까. 내 생전 처음으로 첫 키스를 당하여 순간 그를 밀치려고 하였는데 저 쪽에서 ”무슨 짓들이야. “ 하는 큰 소리에 깜짝 놀라서 둘은 허겁지겁 경포대를 내려 뛰었어. 그런데 그날 밤에 그는 나를 화분처럼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지 뭐냐. 생전 처음으로 남여의 신비 속으로 빠져들은 채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어. 이튿날이 되어서야 잠이 깬 상태에서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가볍게 몸을 버렸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자 그의 낯짝이 보기 싫더라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망가진 몸을 원상태로 복구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서 그를 미워하지 말자고 마음을 달래고 말았지. 바다에서 돌아온 후 나는 마음을 추수려 그를 아주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도장까지 찍으려 하였는데 내 참 ! 글쎄 근래에 와서 이 사람이 나 모르는 사이에 다른 여자를 사귀고 있다는 말이 들리는 것이여. 그래서 면상을 손가락으로 북 긋고 싶었지만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여. 그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너에게 물어보면 혹시 짐작을 할 것 같아서 만나려던 참이었지.”
“ 왜 내가 그 사이에 끼어야 되는데.”
“ 아니 그게 아니라 너는 그 또래 중에서는 인기가 많으니까 그런데 대해서는 나보다 한수 위 일 것 같아 서지.”
‘ 얘가 무슨 소리를 짓거리고 있는 것이여.’
“ 내 얘기를 더 들어봐. 그의 말을 들어보면 술을 먹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남자란 여자 하나 가지고는 만족을 할 수가 없다는 말까지 하였으니 정말 남자란 그런 것인지 마음이 몹시 상하는 거야. 이제 말이지만 남자라는 사람 정말 믿지 못할 존재인 것 같은데 네가 내 입장이 된다면 어떻겠니.”
점례는 애자의 너무도 황당한 것 같은 말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랐는데 그 동안에 애자는 지금까지 남자 친구가 있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여자라는 게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더구나 남자를 사귀는 문제만 해도 같은 친구라도 좀처럼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자칫 발설을 했다가 그것이 다른 친구들에게 이상한 소문으로 번질 우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례가 생각해 보니 그가 말하는 내용의 골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낯간지러운 말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어 정말 듣기가 거북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자가 누구란 말인가. 경기도 그것도 가평의 북면 시골구석에서 자란 애자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점례보다도 더 시골티가 풀풀 나고 있어 몇 번 그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도시의 이모저모를 알게 하였다.
그런 후에도 별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연애하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할 정도가 되었으니 사람이란 그렇게 변화가 빠르단 말인가.
“ 애자야 너 그러고 보니 그전보다 많이 달라졌구나. 이참에 그 남자가 누구라는 것을 말해줄 수 없니.”
“ 점례야. 이제 말이지만 너를 알게 된 후에 나는 하루빨리 시골티를 벗어야한다는 각오를 하고 매일 새를 내는 암캐를 수캐가 따라나서듯 읍내 거리를 쏘다니면서 여자들의 세련미에 대해서 공부를 하였지 뭐냐. 그러는 과정에서 그 남자와 친하다고 하면 네가 놀랄 것 같아서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겠다.”
애자의 말을 들은 점례는 그의 달변에 놀라기도 하였지만 그 남자가 우리 주변 가까이 있다는 말에 더욱 의심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남자가 누구란 말인가. 혹시 정 조준이 아닐까.’
점례는 몇 명의 남자애의 이름을 열거해 보았는데 그 중에서 여자애들에게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을 대라고 한다면 매사에 꼼꼼하고 친구들과의 친목에 대해서 조준을 잘하는 정 조준을 들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솔직한 말로 점례는 정조준을 일찌감치 자기와 가장 가까운 친구로 아니 자기의 신랑감으로 점치고 있는 중이다.
정 조준 다음에 씩씩한 남자를 든다면 꺽다리 윤 정호로 걔는 키는 크지만 친구들의 심부름을 도맡아서 할 정도로 자상하다. 팔다리가 길어서 친구들의 무거운 짐 운반은 자기에게 맡겨달라지만 여자애들의 관심은 끌지 못한다.
세 번째로 여자들이 핸섬하다고 하는 당진에서 올라온 고자호는 약골이면서도 야외활동을 할 때에 자진해서 설거지를 맡아서 하지만 여자애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네 번째의 조호승은 키는 몽탁하고 못난이이긴 하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데 그에게는 단점이 한 가지 있으니 잠을 잘 때에 코를 곤다는 소문으로 그의 인기는 바닥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은 바로 정 조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는 말로는 평상시에 다른 여자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하였다.
점례는 정 조준 말고 다른 애들에 대해서 애자와의 관계를 아무리 좋게 엮어보려 해도 걔들은 하나같이 애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애자는 처음에 남자들과 같이 행동할 때에 보면 공연히 내외를 하는 척 하면서도 그들이 다가서려 하면 응치를 빼면서 나는 남자들이 무서워서 싫다면서 도망을 하였다.
그런 애자를 사랑할 만 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하루는 점례가 정 조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던 것이다.
“ 애자라는 애를 잘 알고 있지. 그렇지.”
아닌 밤중에 홍두께 격으로 일격을 가하자 정조준은 점례의 눈치를 잠시 살피더니 마지못해서 한마디를 하는데 딱 한번 하도 바다 구경을 시켜달라고 졸라서 같이 갔다가 당일로 돌아온 적은 있다고 말을 하였다.
정조준의 말을 들은 점례는 속으로 정조준이 애자를 만나고 있는 것이 맞는다고 느껴졌지만 증거가 없으니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남자란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종류의 탈을 쓰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점례가 학교 다닐 때에 언니네 옆집의 살고 있던 먼 친척아줌마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 아줌마의 집에서는 사흘도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늘상 들리는 소리는 화가 잔뜩 난 아줌마가 남편에게 하던 푸념이었다.
“ 남자가 그만큼 바람을 피웠으면 되었지 여기서 무얼 더 원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저렇게 자라는데 아빠의 체면도 살리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술통에 빠져 있으니 누가 그런 사람과 살림을 살아준대요. 나는 조금도 미련이 없으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남자가 되어서 여자 한 둘쯤 사귀는 것을 가지고 웬 말이 많으냐구요. 나 더 이상 그런 거지같은 꼴을 보고 싶지도 않고 그런 당신과 대면하고 싶지도 않으니 집을 나갈 테면 얼마든지 나가라구요.”
그 후에 이야기를 들으니 친척 아저씨는 홀연히 집을 나가서는 다시는 연락이 없다고 하였다.
점례는 자기와 정 조준이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어찌 될까를 생각하다가 그 아줌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남자가 여자 한둘쯤 사귀는 것이 보통이라는 생각이 남자들에게 팽배해 있다면 정 조준에게도 그런 생각으로 꽉 차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金 斗 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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