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
최도휘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그꽃을 반려자처럼 일생을 함께하신 아버지 생각난다.
우람한 체구에 성격이 화끈한 남동생마져 아카시아가 꽃잎을 열면
"아부지, 보고 싶습니더." 소리 지르며 꺼이꺼이 울었다고 한다. 해마다 아카시아기 꽃잎을 열때면 나는 아카시아 군락지를 찾는다. 꿀 내음이 진동하는 아카시아꽃에 숨을 들이켠다. 꿀향보다 아버지 냄새가 먼저 스친다. 꽃잎 속에서 아버지 얼굴이 피어오른다. 눈물이 두 볼에 매달린다.
"에구, 우리 엄마 외할아버지 보고 싶은가 보다." 딸이 나의 팔을 살짝 잡고 기다린다. 직장 동료와 파크골프 끝내고 귀갓길이었다. 고령 어딘가 흐드러진 아카시아 터널을 지나며 몰던 차를 세우고 후다닥 내렸다.
"왜요. 차 멀미 나예?“ 따라온 친구가 눈물 젖은 내 모습을 보며 의하한 눈빛이다. 아까시아꽃이 지천으로 필 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 삶의 상당 부분이 거기에 있었기에.
아버지는 십구 세 늦게 초경한 어머니와 결혼하여 다음 해 입대했다. 금실 좋은 부모님은 슬하에 여섯 남매를 두었다. 위로는 언니와 오빠가 있고 나는 세번 째 세상빛을 보았다. 언니는 첫정이라 아버지가 엄청 예뻐했고, 오빠는 장남이라 오롯이 그쪽에 정을 쏟았다. 그들의 그늘에 가려 나는 있는 둥 없는 둥 서러운 딸이었다. 큰딸은 살림 밑천, 아들은 제사상을 차려주는 사람으로 인식했을 모양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깊이 밴 전형적인 아버지 상이었다.
인물은 육 남매 가운데 가장 못났지만, 착하다는 소리는 들었다. '아부지는 무섭다.' 하면서도 대화는 잘 통했다. 서른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차라리 도휘는 지하고 싶다 카는 공부, 4년제 대학 보냈으면 좋을 뻔했다."는 아버지 말씀에 원망스럽던 맘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보내달라 했을 때였다.
"여자가 마이 배우면 되바라져서 안 된다. 돈 벌어 시집이나 가거라." 아버지 앞에서는 감히 말도 못 붙이고, 공중전화로
"여자는 공부하면 왜 안 되느냐."고 펑펑 울면서 아버지께 대들었다. 안쓰러워하던 모습이 여태 눈에 밟힌다.
아버지는 농사일 보다 양봉에 매달린 시간이 많았다. 5월이면 꿀을 따고자 아카시아꽃 따라 벌통을 옮겼다. 치산·고령·군위·김천·지천·칠곡으로. 아카시아꽃이 풍성한 곳이면 어디든 떠난다. 으슥한 곳이지만, 깊숙한 산속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황이 좋아 꿀 풍년일 때 있고, 수확이 형편 없이 적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모습에서 꿀의 생산량을 점칠 수 있었다. 모습이 밝으면 내마음도 덩달아 기뻤다.
사춘기 일화다. 꿀을 뜨고난 뒤, 채집통 바닥에 있는 꿀을 바가지에 받아 놓았는데, 그속에 벌이 빠져 있었다.
"어, 벌에 꿀이 잔뜩 묻었네." 언니는 벌궁뎅이를 쪽 빨았다.
"아악." 금속성 비명을 질렀다.
잠시 뒤, 언니 입술은 꽈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키득키득 웃는 나를 향해 째려본다.
"손거울 갖고와 봐라."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은 가관이다. 자매는 눈물까지 흘리며 실컷 웃었다.
“명희 입수구리는 와 그렇노.”아버지가 걱정스레 살핀다.
“있잖아예...." 말문도 꺼내기 전,
“벌에 쏘였구나. 마~ 개안타, 조심하지."
“아까버서예.” 기어들어가는 언니의 대답에 아버지는 희미한 웃음을 흘린다.
사랑이 듬뿍 담긴 아버지 말씀을 여태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