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사적과 3.1운동 인물 - 기억해야 할 믿음의 선진들 (5)
총회사적 제25호인 춘화교회는 1897년 설립된 밀양 지역 최초의 교회로서 밀양 3.1운동의 거점이었습니다.
춘화교회는 일찍부터 민족 계몽과 선교를 위해 1905년 교회 내에 경신학교(남자 보통학교)와 일신학교(여자 보통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간 운영되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배출된 학생들이 독립 만세 시위의 중심이 되었으니 일제는 학교를 폐할 수는 있었지만 민족정신을 폐할 수는 없었습니다.
춘화교회 장로이자 경신학교 교장이었던 김래봉은 업무차 평양에 갔다가 만세 시위를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왔습니다. 그는 김응삼, 김성수, 김응진, 김영환 등의 교인들과 거사를 모의하고 부북면, 춘화면의 각 마을로 연락하여 주민 600여 명을 춘화교회로 모이게 했습니다. 4월 6일 시위대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징과 북과 나팔을 동원하여 각 마을로 행진하는 동시에 지역 거주 일본인들의 퇴거까지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청년 교인 김성수는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 배포하는 등 만세 시위를 실질적으로 주도했습니다. 출동한 일본 헌병들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되고 53명이 체포되었으나 김성수는 만주로 피신하여 의열단 단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장 김원봉의 작전참모, 김좌진 장군을 보좌하는 등의 일을 하고 주중일본공사 암살 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18년 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습니다.
- 3.1 운동 100주년 기념 주간 말씀묵상집,다섯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