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5: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위의 기록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8복에 들어가는 명언으로써, 복(福)이란
영생의 복을 말하기 때문에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한것이고,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고 한것이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
그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무엇에 대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영생을 받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지구촌 우리인류는 각 개개인이 그 누구라 할지라도 자기의 뜻한바가 전혀
없이 이 세상에 막무가내로 내동댕이쳐져서 고아와 같은 처지로 살다가
연기처럼 사라져가야 하는 비극의 존재임을 뉘라서 부인하랴!
사면초가 고아와 같은 공허를 느껴보고 그 절절한 공허를 채워보고 싶어서
심히 울어본 자가 있는가? 그렇게 심히 울어본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찾아 묻고 또 묻는 애통하는 자가 되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성이 있는 인간이 인간된 기본 양심을 깨끗이
하고, 인간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첫걸음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인간된 기본 양심을 깨끗이 하고, 인간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최초의 첫걸음을 내딛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곧 이 세상에 다양한 종교들의
출발점이 된다고 하겠다. 자, 그런데 기독계열을 포함한 여러 종교들의 교리들을
들여다 본다면 과연 거기에 인생의 그 무한한 의문과 허무를 채워줄 수 있는
내용들이 있던가? 어림도 없다. 모두 빈 콩깎지들 뿐이다.
아무 논리가 없고 숭숭 구멍난 골다공증 잡동산이 쓰레기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수많은 종교들은 제외시키고 기독교만을 한정해서 진단해 보기로
한다. 기독교의 경전은 성경인데, 성경에서 알려주기를 기독교 외의 수많은
종교들을 일컬어 동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동산각종나무들” 이라고
명명하고, 기독교를 일컬어서는 동산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과” 라고 한다. 이는 성경은 기독교를 중심해서 쓰여졌기
때문에 동산중앙이라고 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는 자기백성에게 아주 엄중한 율법을
주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동산각종나무열매는 임으로 먹되(동산각종나무에도
하나님의 창조공정이 하나씩 들어 있기 때문임) 동산중앙(성경)의 선악과는
절대로 먹지말라고 하셨다.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다는 사실이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동산중앙에 있는데, “동산중앙” 이란 기독인들이
믿는 성경책을 뜻한다. 즉 성경책엔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있는데 생명나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주신 말씀과 신약에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뜻하고, 먹으면 죽는다고 금하신 선악과는
옛뱀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뜻한다.
그런데 기독인들의 신앙은 말로만 하나님 및 예수님을 믿을 뿐, 그 교리의
근간이 되는 엄청난 주석집은 오로지 사도바울의 서신서로만 빼곡하다.
즉 하나님 및 예수님의 말씀은 종적을 감추고 오로지 바울서신서로
교리를 삼아 하나님을 똥막대기 엉터리로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교리와 바울의 서신서 교리가 어떻게 서로 이질적으로 다른지
그 차이를 명백히 거론해야 하겠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한다.
암튼 너무나 상반되게 달라서 바울의 교리가 하나라도 들어가면 절대로
성경은 풀리지 않고 오리무중이 되고 말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경의 열쇠를 받은 자가 만일 기독인들에게
생명나무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바울이 그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하나님 및 예수님께 도전하여 충돌하고 있는지 그 한가지라도 밝혀준다면
기독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은 당장에
참수하고 바울교리만이 옳다고 입에 거품물고 덤벼든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장장 이천년동안 바울의 교리에 따라, 살아 있을 때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다가 죽으면 황금종 울리는 저 천당에
들어간다는 달콤한 믿음에 철저히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의 교리를
비판하면 이가 뽀득뽀득 갈리는 원수같은 저승사자로 쫓겨난다.
창조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천지창조에 대한 기록을 비유와 예언으로
기록하신 게 성경인데, 성경은 가장 마지막 때 오늘날 풀어지게 되어 있고,
그리하여 그 열쇠를 받은 자가 성경의 그 수많은 기록들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본다면 성경은
더도 덜도 말고 오직 간단히 요약하면 “하나님의 천지창조론”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기독인들은 이천년동안 단 한마디라도 천지창조론 이야기가 있던가?
단 한마디도 전혀 없는 빈껍데기 무주공산이다. 날이면 날마다 오직 예수!
내죄 사하시려 피흘려 돌아가신 오직 예수! 죄! 죄! 죄! 죄 사해달라고
눈물뿌리고 콧물 뿌려 회개의 눈물을 강같이 흘리지만 죄가 무엇인지,
회개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죽어주신 피가 무엇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끊임없이 시끄럽게 읊어대고 있는 맹꽁이들이 기독인들이다.
[인류의 죄를 사해주어 영생을 주실 예수님의 “십자가 피” 가 무엇인가?]
[그 피가 우리죄를 사해준다고 하는 “우리 죄” 는 무엇인가?]
[그 우리죄에 대한 “회개” 는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기독인들은 “피는 피고, 죄는 죄고, 회개는 회개” 인데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고 몽둥이 세례를 퍼부을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도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 되고, 우리 죄도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 되고, 회개도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 된다.
즉 예수님이 죽어주신 십자가의 피가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 되는데,
그 천지창조론을 모르는 우리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해야 되고,
그러한 기도가 곧 회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가 세상살이 하면서 잡다하게 범하는 도덕과 윤리적인 죄들도
반드시 죄가 되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엽적인 죄들로서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기본적으로 거부하도록 전제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지으시는 천지창조론을 모르는 일을 우리의 본질적인 죄로
규정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본질적인 죄를 묻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인들은 죄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회개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무엇을
뜻하는 비유의 피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 지점에서 또 예수님이 우리죄를 위해 죽어주신 그 피흘림이
왜 천지창조론이 되는지 그 내용부터 낱낱이 밝혀야 되겠지만, 이 역시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제부터 제목대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을 드러내기로 한다.
애통함이란 심령이 쓰리고 아픈 울부짖음이 되는데, 왜? 정상적인
기독인이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엉뚱하게
기독인들은 하나님이 금하신 바울의 선악과 교리를 취하고 한다는 말인즉
<예수천당, 불신지옥=선악과>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신앙이 되기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부자의 교만한 축제가 열리고 애통함이란 전혀 없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길
“그들이 살아 생전에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운 연회를 베풀고
거지 나사로는 부자로부터 학대를 받았으나, 그들이 죽어서는
부자는 불가운데 불타는 신세가 되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는 대역전의 무대를 전개해 주셨던 것이다.
여기서 부자는 선악과를 먹고 예수천당 이라고 부자놀음하는 기독인들이
되고, 거지 나사로는 오히려 기독인들(부자)로부터 불신지옥이라고 학대받는
쫒겨난 택한자반열이 된다고 알려주신 것이다. 하지만
기독인들은 도무지 이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그 정반대로 믿는 이유인즉
그들은 바울(뱀)이 준 선악과를 최고선으로 떠받들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거지 나사로!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진정 기독인들로 있을 때 선악과를 범하고 영적부자로 살고있는 동료
기독인들의 행악을 보고 진정으로 애통하다가 의심 많은 불신자로 몰려서
교회로부터 쫓겨난 자들이 되는데, 이들이 곧 택한자반열이 되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구원받음을 뜻하니, 이것이 곧 그들이 그만큼 애통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재세시에 늘상 비유가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그렇게 비유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참 뜻을 찾아내야만 구원받게
된다고 역설하셨다. 그러나 기독인들은 그 반대로 옛뱀 사도바울의
선악과에 취해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미 구원받았다는 부자 놀음으로
날마다 연회를 즐기고 깨춤추고 기뻐 날뛰고 있었다.
반면, 택한자반열은 비유속에 꼭꼭 감추어진 성경기록을 보며 진리를 몰라
날마다 애통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고군분투의 좁은 길을 걸어야 했으니
오늘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핍박만 받는 그 애달픔과 한맺힘이 오죽했을까?
이 때 누가 그 신분을 감추고 살금살금 오시는가? 바로 그분이 오신다.
성경의 열쇠를 받은 자, 그분이 오셔서 성경을 일목요연하게 풀어주시니
애통했던 택한자반열은 주의 음성을 얼른 듣고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성경책 맨 꼭대기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선포하신 성경제목대로
성경의 수많은 기록들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시는 천지창조론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는데 그것이 곧 논리 정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이치에 부합하게 논리의 대가이시고, 따라서
계19:13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로고스(논리,이성)라고 알려 주시고
있듯이,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천지창조론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비진리에 울부짖어 애통했던 택한자반열이
눈물을 훔치며 달려오게 되는 것이다.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첫댓글 아멘.🙏