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놀았다는 섬 아름다운 선유도 (仙遊島)
선유도 지도
전라북도 군산시(群山市) 옥도면(沃島面)에 속하는 섬. 면적 2.033㎢. 인구 534(1999). 진봉반도(進鳳半島)에서 남서쪽으로 약 40여㎞ 떨어진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의 중심에 있는 섬이다.
선유도 낙조
선유도 일출
썰물 때 선유도 해변(해수욕장 명사십리)
장자교
선유교
초분(草墳)
남해와 서해의 섬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던 장례 풍습으로, 초빈(草殯)·고빈(藁殯)·출빈(出殯)·외빈(外殯)이라고도 한다. 일단 땅 위에 올려 놓았다가 2~3년 뒤 뼈를 씻어 다시 땅 속에 묻는 까닭으로 복장제(複葬制)·이중장제(二重葬制)라고도 하며, 현지에서는 빈수[殯所]·최빈(草殯)·예빈(外殯)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상주(喪主)가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갑자기 상을 당하거나 죽은 즉시 묻는 게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될 때, 또는 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민간신앙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행해졌다. 문헌자료에도 전염병으로 죽거나 객지에서 죽었을 경우, 집안이 가난해서 장지를 구하지 못하거나 어려서 죽었을 경우 등에 한해 초분(草墳)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도서 지방은 물론 육지에서도 많이 행해졌는데, 일제강점기에 위생법에 제정되고 화장이 권장되면서부터는 남해와 서해의 일부 도서에서만 초분 풍습이 행해졌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뒤에는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하였다 한다.일종의 풀무덤으로, 시신 또는 관을 땅 위에 올려 놓은 뒤 짚이나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2~3년 후 남은 뼈를 씻어(씻골) 땅에 묻는 무덤을 말한다. 이장은 특히 '공달(윤달), '손 없는 달'이라 하여 윤달(閏月)에 많이 한다. 현재까지 초분 풍속이 행해지는 지역으로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의 청산도(靑山島), 여수시 금오도(金鰲島)·안도(安島)·개도(蓋島), 고흥군 나로도(羅老島), 신안군 증도(曾島)·도초도(都草島)·비금도(飛禽島), 영광군 송이도(松耳島), 전라북도 군산시 무녀도(巫女島), 부안군 계화도(界火島) 등이 있다 고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일성록(日省錄) 및 고문서 등에는 초빈(초분)의 관행은
전염병에 죽거나,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를 합장하려고 할 때,
객지에서 죽었을 경우,
어린아이가 죽었을 때,
돌아가신 분의 유언으로,
도서지방의 남자들의 출어기간이 길어 자녀가 시체라도 볼수있게,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바로 매장하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는 경우,
시신의 육(肉)을 오물 및 추물로 생각하고 매장할 때에는 깨끗한 백골만을 땅에 묻어야 함,
이장을 하다가 사고가 났을 때,
집이 가난해서 장지를 구하지 못할 경우,
사망당시 후손들이 경제적 사정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후손들의 발복(發福)을 위해 초빈(草殯)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라북도 군산시 무녀도(巫女島)의 초분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선유도 초분의 모양
지난 우리 조상들의 효의 상징인 시묘(侍墓)살이
지난 2002년 8월 KBS 2TV `인간극장`은 3년 시묘(侍墓)살이에 나선 한 남자를 소개했다. 주인공은 유범수씨(51). 20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시묘살이에 나서리라고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산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당시 부모에 도리를 다하고자 했던 범수씨의 행동은 형제, 가족들의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살아있는 가족이 우선이라며 만류했던 아내와는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고 말았다. 범수씨는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오직 어머니를 위해 문명의 이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30일부터 시작된 ‘인간극장’은 범수씨가 시묘를 마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았다.
시묘(侍墓)살이
부모의 생전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돌아가신 직후부터 3년 동안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짓고 식사를 올리며 묘를 돌보는 풍습을 말한다.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불효에서 비롯됐다고 여겨 머리와 수염도 안 깎으면서 온갖 고초를 견뎌낸다. 조선시대에는 시묘살이를 부모에 대한 가장 효성스러운 행위로 평가해 3년간 시묘살이를 마친 이에게 나라에서 상을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