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분리건국채권 제 17회 1백원 권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구입을 하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보는데 뭔가가 툭 떨어집니다.
바로 1원 은화(명치39년)였습니다.
일부러 함께 넣어 주신건지 아니면 모르고 딸려서 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연락을 드리지 않고 마운트를 하였습니다.
이미 4개 정도 1원 은화를 가지고 있는데 줄세우기를 위해 등록해 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1엔이 골칫덩이 잔돈 취급이지만, 당시의 1엔은 6.46돈의 은으로 만들어진 가치가 매우 큰 화폐였습니다.
최고액 은화인데 발행량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이유는, 해당 은화가 국제적 무역 은화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다른 아시아의 국가들은, 무게와 순도가 일정한 은화가 없었기 때문에 서양과의 무역에서 받는 멕시코 8레알 은화로 거래를 하였는데, 가까운 일본에서 무역 화폐를 노리고 1엔 은화를 8레알 은화와 비슷한 품위로 발행하였고, 일본은 국제 무역화폐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 명치 7년(1874)에 무게와 순도(416 grains, 900‰)를 표기하게 되었으며 곧 중국과 조선, 베트남 등에서 가치를 신뢰받아 무역 대금으로 줄곧 유통됩니다.
다른 은화들의 순도는 80%인데 반해 1엔 은화만 90%에 액면 대비 은이 많이 함유된 이유는 1엔 은화는 당시 일본의 화폐 제도였던 은본위제도(銀本位制度)의 본위 화폐의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액면에 맞게 은을 함유해 화폐 가치를 보증할 필요가 있었고, 당시 유통되던 세계 무역용 은화들의 순도인 90%에 맞게 제작될 필요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행 초기에 주조수량이 적은 초기에는 해외 무역에 우선 쓸 수 있도록 일본 국내 유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명치 11년(1878)부터 마침내 일본 국내에서 통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명치 18년(1885)년에 국내에 은본위제도(銀本位制度)가 시행되어 본위 화폐로 통용되고, 명치 30년(1897)부터는 금화를 화폐의 주축으로 하는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가 제정되어 본위화폐에서 탈락해 이후로는 완전한 무역용으로만 사용됩니다.
[출처] 일본 메이지(明治-명치)유신 시대의 서양식 근대 주화 모음 (동전, 은화/용 시리즈 : 1873년 - 1914년)|작성자 안녕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