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해외뉴스로 호주 ‘틀니남’이 화제가 됐다. 호텔에서 일하는 윌리암 캐너웰이라는 25세 청년은 3년 전 문득 생수가 맛이 없다고 느껴져 목이 마를 때 물 대신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만 중독이 돼 하루에 6~8리터씩 마셨다고 한다. 그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심각한 충치로 이가 망가지자 하나둘 뽑아 결국 13개만 남았고 이마저 틀니를 위해 다 뽑았다고 한다.
캐너웰의 경우는 물론 극단적인 사례이지만(외국에까지 소개될 정도이니) 오늘날 사람들 대다수는 충치로 이 한두 개는 ‘때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치약, 칫솔도 좋고 이가 아프면 치과라도 가지만 그 옛날 수렵채취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치아 문제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러나 이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20만년에 걸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시기 동안 치아건강은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대 생고고학자(bioarchaeologist)인 사이먼 힐슨 교수는 2만 년 이전에 살았던 인류의 두개골 화석 수천 점을 조사했는데 충치가 있는 경우는 2%가 안 됐다. 그러나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평균 9%가 충치를 갖고 있었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을 주식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치아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 역사에서 치아 건강이 급격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설탕을 그리스로 들여오면서부터다. 그 뒤 로마시대와 중세시대를 거치며 설탕 소비가 꾸준히 늘었고 이에 비례해 치아건강은 악화됐다. 신대륙 정복과 사탕수수 농장, 산업혁명의 과정을 거치며 설탕 소비는 급증했고 20세기 들어 유럽과 북미 사람에서 충치가 있는 사람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어 50~90%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인류의 식생활 변화가 구강 환경의 변화로 이어졌고 따라서 오랜 세월에 거쳐 인류의 구강환경에 최적화돼 있던 미생물들이 급변하는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사이 유해한 미생물들이 들어온 것이다. 오늘날 급격한 기후변화로 토착종들로 이뤄진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현대인의 치아건강을 위협하는 건 충치가 전부는 아니다. 곱게 빻은 밀가루와 잘 도정된 쌀, 다양한 요리기법의 개발로 음식들이 부드러워지면서 수렵채취를 통해 거친 음식을 먹는데 최적화된 구강구조가 망가지고 있다. 즉 거친 음식을 씹어야 치조골(이틀뼈)가 자극을 받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해 특히 아래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그 결과 윗니와 아랫니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부정교합이 급증하고 있고 이가 나올 공간이 확보되지 못해 사랑니가 속에 박혀있는 경우도 많다.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로버트 코루치니 교수는 “잇몸질환과 부정교합은 선사시대 치아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며 “아이들의 턱을 강화하기 위한 구강 운동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치아 질환의 만연은 몸의 진화 속도가 문화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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