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이란 작품으로 오랜만에 성석제를 만났다. '참말로 좋은 날'이란 책 한 권을 끼고 사과나무 꽃 그늘 아래서 담소를 나누던 기억이 아련해질 때 쯤...
책을 펴들고 습관처럼 차례에서 소제목을 보는 순간 '아, 이건 소설이 아니라 시집을 펼쳐든 게 아닌가'라는 착각이 일어났다.
모래를 스치는 발소리
머리에는 꽃을
사랑은 꿀보다 달콤하고 쓸개보다 쓴 것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마법의 빛에 둘러싸여
나는 무덤 속에 누워서 기다리리,
대포와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릴 때까지
내 얼굴은 내가 쓴 문장으로 가득하니, 시간은 나의 펜
내가 진실하지 못했다면
네게 그러려고 한 건 아니란 걸 알아줘
난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당신은 내개 상처를 입혔네
우리 모두 너무 쉽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어
그 사람에게 알려줘, 내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즐겁게 즐겁게 흔들리는 배 저어 검고 푸른 바다 너머로
그러나 사랑이여 당신은 언제나 내개 젊고 아름다우리니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즐거웠던 나날을 다시 돌려주소서
정다워라 그 음성 내 마음속에 파도치네요
이게 내 노래에요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슬프고도 오랜 바람의 노래를 들어요
아니 난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나와 상관없어요
나는 가난한 소년일 따름이나 내 이야기는 흔치 않은 것
나는 슬픔이 출렁이는 세상을 떠도는 가난한 방랑자
난 농담을 시작했어요 세상이 모두 울기 시작했을 때
쇼는 계속 해야 해, 그래야지
문을 열어줘요, 부인
햇빛이 비치면 집에 간다네 밤새 럼 마시며 일한 뒤
인생이여, 고마워요
강,
강이다.
로 시작하는 글. 분명 내용을 보면 성석제의 문체다. 술술 넘어가는 유려한 문장, 그리고 서사와 묘사가 유유히 흐르는 강물같이 이어진다. 게다가 오페라 아리아<별은 빛나건만>으로 확성시키는 감성과 지성이라니...
성석제의 위풍당당에는 음악(노래)과 춤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맞닿아 있다. 조폭들이 마을로 진입하기 전 한낮의 오찬을 보면 라블레적 향연이다. 인물들 모두가 흥에 취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츨렁인다. 노래에 스며든다. 강 건너에서 보면 바람에 일렁이는 자연의 모습이 이닐런지 ...
또 흥미로운 것은 우리 고유의 설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조폭들을 퇴치하는 장면은 호랑이가 인가에 내려와 해꼬지를 하려고 하자 팥죽을 뜨겁게 끓여 호랑이가 먹도록하면서 갖가지 꾀로 호랑이를 괴롭히는 <팥죽 할머니와 늑대>를 떠올리게 한다. 통쾌하고 재밌다.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자가 따로 없다.
성석제가 말하는 소설적 알레고리는 무엇일까?
위풍당당의 배경이 되는 숲에 가려진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오영수의 <은냇골 이야기>에 나오는 청도의 한 산골 마을이랑 닮았다.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연이 있는, 숨어서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 은냇골에 사는 이들은 순응과 공존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 삶에 적응한다. 위풍당당에서도 소희를 중심으로 한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마치 모계 중심의 원시공동체적 삶처럼. 바로 원초적인 가족의 모습처럼.
이들은 전국 최고의 조폭들과 대결했듯이, 나중에는 거대한 기계들과도 맞설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지켜 낼 것이다. 박영팔과 소희가 1대가 되고, 여산과 이령이 2대, 새미와 준호가 3대에 이르는 공동체적 대가족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갈 것이다. 마치 강이 흐르듯이 말이다.
강이다,
강
소설은 이렇게 끝나지만...
첫댓글 유쾌한 소설을 읽음과 더불어 한편의 시까지..... ^^* 감사~~
와... 저도 저런 독후감 써보고 싶어요..^^ 직접 읽어주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