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은 전체가 설교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긴 설교가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13~14장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3장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하루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가룟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시는 장면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14장으로 넘어가면, 13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예수님의 설교가 나옵니다.
성서학자들 중에 이 편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이 사본으로 복사되고 전달되는 과정에서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연구 결과, 13장 다음에 15~16장이 이어져 있었고, 그 다음에 14장, 그 다음에 17장의 순서로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래야 훨씬 자연스럽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13장에서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 예고되었기에, 15장으로 이어져서 예수께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며, 가지가 나무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도 없고, 결국은 버려져 불에 사르게 된다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16장은 15장에서 하신 설교의 연속인데,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고 제자들은 그대로 남아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그 다음 장면이 14장으로 이어져서 ‘그러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 거처를 마련할 것이다.’ 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의 원본에는 13장 다음에 15장, 16장, 14장 순서로 이어지는 긴 설교를 마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편성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17장으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나님과 기도하며 대화하시는 장면으로 이어져야 전체 글의 흐름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진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이 순서가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강해는 현재 요한복음의 편성을 따라서 하겠습니다.
15장은 예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로, 제자들을 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비유하십니다. 5~6절을 보겠습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이 비유의 뜻은 분명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당연히 열매를 맺을 수도 없듯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공동체는 철저하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본문이 기록된 의도일 것입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 본문을 모든 인류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을까요? 많은 목사들이 설교단에서, 예수님을 포도나무로 제자들을 가지로 비유한 이 본문을 모든 인류에게 적용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처럼 말라 버려지고 불태워진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건 옳지 않은 해석입니다. 신도들을 상대로 그렇게 해석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인들을 포함해서 전체 인류가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가지로 붙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 세상에는 포도나무만 존재하고 다른 나무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과나무 가지는 사과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오렌지나무 가지는 오렌지나무에 붙어있어야 하고, 무화과나무 가지는 무화과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입니다. 과거 기독교만 고등종교로 존재했던 중세시대의 유럽에서는 그런 억지 해석이 통했습니다. 아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변의 진리라고, 기독교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문화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웃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교리주의자들을 향해 현대신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시면서 공동체의 결속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받게 될 핍박에 대해 서술합니다. 18~19절을 보겠습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사람이라고 하여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았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이 기록은 서기 90년대 요한공동체를 비롯하여 예수공동체가 처해 있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합니다. 예수공동체는 로마제국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공동체가 받은 핍박이 오로지 비기독교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무지 때문뿐이었을까요? 당시 예수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독선과 배타성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