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인도(아그라-아그라성)
아그라성 (Agra Fort)
1566년 무굴의 제3대 황제인 악바르(Akbar)황제에 의해 건설된 무굴제국 당시의 왕궁이다.
무굴제국의 강대한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물 답게 높이 20m, 길이가 무려 2.5 km에 달하는
성벽을 쌓고 성밖에는 10 m 가량의폭을 지닌 해자를 파 놓았는데 입구는 성 남쪽에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ingh Gate) 이다.

건설 당시만 해도 전쟁으로 인해 군사요새의 성격이 강 했지만 악바르 이후 4대 황제
제항기르(Jehangir)와 5대황제 샤자한(Shah Jahan)황제의 평화로운 치세가 이어져
이곳에서 실제 외국과의 전투는 없었다. 그러나 그후 1859년 인도인들의 '세포이 항쟁'
을 영국군이 진압 한후, 연이어 아그라성에 포격을 가하여 무굴제국을 굴복 시키고
아그라성에 부대를 주둔시켜 아그라성의 궁전 내부에 장식된 보석들이 대부분 약탈
당했다.

건축광으로 불리우는 5대황제 샤자한은 황제가 된 이후에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발휘해
아그라성을 세계에서 제일 가는 궁전으로 변모 시켰지만, 말년에는 6대황제인 세째아들
아우랑 제브(Aurangzeb)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아그라성에 감금된후 그곳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쓸쓸한 최후를 맞이 했다. 아들 아우랑제브 황제의 마지막 호의로
부인 뭄타즈의 곁에 함께 하게 되었다.
아그라성도 우리가 구경을 한번 해봅시다.
여기가 아그라성 남쪽 입구인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ingh Gate), 기념사진을 찰깍하고
첫째 성문 안으로 들어 가시지요.

첫째성문을 나와 두번째 성문이 보이네요.
성문 위는 높고 견고 하고 전투형 진지 모습이다.

두번째 성문 안으로 들어 갑니다. 붉은 사암으로 견고하고 화려하다.

두번째 성문을 나와 세번째 성문이 보입니다.

세번째 성문 안으로 들어 갑니다. 옛날엔 몸검사 짐 수색후에 통과 시킴

세번째 성문을 나와 네번째 문쪽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철통 같습니다. 그지예.

이제는 약간 오르막 길로 네번째 성문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경사로를 크게하여
적의 대부대나 코끼리가 침입시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방어 하기 위한 설계 이다.

네번째 문 들어 가기전에 오른쪽에 푸른 잔디밭이 있고 그뒤에 멋있는 건물이 보이시죠.
붉은 사암으로 지은 건물인데 하필 역광이라 쫌 그러네요. 건물 앞에는 큰 항아리 같은 것이
보이지요. 조금 후에 크게 보여 드리고 설명 하겠습니다.
이건물은 '제항기르 펠리스' 입니다.

제항기르 펠리스(Jehangir's Palace)는 3대황제 악바르가 어렵게 얻은 아들인 살림
(Salim, 4대 황제 제항기르의 아명)을 위해 지은 건물 이다. 힌두`아프칸 양식의 건물이다.
그런데 어렵게 얻은 아들인 제항기르와 악바르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무굴제국의 후계자 계승방법 문제점 때문 이다.
아래에 보이는 4번째 문은 성 내부를 구경 다 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문 이다.

무굴제국 후계자 계승은 정권 이양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제로 결정 된다. 따라서 왕권
교체기에 혈육간의 전쟁은 피할수 없는 일이고,무굴제국 내내 끝없이 피를 부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무굴제국의 정권이양은 한번도 평화롭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이 큰 항아리는 무굴 황제가 영국에 갈때 목욕하기 위해 간지스강물을 담아
갔다는 항아리 이다.

제항기르 펠리스 내부 사각형 안뜰이다. 건물의 안과 밖은 붉은 사암으로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섞여 있는 특이한 방식 이다. 3대 악바르 황제의 역작 이다.

역시 궁전 내부 사각형 안뜰인데 윗쪽은 햇빛이들고 여기 반대편은 햇빛이 없다.

기둥위 처마밑은 조각이 정교하고, 둥글고 단추모양의 조각은 커텐을 달기 위한 것이다.

'제항기르 펠리스' 동영상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궁전 내부가 붉은 사암으로 건축 되고 과거 화려한 궁전모습이
엿보인다.

윗쪽 사진에 보면 마당 한가운데 하수구 비슷한 것이 보이지요.
빗물을 저장하여 활용한 빗물 저장고이다. 왕궁 이라 멋스럽게 설계 했다. 어떤 가이드는
왕의 목욕 장소라 하여 한참 웃었다.

궁전에서 야무강 쪽으로 바라보면 아그라성이 요새란 것이 인정된다.

디와니카스
디와니카스는 샤자한이 1636~ 1637년 세운 건축물로 개인 접견실이며 고위관리나
외국대사들을 만날때 사용 됐다. 그 유명한 공작좌가 맨처음 있었던 곳으로 1660년에
아우랑제브 황제에 의해 델리의 붉은성으로 옮겨졌다.
밖에서본 '디와니 카스'

안에서 본 '디와니 카스'

디와니카스 앞에 있는 분수대, 대리석으로정말 멋있게 만들었다.

디와니 카스앞 정원도 큰정원을 4등분 하여 만든것 인데 조금 특이하다.

무삼만 버즈
무삼만 버즈는 '포로의 탑' 이라는 뜻인데 샤자한이 아그라 성에서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곳에서 사랑하던 '뭄타즈 마할'을 그리며 마지막 8년을 보낸 곳이다. 타지마할
까지의 거리는 약 2.5 km 정도로 맑은 날이면 선명 하게 보인다.
윗쪽에 투구같이 생긴 탑이 무삼만 버즈 이고 건물내부는 피에트라 두라 양식으로
화려하게 만들었다.

무삼만 버즈 옆의 전망대로 이곳에서 샤자한의 마음으로 타지마할을 바라보자.
심정이 어떨런지?

아그라성에서 타지마할이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야무나강 위에
뜨 있는것 같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여행자에 따라서는 아그라성 특히 '무삼만 버즈'
('포로의 탑'이라고 하는데 샤자한 이 말년에 유폐 된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하는 이도 많다.

무삼만 버즈 건물 옆에서 기념촬영
. 
여기서 부터는 후궁들이 사용 하던 궁전 내부이다.
문 윗쪽인데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으로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 한다.


후궁들이 사용하던 궁전 내부 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환기구 겸 창문으로 황궁의 여인들은 이 창문 안쪽에서 밖을
내다 볼수 있었다.

무삼만 버즈의 화려한 문양들인데 고급대리석에 준 보석급들을 하나하나 박아 조각한
것으로 멋있고 신비하다.

무삼만 버즈 내부는 피에트라 두라 방식으로 화려하게 만들었다.

내부가 화려한데, 샤자한의 딸 '자하나라' 공주도 함께 유폐 되었다고 한다.


다와니카스 윗층에 있는 왕의 개인 접견실 내부이다.

다와니카스 윗층에 있는 왕의 개인 접견실 외부이다.

후궁 및 왕족들의 거처와 넓은 정원

1층 회랑에서 옛날 후궁들을 생각하며 .... 역시 기둥들은 붉은 사암 이다.

후궁 및 왕족 들의 처소

가이드 '비카스'가 후궁들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다.

대리석에 조각한 천정의 화려한 무니

디와니암
1628년 샤 자한에 의해 건설된 왕의 공식 접견실 이다. 황제가 사무적인 일이나
건의사항을 들을때 사용 된 곳이다.

디와니암 중앙에 있는 황제의 자리로서 이곳은 흰 대리석에 '피에트라 두라' 양식의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 되어 있다.

초기의 목조건물을 붉은 사암으로 바꾸고 다시 하얀색으로 회칠을 하여 다듬은 건물이다.
천정과 기둥이 화려하다.]

다와니암 내부는 흰색의 회칠에 붉은 사암으로 문양을 만들었기에 언뜻보면
대리석으로 보인다.

디와니암 건물이 조금 보이고 그앞에 넓은 정원이 보인다.

처음 들어 올때 4문 이라고 하면서 구경 다하고, 마지막으로 나올때
사용하는 문 이라고 했다. 지금 그문을 통해 나가고 있다.

4 문을 나와서 느낀점은 아그라성을 보고 무굴제국의 강력한 힘과 정신을느낄 수
있었다. 아그라성은 1948년 인도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자 인도 초대 수상 "네루"가
아그라성에 올라 인도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사실이 있는 곳이다.

참고로 무굴제국을 간단히 소개하면
무굴제국의 무굴은 아프카니스탄 방언으로 "몽고"라는 뜻이라고 한다. 무굴제국의
시조 '바부르'는 징키스칸의 후예인 '티무르'가 자신의 5대조라고 하였다..
1526년 4월 '바부르'가 인도 델리와 아그라를 점령 하면서 새로운 국가 '무굴제국
(1526 년~ 1761년)을 세웠다. 2대황제 '후미윤' 을 지나 3대 황제 '악바르'
( Akbar)에 이르자 전성기를 맞는다. '악바르'는 군사 책략가 이자 합리적인 정치가로
인정 받았고 '아그라성'을 지었다.
아그라 요새의 마지막 방어선인 경사진 통로를 내려 오고 있다.

4대 '제항기르' 황제는 특별한 업적은 없고 악바르 황제가 시행하던 힌두교 포용정책을
수용 하였다. 5대 샤자한 황제는 건축광으로 타지마할` 아그라성 내부궁전 등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6대황제 '아우랑제브'는 아버지 샤자한을 '무삼만 버즈'에 유폐 시킨
황제 이고, 왕이 되자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반목이 재현 되어 아우랑제브 사후 델리 근교의
소국으로 전락 했다. 이후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장시간 수고 하셨습니다.

인도의 문화와 힘을 느낄 수 있는 '아그라' 한번은 와볼만 하다. 샤자한의 타지마할 과
악바르의 아그라성, 정말 화려하고 강력한 제국의 힘이 보이네요.
다음 5편 인도(아그라-타지마할)를 기대 해 주세요.
4 편 인도(아그라-아그라성). 끝
첫댓글 모델 챙기랴, 사진 찍으랴, 글쓰랴, 고생 많았습니다.
인도전문가가 되었네요. 여행때 짝은 사진 귀국해서 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헷갈리기 일쑤인데 정말 놀랍습니다.
산토리니의 열정에 박수 보냅니다.
산토리니 덕분에집에서인도구경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