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마-싣닫타 > 석가모니(기원전 623~557~477)의 생애
BC 6세기경, 카필라성을 중심으로 샤카족의 나라가 있었다.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 기슭)
석가족은 현재 네팔 중부의 남쪽 변경과 인도 국경 근처에 위치하였던 작은 부족으로, 까삘라밧투, 현재 네팔의 타라이 지방의 티라우라 코트에 해당함)를 수도로 하여 일종의 공화정치 또는 귀족정치(혹은 과두정치)가 행해지고 있었다.
왕이라고 하는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공동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코살라 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그분의 아버지는 크샤트리아(무사)계급에 속한 왕으로 현재 네팔 국경지역 근처의 카필라바투(迦毘羅城)에서 사키아(釋迦)족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고타마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고타마 숟도다나>라고 불리웠고 그의 비(妃)는 이웃 콜리야족의 공주<마하마야>였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석가족 왕족가문에서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월 보름날, 때는 봄철, 나무는 잎과 꽃 열매가 무성하고 사람과 새 짐승들이 모두 즐거움에 젖어 있을 때였다. 그때 <마하마야>왕비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아기를 낳기 위해서 성대하게 꾸민 마차를 타고 카필라바투를 떠나 친정인 데바다하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중도에 끝나 버렸다. 왕비는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꽃이 만발한 무우수 아래서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룸비니(현 지명은 룸민데이)는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백마일 거리에 있으며 눈덮인 히말라야의 영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고타마-가문 싣닫타-이름 >
고타마(Gotama)는 성(姓)이고 이름은 싯다르다(siddharta)이다. 성 뒤에 붙는 붓다(Buddha)라는 존칭은 ‘깨달은 사람’이란 뜻이다. 고타마 붓다는 그는 현재의 네팔지방에 본거를 둔 석가족(釋迦族) 출신으로 존칭하여 샤카무니(釋迦牟尼)라고도 불렀다.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Muni.무니)란 뜻이다.
붓다는 한자로 ‘불타(佛陀)’로 음사(音寫)되었으며 이 명칭은 중국에서 많이 사용하였으나, 나중에는 어미(語尾)의 음이 탈락되어 다만 '불(佛)'이라고도 쓰여졌다. 불은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 밖에도 붓다는 세존(世尊) 또는 여래(如來)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화엄경〉‘60 화엄’(420. 동진 불타발타라 한역) 권4 ‘여래명호품’에 “이 사천하의 불호(佛號)가 같지 않으니 실달(悉達)이라 하고, 만월(滿月)이라 하며, 사자후(獅子吼)라 하고, 석가모니라 하며, 노사나(盧舍那)라 하며, 구담(瞿曇)이라 하고, 대사문(大沙門)이라 하며, 최승(最勝)이라 하고, 능도(能度)라 하여 이런 부처님 이름이 1만 가지나 된다”고 나온다
<붓다(불), 세존, 지나, 마하비라, 아르하트(arhat)’ 등의 용어는 인도에서 깨달음이나 해탈을 성취한 이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보통 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고타마 붓다,고타마 부처님으로 불리어야 할것이다.>
29세에 출가 35세에 대각성취후 전도선언,
80살이 되던 즈음에 병이 나서 인도 쿠시나가라에 있는 사라수 나무에서 기원전 483년에 열반(입적)에 들었다. 이 위대한 종교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님께서는 2500여년 전에 살았었고, <고타마 싣닫타>(Gotama Siddhatta)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이 '싯다르타'에, 성은 '고타마'이며, 때때로 역순으로 '고타마 싯다르타'로 적기도 한다.
이곳에, 그로부터 316년 후 <아소카>황제 *2 는 <싣닫타>왕자가 태어난 성지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소카문자 93자로 된 다섯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석가족의 성자, 붇다, 여기서 탄생하셨도다.’
(hida budhe jaate Saakyamuni)
질문 : 불교의 교조(敎祖) 석가모니의 국적(國籍)은 어느 나라인가?
부처는 출생지가 네팔의 룸비니로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어떤 기록을 보니 이 룸비니란 곳이 과거 한때는 인도 땅이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석가모니 출생 당시의 정확한 국명, 즉 그가 출생 시 어느 나라 사람이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답변 : 부처가 태어난 곳은 현재의 네팔지역에 있던 부족국가 카필라국, 출가 후엔 현재의 인도지역에서 대부분의 생애 보내고 입적(入寂)

인도와 네팔 사이의 흰선이 국경이고 붉은 색 표시가 있는 곳이 룸비니

마야데비사원 서쪽으로 네팔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기념물인 아소카 석주가 서 있다.
이 기둥은 기원전 249년 아소카 황제가 이 성지를 순례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던 것이다.
브라미어로 새겨진 기둥조각이
기원전 623~557년에 태어난 붓다의 출생지가 바로 이 룸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 성장한 곳인 카필라성(城) 등은 모두 현재 네팔의 영토입니다.
부처는 어머니인 마야왕비가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길에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과 성장한 곳의 위치를 현재의 국경 개념에서 보면 부처는 ‘네팔 국적’인 셈이지요.
그렇지만 29세 때 왕궁을 나와 구도(求道)의 길에 나선 이후 부처는 현재의 인도 영토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고 80세에 열반에 든 곳 역시 현재의 인도 영토인 쿠시나가르입니다.
이 때문에 ‘부처의 국적은 네팔인가? 인도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근대 이후의 국가 개념을 기준으로 부처님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곤란하다”(동국대 고영섭 교수)고 말합니다.
기원전 6세기 부처 시대에 히말라야 산맥 남쪽 인도대륙에는 16개의 크고 작은 나라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중 마가다국(國)과 코살라국(國) 등이 강국(强國)이었습니다. 부처가 태자로 태어난 카필라국은 이 열여섯 나라에 끼지 못할 정도로 작고 약했습니다. 카필라국은 강국인 코살라국의 침략 위협을 여러 차례 받았고 결국 부처 생존 시에 코살라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인도대륙에서 통일왕조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BC 317년 찬드라 굽타가 세운 마가다국의 제3왕조인 마우리아왕조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군이 인도에서 물러난 후 세워진 마우리아왕조는 현재의 네팔 지역을 포함해 인도대륙 대부분을 장악했습니다. 당연히 룸비니와 카필라성도 마우리아 왕조의 영토에 포함됐습니다.
찬드라 굽타의 손자인 아소카왕은 마우리아왕조의 대표적인 군주입니다. 한자로는 아육왕(阿育王)으로 표기되는 아소카왕은 활발한 정복활동을 벌였고 불교에 입문한 후에는 불법(佛法)에 의한 이상 정치를 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순례하면서 부처의 유적지와 성지에 거대한 돌기둥<사진>을 세우고 부처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부처 유적지의 돌기둥
그는 인도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불교를 인도 전역과 이웃 나라에 전파하고 세계화했다는 점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비견됩니다. 크고 작은 여러 왕조가 명멸하던 네팔 지역은 18세기 후반 통일왕조가 만들어진 후 지난 2008년 공화제로 바뀌었고,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 1947년 독립했습니다.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은 “엄격히 말하면 부처님은 ‘현재의 네팔 지역에 있던 카필라국 국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도 최초의 통일왕조인 마우리아 왕조에 의해 부처님과 불교가 널리 알려졌다는 점에서 인도 출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네팔에서는 최근 영화 찬드니촉 투 차이나란 영화에서..붓다의 출생지가 인도라고 잘못 해설하는 바람에...이 영화가 네팔에서 상영금지 당했다는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