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지난 2017년 3월4일 천호성지에서 강의하신 형제님의 강의자료입니다
손글씨를 주신것인데요 제가 정리해보았습니다
(( 전문))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중요한 구절을 주님안에 머무르는
것에 대해 나누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누의 비유에서 “내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는 내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그러면서 선물도 주신다고 합니다.
너희가 내안에 머무르고, 내말이 너희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것이다.”
우리가 어떻게하면 예수님안에 꾸준히 머물를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날에 다시 그를 살릴것이다.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안에 머무르고,나도 그사람안에
머무른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것이다.”
공동번역성서표현이 더 Power가 넘칩니다.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것처럼,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것이다.” 우리 성서형제의 형제자매님들은 대다수 매일
성서를 영가고 삽니다.
왜냐하면 하루하루를 예수님께서 주신 힘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안에 머무르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몇 년전 미사중에 염하는
성체를 정말로 예수님의
실로 생각하는 신자들은 20%이하였다고 합니다.
성서형제회 형제 자매님들은 미사중에 염하는 성체를 정말로 예수님의 성체로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보시기 바랍니다. 50%가 넘습니다. 교우들은 한치의 의심도하지 않습니다. 성암브로시오,
오르게네스,치릴로
등등 어느 한분도 성서를 상징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1972년 미국의 운동선수들이 칠레에 친선경기를 가기위해 탄 비행기가
안데스산맥에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생존자 구조작업을 벌였던 칠레와 미국당국에서는 열흘동안 찾을수
없었으며
그토록 심하게 몰아치는 폭설과 눈사태속에서 살아있을 사람은 없다고 단정하고
구조수색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두달후 16명이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45명이었는데 병과 굶주림으로
죽고 생존자 16명은 동료들의 살을
비행기 잔해 파편 쇠조각으로 잘라서 먹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그런결정을 하던날 그들은
엄숙함과 침묵속에서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중에 죽었던 니코루치의 일기를 보면
“아버지 정말 믿기 어려운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죽은 친구의
살을 먹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중부상을 당해서 얼마남지 않아 죽게될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생명을 제공할수 있다면 더한 바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 호세의 고백입니다. 그는 고백성사를 신부님께 보았으며 그내용이 죄를 담은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신부님이 강론에 인용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시절 한 주일도 성당을 빠진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료어른들은
모두 다 저를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성당에 다녔지만 예수님안에
머물러 있은적이 없었습니다.
신자라는 이름만 갖고 있었지 참된 신앙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덮힌 안데스 산속에서 죽음과
싸우면서 비로소 제가 하느님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당에서 수도없이 성찬전례에 참석해서 성체와 성혈을 모셨지만 그 의미를 제 가슴속에
새겨본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산속에서 죽은 친구의 살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명이 무엇이며
십자가의 구원이 무엇인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중의 하나는 1번 “나는 믿나이다”입니다
내가 머리로 이해하기에 믿는 것이 아니고 내가 믿기에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번쨰 예수님안에 꾸준하게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성모님과 성요셉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중재자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의 중재자는 성모님과 성요셉이십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떄 성모님은 예수님께 “포도주가 다 떨어졌구나”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저희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떄가 오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어머니께서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꾼들은 아무런 군소리없이 예수님꼐서 말하신대로 물독에 물을 가져다가 가득 채웠습니다.
물독은 전부 6개였습니다. 6개의 물독을 가득 채려면 고지대에 위치한
가나에서는 산밑으로 내려가 우물에서 물을 떠서 다시 잔칫집까지 날라야 했습니다.
아마도 단 한번에 물을 6개의 물독에 가득 채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물을 다 채우자 예수님꼐서는 포도주를 원하는 과방장에게 물을 떠다 주라고
했습니다. 역시 일꾼들은 그대로 순명하면서 과방장에게 물을 떠나 주었습니다.
과방장이
맛을 본순간 가장 좋은 포도주로 변환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고단하고 지쳐있을때, 어려운일을
당했을떄, 물론 예수님께 청원기도를
드립니다. 하지만 성모님과 성요셉께
기도를 드리면 기도의 응답이 더 빨리옵니다.
예수님은 성모닝의 기도를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뉴질랜드로 이민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때
만난 친구집에 처음으로 놀러 갔을 때
저는 깜짝 놀란적이 있습니다. 일본식 건물에 정원 한 가운데 성모님 동굴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루드르의 성모님이었습니다. 그친구에게 나중에 물어 알았는데 친구어머니가
병으로 여러 번 생사의 걸림돌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햇으며
성모님을 특별히 사랑했던 친구어머니는 정원에 성모님동굴을 세웠고
방마다 성수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재수를 함께 했을
때 광주에 내려가는김에 친구의 세탁물을
친구집에 전달해주라는 부탁을 받고 집에 갔습니다. 당시 친구어머니를
처음으로
뵈었는데 그렇게 얼굴이
편안스럽고 온유하고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성모님을
집에 모시고 살며서 얼굴이 성모님을 닮아간 것을 느끼게됩니다
주로 봉쇄수도원에서는 성요셉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계십니다.
제가 아는 봉쇄수녀원 수녀님은 성요셉아버지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기억납니다.
성모닝을 특별히 사랑하셨던 성인중에서 콜베신부님을
소개합니다
몇 년전 일본나가사끼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려서 참석을 하게되었는데 가기전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대구교구수녀님께서 나가사끼에 상주를 하고 계셨습니다. 나가사끼를
예전부터
가고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시절 방황을 하고있을떄 저를 붙잡아준 책이
다까시
선생님의 책 “영원한 것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의 흔적을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수녀님의 가이드로 나까이 다까시선생님의 집이었던 “여기당”과 콜베신부님이
사셨던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콜베신부님은 주님을 굳게 믿고 성모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기 위해서라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굳은 신념을
갖고
1930년 폴란드를 떠나 낯선 이국땅인 일본 나가사키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에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고, 일본어 역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단벌옷과 굳은 신념만을 갖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온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성모기사]라는 월간잡지를 발행하겠다고
결심한 후에 일에 착수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말 한마디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잡지를 만들어 거리에 무료로 나누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망상에 불과한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망상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수사 몇분과 함께 인쇄기
판매점을 찾아갔습니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상점에 들어서자,
주인과 점원들이
놀라는 한편 호기심 어린 얼굴로 모여들었습니다.
신부님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인쇄기를 사고 싶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 뜻을 알아차린 주인은 인쇄기 가격을 아라비아 숫자로
‘150원’이라고 쪽지를 써서 내밀었습니다.
그것을 본 신부님이 주머니를 홀딱 뒤집어 보이며, 두손을 합장하고머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인쇄기 판매점 주인은 돈이 없다는 뜻도
알아듣고 인쇄기를 희사하라는 뜻인지도 알았지만,
외상도 안 되고 희사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그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어,
그저 합장만 하고 절만
꾸벅꾸벅 하였습니다. 안된다고 손만 내젓던 주인은 당황스러기도 하고
그 외국인이 하는 모양이 하도 안타까워
점원애개 인쇄기를 운반해 주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한 시간 만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그 인쇄기 값을 치르고는
'그 외국인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쇄기기가 생겼으나 인쇄기
대금을 대신 지불한 사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나의 은사 신부님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러 번 캐물었지만 신부님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으셨습니다.
나는 이 나라 국민들은 남에게 은혜를 입으면 감사하는
것이 도리라고 여쭙고, 그 집을 찾아가
감사를 드리자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 책상 위에 모셔진 성모상을 애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인쇄기
값을 지불하신 분은 바로 이분입니다. 성모님의 집은 이 세상에는 없으니 그 집을
찾아가서 감사를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얼굴에는 고마움과 사랑,
기쁨과 즐거움의 물결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기순신부님의 글중에서)
예수님안에 머무르는것, 그것이 바로 현세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함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