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6일(일요일)
부산 유유자적여행클럽 회원들과 함께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진 가곡 "향수"의 노랫말을 쓰신
정지용 시인의 생가(生家)가 있는 충북 옥천으로 가을여행을 떠났다.
이번 옥천 여행에서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외에도 육영수 여사님의 생가도 함께 관람하였으며
근처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 전망대에서 본 한반도지형과 흡사한 모형을 구경하였고
아름다운 대청호반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장계관광지의 한적한 호숫가도 산책 하였다.....
그중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을 관람했던 내용을 간추려 담아본다
- 정지용 시인 생가와 정지용 문학관에서....
옥천의 자랑인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으나
개발이 되지않고 옛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영화촬영지를 이곳에 옮겨놓은듯 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정지용 시인의 "향수" 시비(詩碑)가 생가 입구에 비문처럼 새워져 있었다.
시비에 새겨진 향수를 입속으로 읊조리다 보니 까닭도 없이 왈칵 그리움이 복바쳐 오르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사무친다. 얼룩백이 황소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드는 기분도 들지만 그 누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대한 향수를 꿈엔들 잊을 손가?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시비의 뒷면에는 그 옛날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성큼 끄집어내게 한 시 한편이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들에 나가시니/궂은 날도/곱게 개이고/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들에 나가시니/가믄 날도/비가 오시네".... 이 얼마나 소박한 표현인가? 역시 옥천에 오길 잘한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정말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작은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가곡 "향수"를 흥얼거리게 된다
정지용 시인은 1902년 옥천군 하계리(지금은 죽향리)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랐다.
어린시절 근처 옥천보통학교(지금의 죽향초등학교)에 다녔으며(교정에는 아직도 그 건물이 남아 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아내 송재숙(관례대로 12세에 결혼함)을 고향에 남겨둔채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그때부터 지용의 마음속에 "향수(鄕愁)"가 서서히 싹이 텄다고 전한다....
서울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시인은 17세에 휘문고보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시(詩)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그후 시인은 일본 유학후에 귀국하여 휘문고보에서 교편을 잡았고 김영랑,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한국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한땐 이념 대립으로 인하여 그의 시를 읽을 수 없었으나
1988년 복원되어 정지용 시인은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이제 충북 옥천은 시인 정지용의 고향임에 틀림없는 곳이다.
위 사진은 시인의 생가(生家) 초가집 내부(방안)의 전경....
시인의 모습과 그가 생전에 즐겨 읽었다는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로 시작된 "호수"라는 시와
할아버지를 그리워 하던 시(詩) 그리고 방안 한가운데 질화로가 덩그란히 놓여 있어 시인의 옛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생가와 담장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인의 동상과 함께 정지용 문학관이 현대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생사도 무덤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2005년 5월 그의 102회 생일을 맞아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정지용 문학관"이 생가 옆에 세워졌다. 영상실, 문학전시실, 문학교실로 꾸며진 문학관에는 그의 업적과 시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정지용 문학관 내부의 모습으로 시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이곳엔 간락한 연보와 작품소개, 희귀한 시와 산문집 초간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뮤직 비디오 형태로 만들어진 가곡 "향수"를 감상할 수도 있는 곳이다.
정지용 문학관 전면에 시인과 함께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울수 있도록 벤취를 만들어 두었다.
이곳을 방문한 회원들 모두가 시인과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는다...물론 아내도 시인과 팔짱을 끼고....
문학관 내부에는 시인이 년도별로 발표한 주옥같은 시와 함께
매년 시행하는 "지용문학상 수상작"과 작품의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생가를 관람하고 간판과 벽에 새겨진 정지용의 시를 지줄대며 길을 걷다보면 재미가 있어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눈에 띠는 간판들의 시를 흥얼거리며 향수길을 걷다보면 아래 사진처럼 가뭄때문에 물은 없지만 실개천이 휘돌아 나오고....
이곳 근처가 "향수거리"였으며, 근처 아파트도 "향수 아파트" 그리고 "향수상회" 등등...모든게 향수와 관련되어 있으니
<향수>가 그만큼 정지용의 시를 대표하고 있는 탓일 게다.
(사진 설명 ; 향수 노랫말에 나오는 실개천인듯....가뭄때문인지 물이 흐르지않으니 못내 아쉬웠다.)
정지용 시인은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 교수로 옮겨 문과과장이 되었으며 1946년에는 좌익 성향이 짙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경향신문 주간이 되니 이때부터 시인은 고난의 길을 가게 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강연에 종사한다. 그러다가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지용은 전쟁 3일 만에 녹번리 집에서 북의 정치보위부에 자수하러 간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영영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이후의 행적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 북한에서 사망한 것이 통설로 알려져 있다.
전쟁 후 지용이 월북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그의 시는 발간금지가 되며 한국 근대시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고 만다. 그의 가족들도 월북자 가족으로 분류되어 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후 40년이 지난 1988년에야 지용의 작품은 해금이 되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2001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북에 있는 그의 셋째 아들 정구인이 정지용과 큰 형 정구관을 찾는다는 신청이 있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정구인은 실로 51년 만에 큰 형 구관과 누이동생 구원을 만났다. 이 사실은 지용이 북에 가기도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 통에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생존을 위한 우익과 좌익의 이데올로기가 어떠하든 지용이 빚어낸 시는 아름답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하다. 그의 섬세한 언어 구사와 선명한 이미지의 표현은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누구나 쉽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만다. 강한 향토적 정서와 곱게 다듬어진 우리말의 섬세한 이미지는 순수한 감각적 서정이 깊숙하게 깃들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그가 살아서 고향에 다시 돌아온다면 뭐라고 읊조릴까?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란 하늘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가 노래한 <향수>의 시처럼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이슬 젖은 풀 섶을 휘적이며 돌아다닐까?
옥천의 어디를 가나 정지용의 시는 구석구석 물결치고 있다. 고향이 없는 자도, 고향을 잃은 자도, 설혹 고향이 있을지라도 옥천에 가면 마음속 고향을 찾게 된다. 우리모두 고향이 그립거든 충북 옥천으로 가보는게 어떨까 혼자 생각하며 미소 지어본다.(위 내용 인터넷에서 부분 발췌)
정지용 생가를 관람하고 근처에 있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로 발길을 옮겼다
위 사진의 이정표대로 시인의 생가와 영부인 여사님의 생가는 걸어서 10여분 거리로 아주 가까웠다.
가는 길에 수령 370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길가에 서있었으니....고목나무에 매미한마리 붙은 형국이다(아래 사진)
향수 - 이동원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음음음음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음~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우우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 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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