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낮의 기온이 덥다고는 하지만 어느덧 9월도 중순을 넘어 하순에 접어들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바야흐로 산행하기 좋은 계절
속절없이 나이가 들어 이제는 몸을 한 번 크게 움직이고 나면 여기저기 쑤시고 시큰거리는 게 예전 같지 않음을 실감하면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가을이 되니 또 설악산도 가고 싶고, 지리산도 가고 싶고, 단풍산행도 하고 싶고, 억새산행도 하고 싶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초여름 푸른 초원으로 변한 민둥산을 보고 여름이 지나기 전에 민둥산에 한 번 가봐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가지 못하고
민둥산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가고 있을 무렵, 우연히 '민둥산 억새축제'철이 되었음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날씨 좋은 날을 택하여 드디어 오늘 민둥산을 향해 출발한다
최근 수원을 벗어나 원거리? 산행을 떠나 본 지도 오래되어 오랜만에 배낭을 꾸려 차에 오르니 설렘마저 느껴진다
집에서 정선에 있는 민둥산까지는 207km에 약 2시간 30분 거리다(네비 기준)
아침 7시에 출발하여 민둥산 억새축제 행사장에 도착하니 10시쯤 되었다
화장실 다녀오고 산행 준비를 하다 오늘이 주말이 아닌 평일(금요일)이라고는 하나 등산객은 보이지 않고 억새축제 준비요원들 움직이는 모습만 보이는 게 이상하여
행사장 요원들께 '주차장이 이곳 말고 다른 곳에도 있는지'를 물으니
'등산만 하려면 길 건너 '증산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하는 게 편하다'라고 알려 주어 부랴부랴 증산초등학교로 이동하여 산행준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니 시간은 10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민둥산은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남면에 있는 높이 1,119m의 산이다
'민둥산'이라는 이름은 정상 주변에 나무가 없고 억새만 자라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민둥산 일대는 억새 군락지로 매년 민둥산 억새꽃 축제가 민둥산에서 개최된다
정상 주변에는 돌리내 지형이 발달하였다
증산초등학교 주차장
증산초등학교에서 시작하는 들머리
들머리는 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 길건너 편에 있다
민둥산 입구 조그만 목교를 건너면 등로 오른쪽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민둥산 등산코스
▶ 제1코스 : 증산초교 → 쉼터(50분) → 정상(40분) = 총 소요시간 1시간 30분 소요
▶ 제2코스 : 능전마을 → 발구덕(45분) → 정상(35분) = 총 소요시간 1시간 20분 소요
▶ 제3코스 : 삼내약수 → 갈림길(50분) → 정상(70분) = 총소요시간 2시간 소요
▶ 제4코스 : 화암약수 → 구슬동(10분) → 갈림길(150분) → 정상(70분) = 총 소요시간 3시간 50분 소요
초반 완만하던 등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급경사의 계단으로 변하고...
얼마동안 계단을 올라서면 다시 완만한 등로가 나온다
잠시 완만한 등로를 따라 걸으니 들머리에서 4백미터 지점에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가면 완경사 길로 정상까지 2.8km, 우측으로 가면 급경사 길로 정상까지 2.2km. 완경사 길로 가면 6백미터가 더 길다
우리는 거리가 더 짧은 급경사 길로 오른다
급경사 길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거리가 짧아서라기 보다는 나이가 들수록 부실해지는 무릎 보호를 위해서 하산할 때 완경사 길로 내려오기 위해서다
경사가 좀 심하긴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오르면 많이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
'나무가 없는 산'이라 해서 '민둥산'이라 이름 붙었다 하지만 민둥산에 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둥산은 정상 주변에 나무가 없고 억새만 자라고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정상 부근에 이르기 전까지는 울창한 나무와 온갖 야생화가 식생하는 곳이다
오늘은 아내와 둘이서 자차를 이용하여 왔기 때문에 시간에 쫒길 필요도 없다
천천히 천천히 사진놀이 하면서 오른다
풀입 끝에 이슬 이승훈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바람
풀잎 끝에 햇살 오오 풀잎 끝에
나 풀잎 끝에 당신 우린 모두
풀잎 끝에 있네 잠시 반짝이네
잠시 속에 해가 나고 바람 불고
이슬 사라지고 그러나 풀잎 끝에
풀잎 끝에 한 세상이 빛나네
어느 세월에나 알리요?
들머리인 증산초등학교에서 민둥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2.6km이다(완경사 길로 가면 3km)
약 50여 분을 오르니 들머리에서 1.3km 지점인 임도에 도착한다
정상까지 딱 중간 지점인 이곳에는 음료를 파는 간이 매점도 있다
억새 축제기간을 제외한 평소에는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올 수 있어 이곳에 차를 주차해 두고 정상까지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나의 취향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억새축제가 시작되는 날인데 여기 주차된 차량은 뭐지???
임도길 밴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다시 정상으로...
임도에서 약 10여분 오르면 전망대(쉼터?)가 나오는데... 나무가 앞을 가리고 있어 전망대로 볼 수는 없고 그냥 쉼터로 봐야 할 것 같다
임도에서 약 20여분을 오르니 두 번째 전망대가 나온다. 들머리 기준 1시간 15분쯤 소요된 것 같다
전망대에 오르자 우측 전방에 정선의 두위봉(1470m)과 좌측으로 하이원리조트 뒤쪽의 백운산(1426m)이 보이고, 태백산도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 산행의 출발지점인 증산농공단지 뒤쪽으로 주목과 봄철 철쭉으로 많이 알려진 두위봉이 우뚝 솟아있다
언젠가 두위봉도 한 번 올라 봐야 할긴데...
두 번째 전망대에서 민둥산 정상까지는 6백여 미터
약간 당황스러운 풍경
정상부까지 왠 도로?
민둥산엔 정상부까지 임도가 나 있는 듯...
정상에 오르려면 임도를 지나 방책이 쳐져 있는 길로 올라 서면 된다
오늘 날씨 죽인다
하늘이 정말 이쁜 날이다
민둥산 산행의 절정은 정상이 바라보이는 억새밭 입구에서부터이다
파란 하늘과 뭉개구름
이런 날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별로 부담이 들지 않는다
대충 찍어도 기본은 되기 때문.^^
억새가 이제 막 피고 있어 은빛 억새는 아니지만 나는 이맘 때의 억새가 윤기가 있고 가을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쓸쓸하게 보이지 않아서 좋다
어쩌면 일부러 이맘 때를 맞춰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민둥산은 해발 고도가 1,119m로 1천미터를 넘는 산이지만 600~700미터 지점에서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산행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단 능선에 올라 서면 앞이 탁 트인 장쾌한 풍경을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등로변에는 벌개미취 꽃이 만발하였다
정상으로 오르다 뒤돌아 본 민둥산 남서쪽 조망
오늘부터 민둥산 억새꽃 축제기간이라고는 하지만 평일(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한산하다
아마도 주말인 내일이면 이 길도 이처럼 한가롭게 걷기는 힘들것이다
민둥산 억새꽃 축제기간 : 2023.09.22(금요일). ~ 11.05(일요일).
다시 지나온 길 뒤돌아 보면...
뭉게구름 최승호
나는 구름 숭배자가 아니다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구름 아래 방황하다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구름들의 변화 속에 뭉개졌으며
어머니는 먹구름을 이고 힘들게 걷는 동안 늙으셨다
흰 머리칼과 들국화 위에 내리던 서리
지난해보다 더 이마를 찌는 여름이 오고
뭉쳐졌다 흩어지는 업의 덩치와 무게를 알지 못한 채
나는 뭉게구름을 보며 걸어간다
보석으로 결정되지 않는 고통의 어느 변두리에서
올해도 이슬 머금은 꽃들이 피었다 진다
매미 울음이 뚝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이 오리라
정상을 배경으로 이런 사진도 찍어 보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민둥산이 핫 플레이스라고 한다
비교적 정상까지 오르기 쉬울 뿐 아니라 능선에 올라 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과 함께 여름에는 광활한 푸른 초원, 가을에는 분위기 있는 억새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 자체가 아름다워 프사를 찍기에 안성맞춤이란다
오늘은 지나치는 사람도 적어 한가로우니 우리도 맘껏 민둥산의 가을을 느끼며 추억속에 담아 본다
민둥산은 개인적으로 이번이 두 번째 오르게 되는데
첫 번째는 2005년 10월에 직장산악회를 따라 왔었다
그 때는 어떻게 올랐었는지...
그 때는 시기적으로 조금 늦게 왔었는지 억새가 메말라 억새 산행지라는 명성에 비해 조금은 황량하고 볼 것이 없었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기적으로 억새 절정기를 지나 온데다 인파에 떠밀려 다니느라 민둥산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음이리라
느낌 있는 산행을 하려면 역시나 한가로운 때 한가롭게 걸어보는게 답인 듯하다
누군가 민둥산을 작은 소백산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보니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느낌이 있는 것도 같다.ㅎ
완경사 길(오른쪽)과 급경사 길(왼쪽)이 만나는 지점
하산할 때는 오른쪽 완경사 길로 내려설 것이다
삼거리 지점에서 지나온 길 뒤돌아 본 풍경
민둥산 억새밭은 영남알프스나 황매산의 억새밭처럼 크게 광활하지는 않으나 아담하면서도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우러진 정돈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사진을 한 번 찍어 보고 싶었었다.
민둥산은 최근 백패킹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정상에 올라서서 올라온 길 뒤돌아 본 풍경
12:35 정상
안내도에는 정상까지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되어 있었는데 사진 찍으며 천천히 올라 왔더니 2시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