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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통해 동.서양 문명의 충돌과 화해의 역사를 조명하는 추리 소설. 이야기는 1591년, 눈 내리는 이스탄불의 외곽에 버려진 우물 속에서 시작된다. 우물 바닥에 죽어 누워 있는 시체 '엘레강스'는 어떻게 해서 자신이 나흘 전에 살해당해 우물 바닥에 던져졌는지를 이야기한다. 세밀화가들 사이의 질투와 긴장감, 낯선 그림에 대한 종교적인 두려움과 그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은,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는 패배감과 함께 세큐레와 카라의 불운한 사랑 이야기에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 | ||
<작가 소개> 오르한 파묵페리트 오르한 파묵(터키어: Ferit Orhan Pamuk, 1952년 6월 7일 ~ )은 터키의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터키 및 국제 문학상을 여럿 수상했으며, 2006년 10월 12일에 터키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2년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파묵은 부모의 이혼으로 독서에 몰두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스탄불의 명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이스탄불 공대 건축학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3학년 때 자퇴, 1974년 전업 작가 선언을 했다. 1979년 첫 소설 ‘제브뎃씨와 아들들’이 ‘밀리엣신문 문학상’ 공모에 당선되고, 1982년 같은 작품으로 ‘오르한 케말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터키 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올랐다. 두번째 소설 ‘고요한 집’(1983)으로 ‘마다라르 소설상’을 받은 데 이어 1985년 세 번째 소설 ‘하얀 성’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영어를 포함한 10여개 국어로 번역됐으며 스페인에서는 자국이 낳은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1990년 발표한 ‘검은 책’과 1994년 ‘새로운 인생’은 터키 문학 사상 몇 손가락에 꼽힐 만큼 많이 팔렸다. 1백만부 이상 판매된 ‘새로운 인생’은 터키 최대의 베스트셀러다. 1998년 내놓은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은 그의 이름을 세계 35개국 독자들에게 알리며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한국어 번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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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로구나...
신의 관점, 인간의 관점/ 전통의 관점, 서양의 관점 관점의 변화는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개성을 죽이고 전통과 하나되는 수련을 통해 평생을 세밀화에 바쳐온 장인들의 열정과 패배, 갈등과 사랑...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림에 대한 담론들이 멋진 소설이다.
권력의 영속성에 대한 탐욕에 봉사하면서 그 권력의 명멸과 함께 떠돌아다면서도 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예술이라는 공고한세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던 장인들의 헌신과 의미부여가 눈물겹다.
삶의 찰나성을 신의 관점으로 그림 속에 영속시키고 싶어했던 예술의 바램. 그러나 그 예술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부정당한다. 이제 그림은 신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개성과 현실의 거울로 변화하려 한다. 무엇에서 초월을 꿈꿀 것인가?
... 예술과 삶의 관계, 그리고 스타일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시도한 격조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읽는 중 이슬람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마지막 세큐레의 다음과 같은 독백은 이 책의 주제, 예술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화풍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 저편의 이상... 이 모든 것을 함께 창조하려는 것이 바로 예술의 갈망일 것이다. 삶 자체에 존재하는 행복한 미소를 그리기. 그것이 가능하려면... 장인은 어쩌면 행복한 자신의 삶을 예술의 제단에 바쳐야만 하는 것일까? 예술은 도대체 무엇인가? 동경인가? 결핍의 충족인가? 생의 불완전함을 견디는 일인가? 직면하는 일인가? 시간을 죽이는, 삶을 살아내는 한 방편인가?
... 저는 전 생애를 통해 두 점의 그림이 그려지길 은밀히, 너무도 갈구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어요.
첫번째, 저의 초상화가 그려지길 바랐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죠. 왜냐하면 저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술탄의 세밀화가들 중 그 누구도 눈과 입을 중국인처럼 그리지 않으면 여자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헤라트파의 옛 장인들이 그랬듯이 저를 중국 미녀처럼 그린다면, 어쩌면 그 그림을 보고 그 뒤에 숨겨진 저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만, 후대 사람들은 제 눈이 사실은 동양인들처럼 위로 치켜 올라가 있지 않았음을 안다 해도 실제 제 얼굴이 어땠는지는 전혀 알 수 없을 거예요. 아들들의 위로로 보내는 지금 이 노년기에 나의 젊었을 적 초상화가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 텐데...
두번째, 행복의 그림이 그려졌으면 했습니다. 란 출신의 시인 사르 나즘이 그의 마스나비에서 깊이 생각했던 것이죠. 그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요. 두 아이가 있는 어떤 어머니의 그림이죠. 그녀의 품에는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전을 빠는 아이가 있고, 약간 질투하는 큰 아니와 엄마의 눈이 마주치고 있지묘. 그 그림에 있는 엄마가 저였으면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새가 하늘에서 행복에 겨워 영원히 머무는 것처럼 표현하고, 시간을 멈추게 한 헤라트파 옛 장인의 화풍으로 그려졌으면 했지요. 알아요. 쉽지 않다는 걸.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하려는 바보 같은 제 아들 오르한은 시간을 멈추게 한 헤라트파의 장인들은 절대로 저를 저처럼 그릴 수 없다는 걸 상기시켰어요. 반면에 아들을 안은 아름다운 어머니 그림을 쉬지 않고 그리는 유럽 화가들은 절대로 시간을 멈추게 하지 못할 거라며, 아무튼 저의 행복의 그림은 절대로 그려질 수 없다고 수 년간 줄기차게 말했지요.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행복의 그림에 있는 미소가 아니라 삶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요. 세밀화기들은 그걸 알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리지 못한 것도 그거예요. 이 때문에 그들은 삶의 행복을 바라보는 행복으로 대체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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